십일조[tithe, 十一租]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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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에 있었던 십일조의 실천에 대한 다른 예에 대한 언급이 더 이상 없다. 오순절 이후의 신약 신자가 십일조를 드렸다는 언급도 전혀 없으며, 서신서들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히브리서에서 구약에서 실행되었던 사실을 언급하고 있을 따름이다.
아브라함이 바쳤던 십일조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에 관하여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바른 교훈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으면 좋겠다. 아브라함은 명을 받들어 드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감사에서 자발적으로 드렸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하나님께 빚지고 있는 것이 자기가 소유한 것의 십분의 일 만이라고 말하면서 바치지 않았다. 그는 십일조를 드림으로써 자기의 전체와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의미로 드렸다. 십일조는 전체를 바친다는 것에 대한 상징이었다.
십일조를 드린 그의 행동을 포함하여 아브라함의 전 생애는 그가 믿음으로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잇다. 아브라함은 신뢰하는 마음,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마음에서 드렸다. 그의 마음에 자원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에, 그는 십일조를 드렸다. 그와 같이 십일조를 드림과 더불어 아브라함은 모든 성경이 입증하듯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자기의 전 생애를 드렸다..
그런 의미에서 아브라함의 십일조는 기독교 헌금의 적절한 모범이라고 말할 수 있다. 후일 이스라엘이 마음의 상태와는 상관없이 십일조를 반드시 행해야 할 종교적인 의식으로만 여긴 것은 아브라함의 십일조에 잘못이 있어서가 아니다. 단순히 십일조만 하는 것. 즉 우리가 소유한 것 또는 소득의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가 못하다. 우리는 우리가 드리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것이라는 마음, 하나님께 대한 감사로 가득찬 마음으로 드리는 법을 배워야 하다. 만일 거기에 흠이 있다면 우리에게 있는 것을 백퍼센트 다 드렸다 할지라도 부족할 것이다.
결론
지금까지 십일조에 대하여 고찰해 보았다. 쉽게만 생각했던 십일조에 대한 성서의 생각과 오늘날 신앙인들의 태도에 커다란 차이점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것은 십일조 뿐만이 아니라 나머지 십분의 구도 그의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중 십분의 일을 원하셨다. 그것이 율법적인 관례대로 원하는 것이 아닌 감사와 순종의 의미에서 말한 것이었다. 십일조에 대한 성경의 메세지를 다시 한번 살펴보면서 십일조에 대한 개념을 바로 잡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십일조가 구약에서 가르쳐진 이래 예수님의 논평으로 막을 고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십일조가 기독교적인 헌금의 표준이었다고 단정하는 것은 기독교적 청지기직에 대한 성경 전체의 개념에 비추어 볼 때 잘못된 것이다. 차라리 어쩔 수 없이 십일조를 강조해야 함을 말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더 추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필자 역시 목회 전선에 뛰어든 사람으로서 십일조에 대한 개념을 올바로 전해야 함이 중요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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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6.24
  • 저작시기2005.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04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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