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서론
Ⅱ.본론
1.고대의 주거
2.고대의 식생활
3.고대의 의복
Ⅲ.결론
Ⅱ.본론
1.고대의 주거
2.고대의 식생활
3.고대의 의복
Ⅲ.결론
본문내용
단순한 형에서 복잡한 형으로 다양하게 변화했다. 공화정 시대에는 앞가리마를 타고 양쪽 머리를 곱슬거리게 늘어뜨리거나 머리 전체를 짧게 컬하는 등 단순한 형이 주를 이루었다.
제정 시대에는 정교한 형으로 발전하여 앞머리는 작은 컬이 높게 솟아 오르게 하고 뒷머리는 땋아서 늘어뜨리거나 위로 둥글게 말아 쌓아 올린 스타일이 많이 보인다. 여기에 리본, 화환, 금속세환, 장식망, 진주, 보석, 황금 등의 장식품으로 치장하기도 했다.
머리 빗는 일은 아침에 하는 일 중에서 가장 큰 일로서 취급되었고 향유와 머리분을 사용하여 항상 향기가 나도록 했다. 로마인들도 그리스인과 같이 컬된 금발을 좋아하여 노란색으로 염색했다. 로마인들은 모자를 거의 착용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기후조건상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고, 햇빛?비 등을 피할 때나 여행 등 모자가 필요한 때에는 팔라나 팔리움을 끌어올려 쓰면 되었기 때문이다.
신부는 베일로 머리를 장식했는데, 밴드나 화환으로 고정시켜 어깨까지 내려뜨렸으며 베일의 색상은 가정의 신 베스타(Vesta)의 색인 주황색을 선호했다. 기독교의 신부는 휜색이나 붉은 보라색의 베일을 사용했는데, 베일 밑에는 순결함을 상징하는 헤어 밴드(hair band)를 둘렀다.
이와 같은 머리장식의 다양함은, 로마 의복이 사회적 규제에 의해 비교적 고정된 것과 비교해 볼 때, 로마 여인들이 그들의 미적감각을 과시할 수 있는 수단으로 매우 중요시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에트루리아인의 신발에는 가장 단순한 슬리퍼(slipper)형에서 쌘들, 부츠형까지 다양하다. 슬리퍼는 한 장의 펠트나 천으로 간단히 발바닥과 발 위를 감싸는 형태로서, 색상은 주로 붉은색, 녹색, 갈색 등을 사용했다. 샌들은 슬리퍼보다 정교하게 만든 것으로 가죽을 사용하여 위를 끈으로 묶는 형태인데, 그리스에서 들어왔으리라 생각된다. 부츠도 가죽으로 만들었으며 발과 종아리를 감싸는 형태로 소아시아의 영향을 받아 끝이 뾰족하고 위로 올라간 것이 특징이다.
로마의 문화는 에투루리아와 그리스의 영향을 받아 발전시킨 것으로 신발 또는 그리스와 에투루리아의 것을 변화 발전시켜 더욱 다양해졌다. 로마의 사회는 계급사회로서 사회적인 신분에 따라 재료나 장식 및 신발의 형태를 달리하는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로마의 신발로서 칼세우스(calceus)는 일반 시민들이 착용한 가장 보편적인 형태의 갈색 가죽 부츠(bootz)로 윗부분에서 스트랩(strap)으로 잠그고 끈으로 묶게되어 있다. 세련된 색상의 고급 가죽으로 만든 칼세우스는 부유층에서 신었다. 붉은 가죽으로 만들고 굽이 있으며 값비싼 보석으로 장식하고 버클(buckle)로 채우고 끈으로 묶는 아름답고 정교한 칼세우스 파트리시우스(calceus patricius)는 귀족이 신었다. 금으로 장식한 칼세우스 스나토리우스 (calceus senatorius)는 검정색 가죽으로 만들고 버클이 없이 4개의 스트랩으로 채우게 되어 있는 것으로 원로원 의원들이 신었다. 코투르누스(cothurnus)는 다리 위에까지 올라 오도록 높게 재단되었는데 사자의 머리로 장식되기도 하였다. 이와같이 상류층의 구두들은 낮은 계충의 구두보다 화려하였으며 신발의 높이도 높았다.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부드럽고 다채로우며 값비싼 신발을 신었는데 신발에도 자수나 보석이 장식되기도 하였다. 솔라에(solea)나 샌달을 많이 신었지만 칼세우스도 신었다.
에트루리아에서는 금속세공술이 발달하고 외모에 관심이 많았으므로 몸치장을 위해 많은 보석을 제조하기도 하고 이집트, 그리스 등지에서 수입하기도 했다. 이들의 장신구는 목걸이, 귀고리, 팔지, 반지, 피불라, 브로치 등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디자인은 매유 정교하여, 가장자리를 아름다운 골드 체인(gold chain)으로 섬세하게 엮은 것, 얇은 황금판에 신화의 주인공을 그린것, 새나 곤충,당초무늬,꽃무늬 등을 보석에 새겨넣은 것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고도의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귀고리는 가장 중요한 액세서리로 취급되었는데 매우 크고 긴 형태로 그 길이가 약 8cm 정도나 되는 것도 있다.
로마는 정복지로부터 가져온 각종의 보석으로 인하여 장신구는 더욱 사치스러워졌다. 보석으로 다이아몬드, 사파이어, 오팔, 진주등이 사용되었고 그 외에도 진주, 상아 및 금이나 은이 풍부하게 사용되어 장신구는 더욱 발달하였다. 또한 뛰어난 세공술과 사치스러운 사회풍조로 더욱 장신구에 치장을 하였다.
로마인들의 장신구로 목걸이, 귀걸이, 팔지, 반지, 피브라 등 다종 다양한 장신구가 있었다. 그중 로마인들은 반지에 관심을 두어 값비싼 보석이 세팅된 금반지, 역사적인 영웅의 얼굴이 조각된 반지, 문장반지, 열쇠용 반지, 결혼반지등 많은 반지가 사용되었다.
여성들은 초기에는 보석사용을 억제하였으나 동방의 정복지로부터의 다이아몬드나 에메랄드, 상아 등의 보석류 수입으로 많은 사치스러운 장신구들을 소유하였다. 반지나 팔찌등 장신구는 한꺼번에 여러개의 장신구를 사용하였다.
로마인들은 청결을 중요시 여겨 목욕탕이 매우 발달하였다. 남성들은 이를 깨끗이 손질하고 커다란 대형의 공중목욕탕에서 운동을 하고 향유로 몸을 치장하였다. 여성들 역시 목욕을 자주 하였는데 여성들은 개인 욕실을 사용하였다. 여성들은 날마다 우유로 목욕을 하고 황유로 몸을 가꿨으며 특히 손과 손톱을 단정하게 가꾸었다.
Ⅲ.결론
위에서 고대의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지역, 크레타문명, 그리스와 로마시대까지의 고대인들의 의식주를 살펴보았다. 이처럼 각각의 시대와 지역의 특색에 맞게 독자적인 형태로 나타난 것이 있는가 하면 지역과 시대를 초월해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의식주의 모습도 보였다. 이와 같이 고대인의 의식주 생활을 연구하다보면 우리는 그 시대의 생활상을 잘 알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고대의 역사를 이해 하는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참고문헌)
주거학 개설, 이경희 외, 문영당, 1996
주거와 문화, 이영재, 도서출판 서우, 2002
식생활과 문화, 문수재외, 신광출판사, 2000
식품문화사, 탄나힐, 경일문화사, 1991
서양의복사, 김경옥, 양서각, 1996
복식의역사, 블랑체.페인, 까치문고, 1988
제정 시대에는 정교한 형으로 발전하여 앞머리는 작은 컬이 높게 솟아 오르게 하고 뒷머리는 땋아서 늘어뜨리거나 위로 둥글게 말아 쌓아 올린 스타일이 많이 보인다. 여기에 리본, 화환, 금속세환, 장식망, 진주, 보석, 황금 등의 장식품으로 치장하기도 했다.
머리 빗는 일은 아침에 하는 일 중에서 가장 큰 일로서 취급되었고 향유와 머리분을 사용하여 항상 향기가 나도록 했다. 로마인들도 그리스인과 같이 컬된 금발을 좋아하여 노란색으로 염색했다. 로마인들은 모자를 거의 착용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기후조건상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고, 햇빛?비 등을 피할 때나 여행 등 모자가 필요한 때에는 팔라나 팔리움을 끌어올려 쓰면 되었기 때문이다.
신부는 베일로 머리를 장식했는데, 밴드나 화환으로 고정시켜 어깨까지 내려뜨렸으며 베일의 색상은 가정의 신 베스타(Vesta)의 색인 주황색을 선호했다. 기독교의 신부는 휜색이나 붉은 보라색의 베일을 사용했는데, 베일 밑에는 순결함을 상징하는 헤어 밴드(hair band)를 둘렀다.
이와 같은 머리장식의 다양함은, 로마 의복이 사회적 규제에 의해 비교적 고정된 것과 비교해 볼 때, 로마 여인들이 그들의 미적감각을 과시할 수 있는 수단으로 매우 중요시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에트루리아인의 신발에는 가장 단순한 슬리퍼(slipper)형에서 쌘들, 부츠형까지 다양하다. 슬리퍼는 한 장의 펠트나 천으로 간단히 발바닥과 발 위를 감싸는 형태로서, 색상은 주로 붉은색, 녹색, 갈색 등을 사용했다. 샌들은 슬리퍼보다 정교하게 만든 것으로 가죽을 사용하여 위를 끈으로 묶는 형태인데, 그리스에서 들어왔으리라 생각된다. 부츠도 가죽으로 만들었으며 발과 종아리를 감싸는 형태로 소아시아의 영향을 받아 끝이 뾰족하고 위로 올라간 것이 특징이다.
로마의 문화는 에투루리아와 그리스의 영향을 받아 발전시킨 것으로 신발 또는 그리스와 에투루리아의 것을 변화 발전시켜 더욱 다양해졌다. 로마의 사회는 계급사회로서 사회적인 신분에 따라 재료나 장식 및 신발의 형태를 달리하는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로마의 신발로서 칼세우스(calceus)는 일반 시민들이 착용한 가장 보편적인 형태의 갈색 가죽 부츠(bootz)로 윗부분에서 스트랩(strap)으로 잠그고 끈으로 묶게되어 있다. 세련된 색상의 고급 가죽으로 만든 칼세우스는 부유층에서 신었다. 붉은 가죽으로 만들고 굽이 있으며 값비싼 보석으로 장식하고 버클(buckle)로 채우고 끈으로 묶는 아름답고 정교한 칼세우스 파트리시우스(calceus patricius)는 귀족이 신었다. 금으로 장식한 칼세우스 스나토리우스 (calceus senatorius)는 검정색 가죽으로 만들고 버클이 없이 4개의 스트랩으로 채우게 되어 있는 것으로 원로원 의원들이 신었다. 코투르누스(cothurnus)는 다리 위에까지 올라 오도록 높게 재단되었는데 사자의 머리로 장식되기도 하였다. 이와같이 상류층의 구두들은 낮은 계충의 구두보다 화려하였으며 신발의 높이도 높았다.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부드럽고 다채로우며 값비싼 신발을 신었는데 신발에도 자수나 보석이 장식되기도 하였다. 솔라에(solea)나 샌달을 많이 신었지만 칼세우스도 신었다.
에트루리아에서는 금속세공술이 발달하고 외모에 관심이 많았으므로 몸치장을 위해 많은 보석을 제조하기도 하고 이집트, 그리스 등지에서 수입하기도 했다. 이들의 장신구는 목걸이, 귀고리, 팔지, 반지, 피불라, 브로치 등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디자인은 매유 정교하여, 가장자리를 아름다운 골드 체인(gold chain)으로 섬세하게 엮은 것, 얇은 황금판에 신화의 주인공을 그린것, 새나 곤충,당초무늬,꽃무늬 등을 보석에 새겨넣은 것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고도의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귀고리는 가장 중요한 액세서리로 취급되었는데 매우 크고 긴 형태로 그 길이가 약 8cm 정도나 되는 것도 있다.
로마는 정복지로부터 가져온 각종의 보석으로 인하여 장신구는 더욱 사치스러워졌다. 보석으로 다이아몬드, 사파이어, 오팔, 진주등이 사용되었고 그 외에도 진주, 상아 및 금이나 은이 풍부하게 사용되어 장신구는 더욱 발달하였다. 또한 뛰어난 세공술과 사치스러운 사회풍조로 더욱 장신구에 치장을 하였다.
로마인들의 장신구로 목걸이, 귀걸이, 팔지, 반지, 피브라 등 다종 다양한 장신구가 있었다. 그중 로마인들은 반지에 관심을 두어 값비싼 보석이 세팅된 금반지, 역사적인 영웅의 얼굴이 조각된 반지, 문장반지, 열쇠용 반지, 결혼반지등 많은 반지가 사용되었다.
여성들은 초기에는 보석사용을 억제하였으나 동방의 정복지로부터의 다이아몬드나 에메랄드, 상아 등의 보석류 수입으로 많은 사치스러운 장신구들을 소유하였다. 반지나 팔찌등 장신구는 한꺼번에 여러개의 장신구를 사용하였다.
로마인들은 청결을 중요시 여겨 목욕탕이 매우 발달하였다. 남성들은 이를 깨끗이 손질하고 커다란 대형의 공중목욕탕에서 운동을 하고 향유로 몸을 치장하였다. 여성들 역시 목욕을 자주 하였는데 여성들은 개인 욕실을 사용하였다. 여성들은 날마다 우유로 목욕을 하고 황유로 몸을 가꿨으며 특히 손과 손톱을 단정하게 가꾸었다.
Ⅲ.결론
위에서 고대의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지역, 크레타문명, 그리스와 로마시대까지의 고대인들의 의식주를 살펴보았다. 이처럼 각각의 시대와 지역의 특색에 맞게 독자적인 형태로 나타난 것이 있는가 하면 지역과 시대를 초월해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의식주의 모습도 보였다. 이와 같이 고대인의 의식주 생활을 연구하다보면 우리는 그 시대의 생활상을 잘 알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고대의 역사를 이해 하는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참고문헌)
주거학 개설, 이경희 외, 문영당, 1996
주거와 문화, 이영재, 도서출판 서우, 2002
식생활과 문화, 문수재외, 신광출판사, 2000
식품문화사, 탄나힐, 경일문화사, 1991
서양의복사, 김경옥, 양서각, 1996
복식의역사, 블랑체.페인, 까치문고, 1988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