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교리사 요약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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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1장 교리와 교리사

제 2 장 구약 성경의 교리적 근거

제3장 신약 성경의 교리적 근거

제4장 제2세기 삼위일체론 논의의 시작

제 5 장 제3세기 삼위일체론 논의

제 6 장 오리게네스의 삼위일체론

제 7 장 아레오스 논쟁과 니카야 공회의

제 8 장 아다나시오스의 신학

제 9 장 호모우시온의 확립을 위한 투쟁

제10장 성령의 인격성과 381 콘스탄티노폴리스 공회의

제 11 장 삼위일체 교리의 결말

제12장 기독론의 논의 시작

제13장 아폴리나리스주의와 두 그레고리오스의 기독론

제14장 안디옥의 네스토리오스와 알렉산드리아의 퀴릴로스의

제15장 칼케돈 고호의의 기독론 교리 확정

제16장 단일 본성론 논쟁과 제5차 에큐메닉 공회의 :

제 17 장 단일 의지론 논쟁과 제6차 에큐메닉 공회의 :

제 18 장 성상숭배와 787 제7차 에큐메닉 공회의 :

본문내용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동참한다. 빵과 포도주는 맛으로 판단하지 말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수여되었다고 믿으라고 하였다. 그가 자기의 성령을 봉헌된 요소들에 보내사 빵을 그의 몸으로 포도주를 그의 피로 만드신다. 성령이 접촉하는 것은 전적을 거룩하게 되고 변환되기 때문이다. 이미 퀴릴로스에게서 화체설이 나타난다. 그는 가나에서 혼인 잔치에 호소해서 성령에 의해 변환을 주장하였다.
8. 닛사의 그레고리오스의 견해
우리의 구원이 성례전적인 풍습과 기호에 동참하므로 확증된다고 하였다. 성례전에 있어 세례도 죄의 용서보다는 영의 통보로 보게 되었다. 구원은 그리스도의 몸에 융합됨으로만 가능하다. 따라서 성찬의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되는 화채설을 주장한다.
9. 크리소스토모스의 견해
그리스도의 몸과 성찬의 요소를 일치시켰다. 그 성찬의 요소들을 받으면 불멸에 이르는 능력을 입는다고 가르치고 주장하여 화채설이 구체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10. 알렉산드리아의 퀴릴로스의 견해
그는 성육신으로부터 성찬식을 보았다. 그는 그리스도의 실재인 몸이 성례전적인 몸에 현존한다고 가르치지는 않고 작용적인 현존을 하는 것을 뜻하였다. 성례전적인 몸은 그 효과에 있어서는 실재적인 몸과 동일하다.
11. 신앙고백자 막시모스의 견해
모든 것이 주의 성만찬을 중심해서 집합되어 졌다. 그 성찬은 희생의 제사와 성례전으로 여겨졌다. 성찬은 성육신과 결합되어 전 교리 체계를 합리적으로 대표하게 되었고 주의 몸의 종류와 본성에 대해 막연하던 것이 확정적인 형식을 취하게 되었다. 이방종교의식의 영향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하나님과 새롭게 화해시키기 위함이란 사상이 들어와 사람들은 성찬을 그리스도의 희생의 실제적인 갱신으로 여겼다.
12. 다메식의 요한네스의 견해
요한네스는 성찬에 참여하므로 예수의 신성에 동참하는 것으로 여겼다. 성례는 실제적인 성례이다. 우리는 한 빵에 참여하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한 몸이고, 한 피이며 서로 서로 지체들이고 그리스도의 한 몸이다.
그의 교리가 성찬에 대한 교회의 정통 가르침이다. 성찬상의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신화된 몸으로 변화된다. 그리고 그 몸은 신성과 연합된 몸으로 그 몸과 일치된 빵과 포도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성성과 연합하여 그의 몸처럼 신화된다고 하는 것이다. 787년 니카야 공회의는 이 요한네스의 가르침에 근거해서 결정하였다.
제3절 성상 숭배 논란
대중의 종교는 이방종교들의 풍습과 영향으로 받아들여 신령한 종교가 유물들과 순교자들의 뼈를 존경하고 숭배하였으며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의 그림들을 숭배하게 되었다. 황제의 반대와 논란이 있었지만 787년 니카야 공회의에서 성상숭배를 결정하므로 기독교를 우상중교를 만들었다.
제4절 성상 신학
그림숭배가 만연해지자 그림숭배의 정당화할 신학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게르마노스는 포괄적으로 성상숭배의 윤곽을 제시하였다. 그림들은 말씀을 통해서 선포된 것을 더욱 직관적이 되게 하고 집중적으로 인상을 준다. 그러므로 그림들은 말씀으로 선포된 구원 사실을 확증해주고 지속적인 인상을 확증해 주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고 하였다. 이에 다메섹의 요한네스는 그의 사상을 체계화하고 더욱 확장하여 그림들의 권리를 확실하게 하였다. 성상숭배는 우상이 아니다. 거기 바쳐진 영예는 다 원형에로 이월한다. 그러므로 성모 마리아의 상을 숭상하는 것도 그리스도에게로 넘어간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상숭배는 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제5절 황제 콘스탄티노스 5세와 754년 콘스탄티노폴리스 공회의 :
우상파괴 결정
황제는 자기의 우상반대를 신학적으로 기초를 놓으려고 노력하였다. 그리스도는 빗물질적인 본성과 물질적인 본성으로 분리 불가한 통일을 이루고 한 인격인데 어떻게 그리스도를 그림으로 그릴 수있느냐고 하였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적 본성은 비한계적이다. 이는 삼위일체에다가 제4의 인격을 부가하는 것이 되고 그리스도는 한낱 사람이 되게 한다는 황제의 견해는 동방의 단일 본성론자들과 바울리키안파의 동의와 지지를 얻었다. 허용할 수 있는 유일한 그리스도의 그림은 성찬식의 성체이다. 이 그림의 제조와 경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754년 공회의가 소집되었다. 이 공회의가 7차 에큐메닉 공회의라고 선언하였다.
제6절 787 니카야 공회의 : 제7차 에큐메닉 공회의
754년 공회의의 결정이 황제의 신학적 논의에 따라 이루어졌듯이 787년 공회의도 아레네의 결정에 의해 이루어졌다. 350명의 주교들이 회집된 공회는는 754 공회의와는 달리 에큐메닉 성격을 지닌다. 공회의의 결정은 존귀하고 생명을 주는 십자가의 형상처럼 존귀롭고 거룩한 그림들로 그림과 모자이크로 혹은 다른 적합한 재료로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들 안에 제시되어야 하고 또 거룩한 그릇들과 옷에, 벽과 그림으로 집과 길가에 즉 우리 주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 무흠한 여왕, 하나님의 어머니와 존귀한 천사들과 모든 성인들과 모든 경건한사람들의 그림이 제시되어야 한다.
십자가의 상과 다른 성인들의 그림들을 공경하는 일은 그들을 사모하게 되고 본받게 하게 하므로 교회와 집과 거리에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림들에게 바쳐진 경배는 그 인격에로 옮아간다고 정의하였다. 그러나 787년 니카야 공회의의 그림숭배 결정은 여자 황제 이레네의 뜻에 따른 결정이어서 이레네를 세 헬러나로 콘스탄티노스 6세는 새 콘스탄티노스로 추앙되어 선언되었다.
정치 권력이 교회를 타락시켜 교회를 세속 종교가 되게 하였다. 기독교가 중세로 넘어가므로 미신과 주술과 다신교적 신앙이 성할 수 밖에 없었다. 성모 마리아의 그림이 숭배되고 천사들과 성인들의 그림이 숭배되면 다른 이방신들이 기독교의 천사들의 이름 아래 섬겨지지 않으란 법이 없게 되었다. 이런 것들이 에큐메닉 공회의에 의해서 공인 다음에야 누가 이런 관습을 막을 수 있겠는가?
종교개혁에 대한 요구는 이미 준비되고 요구되었다고 할 것이다. 종교개혁 자체외에는 우상파괴와 우상 금지가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7차 에큐메닉 공회의 이후 기독교는 미신과 우상숭배와 공교리가 잘 혼합된 혼합 기독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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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7.07
  • 저작시기20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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