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사자를 그리는 사슴'의 고행
기술 왕국의 허무주의와 유도된 한계
자유와 진리 사이: 의미를 위한 틈새
기술 왕국의 허무주의와 유도된 한계
자유와 진리 사이: 의미를 위한 틈새
본문내용
틈새를 제공하는 능력에 달려있다. 허무의 유혹과 폭력을 벗어나, 의미를 위한 지속적인 이니셔티브를 창조하는 능력이 자유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유의지로 의미를 찾아내고, 모든 가능성 추구가 금지된 유도된 한계'의 세계에서도 가능성을 찾아내는 것이 진정한 문화적 창조이기 때문이다.
진리의 일방적 주장은, 허무의 냉소주의 만큼이나, 다른 가능성을 무시하고 타자와의 관계를 단절할 수 있다. 그러나 의미의 추구는 가능성의 폭을 넓히고, 타자와의 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할 수 있다. 의미는 상호 '소통 가능성'의 문제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자유와 진리가 인간 조건의 수수께끼이므로 현실적 소통 양식을 찾아내는 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의미는 현실과 초현실 사이로 열려진 창이다. 의미의 추구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노력이며, 자유의 힘으로 진리의 자양분이 녹아 있을 물줄기를 끌어들여, 생존과 실존의 문제가 끊임없이 자라나고 스러지는 생명의 밭을 적시는 일이다. 그것은 결국 일상의 현실에서 '삶의 의미'와 '사람의 의미'를 경작하는 일이다.
만일 문화적 비자유 속에서 의미 추구의 문제를 부정한다면, 그 결과로 오는 것은 의미가 추방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삭제되는 것이다. 「난센스의 책」으로 유명한 19세기 영국 작가 에드워드 리어(Edward Lear)의 글은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무의미한 말들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무의미한 듯한 '허튼소리'로 삶의 의미를 역설적으로 '꼬집어' 나타내고자 하는 노력인 것이다.
) Edward Lear, A Book of Bosh, Penguin(Puffin Classics), London 1992 참조: Lear는 'Limerick'이라는 독특한 각운(脚韻)을 사용하여, 마지막 연에서 체념한 듯한 아이러니로 현실의 부조리, 옳고 그름의 베일 등 삶의 역설스러운 의미를 보여준다. 한 두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There was an old man of Hong Kong,/ Who never did anything wrong;/ He lay on his back, with his head in a sack,/ That innocuous old man of Hong Kong." (앞의 책, 48면); "There was an Old Man with a gong,/ Who bumped at it all the day long;/ But they called out, 'O law! you're a horrid old bore!'/ So they samshed that Old Man with a gong."(57면).
누군가 말했듯이 사람들은 무의미 속에서도 의미를 찾는다.
문화의 서양어 어원은 '경작'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수십년 농사에 이력이 난 농부도 매년 농사를 시작하는 봄날 '무엇을 어떻게 심을 것인가' 생각한다. 생물학적 결정론과 현대 문화의 거대한 조류가 이미 '무엇'과 '어떻게'를 결정해 놓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지속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심고 가꾸어서 수확할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이 문화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되짚어 보아야 한다. 그것이 의미를 추구하는 노력이며,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 임무라면 임무다. 그리고 인간 이해의 지평은 문화 비판의 경험을 거치면서 점점 더 넓어져 갈 수 있는 것이다.
한편, 문화 비판을 위해서는 문화 행위와 그 성과 위를 정찰하는 '의식의 비행'이 필요하다. 인간 역사에서 의식을 하지 않음으로써 입은 피해가 잘못 해결함으로써 입은 피해보다 클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삶을 무겁고 힘들게만 살자는 말은 아니다. 문화 흐름의 대세 속에서 삶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일축당하는 것을 염려하는 것일 뿐이다. 다시 말해 삶이 부정적 허무주의에 무시당하는 것을 막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의미의 '틈새'를 말하는 것이다. 삶은 재미있게 사는 것이다. 그리고 의미있게 사는 것이다. 이에 감동이 있으면 더 좋은 것이다. "재미를 넘어 의미로, 의미를 넘어 감동으로 가는"
) 이 문장은 주철환 PD가 연예인 김국진을 "재미를 넘어 의미로, 의미를 넘어 감동으로 가는 행군의 남자"라고 평한 말에서 따온 것이다 (백현락, <연예가 파일>, 조선일보 1999년 3월 17일자, 39면에서 재인용).
삶이면 좋은 것이다. 삶은 몸과 머리와 가슴으로 사는 것이다. 그러면 그 '삶이 아름답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진리의 일방적 주장은, 허무의 냉소주의 만큼이나, 다른 가능성을 무시하고 타자와의 관계를 단절할 수 있다. 그러나 의미의 추구는 가능성의 폭을 넓히고, 타자와의 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할 수 있다. 의미는 상호 '소통 가능성'의 문제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자유와 진리가 인간 조건의 수수께끼이므로 현실적 소통 양식을 찾아내는 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의미는 현실과 초현실 사이로 열려진 창이다. 의미의 추구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노력이며, 자유의 힘으로 진리의 자양분이 녹아 있을 물줄기를 끌어들여, 생존과 실존의 문제가 끊임없이 자라나고 스러지는 생명의 밭을 적시는 일이다. 그것은 결국 일상의 현실에서 '삶의 의미'와 '사람의 의미'를 경작하는 일이다.
만일 문화적 비자유 속에서 의미 추구의 문제를 부정한다면, 그 결과로 오는 것은 의미가 추방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삭제되는 것이다. 「난센스의 책」으로 유명한 19세기 영국 작가 에드워드 리어(Edward Lear)의 글은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무의미한 말들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무의미한 듯한 '허튼소리'로 삶의 의미를 역설적으로 '꼬집어' 나타내고자 하는 노력인 것이다.
) Edward Lear, A Book of Bosh, Penguin(Puffin Classics), London 1992 참조: Lear는 'Limerick'이라는 독특한 각운(脚韻)을 사용하여, 마지막 연에서 체념한 듯한 아이러니로 현실의 부조리, 옳고 그름의 베일 등 삶의 역설스러운 의미를 보여준다. 한 두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There was an old man of Hong Kong,/ Who never did anything wrong;/ He lay on his back, with his head in a sack,/ That innocuous old man of Hong Kong." (앞의 책, 48면); "There was an Old Man with a gong,/ Who bumped at it all the day long;/ But they called out, 'O law! you're a horrid old bore!'/ So they samshed that Old Man with a gong."(57면).
누군가 말했듯이 사람들은 무의미 속에서도 의미를 찾는다.
문화의 서양어 어원은 '경작'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수십년 농사에 이력이 난 농부도 매년 농사를 시작하는 봄날 '무엇을 어떻게 심을 것인가' 생각한다. 생물학적 결정론과 현대 문화의 거대한 조류가 이미 '무엇'과 '어떻게'를 결정해 놓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지속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심고 가꾸어서 수확할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이 문화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되짚어 보아야 한다. 그것이 의미를 추구하는 노력이며,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 임무라면 임무다. 그리고 인간 이해의 지평은 문화 비판의 경험을 거치면서 점점 더 넓어져 갈 수 있는 것이다.
한편, 문화 비판을 위해서는 문화 행위와 그 성과 위를 정찰하는 '의식의 비행'이 필요하다. 인간 역사에서 의식을 하지 않음으로써 입은 피해가 잘못 해결함으로써 입은 피해보다 클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삶을 무겁고 힘들게만 살자는 말은 아니다. 문화 흐름의 대세 속에서 삶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일축당하는 것을 염려하는 것일 뿐이다. 다시 말해 삶이 부정적 허무주의에 무시당하는 것을 막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의미의 '틈새'를 말하는 것이다. 삶은 재미있게 사는 것이다. 그리고 의미있게 사는 것이다. 이에 감동이 있으면 더 좋은 것이다. "재미를 넘어 의미로, 의미를 넘어 감동으로 가는"
) 이 문장은 주철환 PD가 연예인 김국진을 "재미를 넘어 의미로, 의미를 넘어 감동으로 가는 행군의 남자"라고 평한 말에서 따온 것이다 (백현락, <연예가 파일>, 조선일보 1999년 3월 17일자, 39면에서 재인용).
삶이면 좋은 것이다. 삶은 몸과 머리와 가슴으로 사는 것이다. 그러면 그 '삶이 아름답다'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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