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법까지도 옳다고 생각하면서 그에게 지지를 보냈다.
그는 한국 축구의 대명사였다. 386세대가 가지는 그에 대한 기대는 최근까지 지속되었다. 80년 광주의 수많은 죽음을 가슴에 새긴 채 아침이슬로 분노를 삭혔던 그 세대가 용납한 유일한 파시즘적 훈련 방식의 지도자인 박종환 감독을 존경해왔다. 그가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에게 군밤을 매겨가며 훈련을 시켜도,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에게 쌍욕을 해대며 지도를 해도, 단체 기합을 주고 선수들에게 고함을 질러도, 그가 하는 것은 스파르타식의 훈련이었지 그게 파시즘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우리의 정서가 전두환 시절 모든 것이 막혀 우리의 가능성까지도 불투명해 보였을 때, 열악하고 나약한 팀(당시 청소년 대표는 아시아 예선전에서 북한에 밀려 3위로 탈락을 했다, 그러나 북한이 축구장 난동 사건으로 국제축구협회로부터 국제대회 출장 금지를 받자, 멕시코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에 대타로 출전하는 행운을 잡았다)을 이끌고 세계 4강이라는 희망을 쏘아올렸다. 전두환의 통치 방식은 파시즘이었지만, 박종환 감독이 하는 스파르타식의 훈련법은 파시즘이 아니었다. 이상한 이분법이었다. 그 구분은 어쩔 수 없는 열악한 환경과 낙후한 축구 문화에서는 그렇게 해야만 성적을 올릴 수 있다는 믿음에서 나왔다. 박종환 감독은 정신력으로 4강 신화를 이루었다. 뚝심 있는 축구, 정신력으로 무장한 축구, 멕시코에서 보여주었던 강한 투지와 정신력, 박감독 이후 한국 축구는 투지와 정신력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고, 축구는 정신력의 문화를 축구장 밖까지 보급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시합 전 몇 달, 혹은 몇 년 전부터 선수들을 선수촌에 가두어놓고, 병영과 같은 단체 생활 속에서 투지와 정신력을 키우는 훈련을 했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훈련 중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개인은 전체의 팀웍을 위해 눈물을 삼키며 훈련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그 눈물은 금메달로 바뀌어 돌아가신 분의 영전에 바쳐질 때 비로소 보상을 받는 가둠의 문화, 개인이 말살되는 문화, 병영 문화를 우리는 성적만 내면 된다는 서로간의 암묵속에서 용인을 해주었다. 그 시절 전두환 정권의 병영통치가 가능했던 것은 우리의 무의식 가운데 우리는 그렇게 해야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일종의 4강 신화가 가져다준 착각이었다. 박종환 감독은 투지와 정신력으로 우리 축구의 가능성을 열었고 그의 지도방식이 한국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 그후로 기업체나 학교는 투지와 정신력을 위해서 연수원을 만들고 생활관 정신수양관등을 만들어 사람들을 정신무장 시켜 나갔다. 축구가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처럼 박종환 감독으로 대표되는 축구문화와 사람들은 동고동락을 했다. 이상한 동거였다. 진보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파시즘에 대한 이중성으로 승부를 보았다. 그런데 그와 사람들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사건의 발단은 거액을 들여 한국축구의 발전을 위해 영입했던 히딩크 감독에 대한 불신이 표면화되면서부터였다.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국가대표팀이 컨페더레이션 대회에서 프랑스에게 5:0으로 지고, 체코전에서 5:0으로 지면서부터, 게다가 골드컵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자 드디어 우리 축구의 희망인 박종환 감독이 입에서 입으로 거론되었다. 박종환 감독은 민족을 대표하는 사람처럼 세 가지를 지적했다.
"한국축구는 기술이 낙후되었기 때문에 엔트리를 빨리 구성하여 기술적으로 반복훈련을 시켜야 한다, 히딩크 감독의 사생활에 문제가 있는데 이는 팀웍을 해치는 일이다, 한국은 강한 정신력과 투지를 길러야 한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박 감독의 말씀을 인용했고, 우리 시대 대표적인 언론 권력들 몇은 앞장서서 박 감독의 어록으로 히딩크 감독을 때렸다. 언론 권력은 "차라리 팀워크와 정신력이 실종됐으니, 다시 박종환 감독 방식의 스파르타식 훈련을 시켜야 한다", "한국축구는 정신력의 축구이니 지금부터 엔트리를 구성하여 반복되는 전술 훈련을 해야한다" 더 나가서는 "정신력 강화를 위해 다시 병영체제를 도입해야한다"고 떠들어댔다.
심지어 어떤 이는 해병대에서 3달 유격훈련을 시켜야한다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성적을 위해서는 선수 개개인의 생활은 희생해도 좋다는 집단주의 사고 방식과 스파르타를 빙자한 군대식 파시즘적 사고가 다시 힘을 얻는 듯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이러한 한국적 마인드를 아는지 모르는지 마이웨이(My Way)를 외쳤고, 엔트리 구성은 월드컵 며칠 전에야 했으며, 월드컵 중에도 주전과 비주전을 나누지 않았다.
그는 한국 축구의 대명사였다. 386세대가 가지는 그에 대한 기대는 최근까지 지속되었다. 80년 광주의 수많은 죽음을 가슴에 새긴 채 아침이슬로 분노를 삭혔던 그 세대가 용납한 유일한 파시즘적 훈련 방식의 지도자인 박종환 감독을 존경해왔다. 그가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에게 군밤을 매겨가며 훈련을 시켜도,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에게 쌍욕을 해대며 지도를 해도, 단체 기합을 주고 선수들에게 고함을 질러도, 그가 하는 것은 스파르타식의 훈련이었지 그게 파시즘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우리의 정서가 전두환 시절 모든 것이 막혀 우리의 가능성까지도 불투명해 보였을 때, 열악하고 나약한 팀(당시 청소년 대표는 아시아 예선전에서 북한에 밀려 3위로 탈락을 했다, 그러나 북한이 축구장 난동 사건으로 국제축구협회로부터 국제대회 출장 금지를 받자, 멕시코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에 대타로 출전하는 행운을 잡았다)을 이끌고 세계 4강이라는 희망을 쏘아올렸다. 전두환의 통치 방식은 파시즘이었지만, 박종환 감독이 하는 스파르타식의 훈련법은 파시즘이 아니었다. 이상한 이분법이었다. 그 구분은 어쩔 수 없는 열악한 환경과 낙후한 축구 문화에서는 그렇게 해야만 성적을 올릴 수 있다는 믿음에서 나왔다. 박종환 감독은 정신력으로 4강 신화를 이루었다. 뚝심 있는 축구, 정신력으로 무장한 축구, 멕시코에서 보여주었던 강한 투지와 정신력, 박감독 이후 한국 축구는 투지와 정신력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고, 축구는 정신력의 문화를 축구장 밖까지 보급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시합 전 몇 달, 혹은 몇 년 전부터 선수들을 선수촌에 가두어놓고, 병영과 같은 단체 생활 속에서 투지와 정신력을 키우는 훈련을 했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훈련 중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개인은 전체의 팀웍을 위해 눈물을 삼키며 훈련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그 눈물은 금메달로 바뀌어 돌아가신 분의 영전에 바쳐질 때 비로소 보상을 받는 가둠의 문화, 개인이 말살되는 문화, 병영 문화를 우리는 성적만 내면 된다는 서로간의 암묵속에서 용인을 해주었다. 그 시절 전두환 정권의 병영통치가 가능했던 것은 우리의 무의식 가운데 우리는 그렇게 해야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일종의 4강 신화가 가져다준 착각이었다. 박종환 감독은 투지와 정신력으로 우리 축구의 가능성을 열었고 그의 지도방식이 한국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 그후로 기업체나 학교는 투지와 정신력을 위해서 연수원을 만들고 생활관 정신수양관등을 만들어 사람들을 정신무장 시켜 나갔다. 축구가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처럼 박종환 감독으로 대표되는 축구문화와 사람들은 동고동락을 했다. 이상한 동거였다. 진보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파시즘에 대한 이중성으로 승부를 보았다. 그런데 그와 사람들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사건의 발단은 거액을 들여 한국축구의 발전을 위해 영입했던 히딩크 감독에 대한 불신이 표면화되면서부터였다.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국가대표팀이 컨페더레이션 대회에서 프랑스에게 5:0으로 지고, 체코전에서 5:0으로 지면서부터, 게다가 골드컵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자 드디어 우리 축구의 희망인 박종환 감독이 입에서 입으로 거론되었다. 박종환 감독은 민족을 대표하는 사람처럼 세 가지를 지적했다.
"한국축구는 기술이 낙후되었기 때문에 엔트리를 빨리 구성하여 기술적으로 반복훈련을 시켜야 한다, 히딩크 감독의 사생활에 문제가 있는데 이는 팀웍을 해치는 일이다, 한국은 강한 정신력과 투지를 길러야 한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박 감독의 말씀을 인용했고, 우리 시대 대표적인 언론 권력들 몇은 앞장서서 박 감독의 어록으로 히딩크 감독을 때렸다. 언론 권력은 "차라리 팀워크와 정신력이 실종됐으니, 다시 박종환 감독 방식의 스파르타식 훈련을 시켜야 한다", "한국축구는 정신력의 축구이니 지금부터 엔트리를 구성하여 반복되는 전술 훈련을 해야한다" 더 나가서는 "정신력 강화를 위해 다시 병영체제를 도입해야한다"고 떠들어댔다.
심지어 어떤 이는 해병대에서 3달 유격훈련을 시켜야한다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성적을 위해서는 선수 개개인의 생활은 희생해도 좋다는 집단주의 사고 방식과 스파르타를 빙자한 군대식 파시즘적 사고가 다시 힘을 얻는 듯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이러한 한국적 마인드를 아는지 모르는지 마이웨이(My Way)를 외쳤고, 엔트리 구성은 월드컵 며칠 전에야 했으며, 월드컵 중에도 주전과 비주전을 나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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