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한갓 일종의 낱말들의 혼란상태임이 밝혀진다. 그렇다는 것이 드러난 후에는 그 질문 자체가 사라지며, 우리의 철학적 정신은 아주 평온해 진다.; 질문이 없고 문제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니까 대답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된다.
둘째로, 진정한 질문임이 입증되는 ‘철학적’ 문제가 있다. 그러나 적절히 분석해 보면 이런 문제도 비록 지금으로서는 순전히 技術的인 이유 때문에 과학적 방법을 적용할 수는 없지만, 과학의 방법에 의하여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종류의 문제는 특별히 ‘철학적인’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과학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이런 문제는 실제로는 대답될 수 없다 하더라도, 원리상으로는 항상 대답될 수 있는 문제이며, 더구나 그 대답도 오직 과학적 탐구만이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철학적 문제’의 운명은 이렇다; 그 중 어떤 것은 우리 언어가 저지른 과오요 오해라는 것이 밝혀짐으로써 사라질 것이며, 다른 것들은 變裝한 보통의 과학문제임이 밝혀질 것이다. 이러한 소견은 철학의 전 장래를 좌우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몇몇 위대한 철학자들은, 비록 精巧하게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철학적 思惟의 본질을 비교적 명확히 인지하였다. 예컨대 칸트는 강의시간에 철학은 가르칠 수는 없다고 말하곤 했다. 그렇지만, 만일 철학이 地質學이나 天文學같은 과학이라면, 어째서 가르칠 수 없겠는가? 그렇다면 사실 철학을 가르치는 일이 확실히 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칸트는 “ 내가 가르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철학하는 것이다.” 라고 말했을 때, 철학은 과학이 아니라는 것을 어느 정도 낌새챘던 것이다. 이 文脈에 動詞 philosophiren을 사용하고 名詞 Philosophie를 퇴짜 놓으므로써 칸트는, 거의 무의식적으로이긴 하지만, 활동으로서의 철학의 특수한 성격을 명확하게 지적했던 것이다....
동일한 洞察의 유사한 예를 라이프니쯔에서도 볼 수 있다. 그가 베를린 翰林院을 창설하고 그 조직을 위한 槪略的인 계획을 세웠을 때, 그는 그 조직 안에 모든 과학의 위치는 정해 주었으나 철학은 거기까지 못하였다. 라이프니쯔가 과학의 체계 안에 철학의 자리를 두지 않았던 것은, 철학은 특수한 진리의 추구가 아니라 모든 진리 탐구에 스며들 하나의 활동임을 명백히 간파하였기 때문이다,
내가 옹호하고 있는 견해를 현대에 가장 분명하게 표현한 사람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다. 그는 자기의 要旨를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철학의 목표는 사상을 논리적으로 명료하게 함에 있다. 철학은 이론이 아니라 활동이다. 철학의 성과는 ‘철학적 명제’가 아니라 ‘명제의 명료화’이다. “ 이것은 내가 여기서 설명하려 애써 온 바로 그 견해이다,
이제 우리는 어째서 철학은 보편과학으로 간주될 수 없는가를 역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철학이 이렇게 오해된 것은, 명제의 ‘의미’가 어느 면에서는 모든 논의의 기초가 되는 까닭에 그것이 무슨 ‘보편적’인 것 인양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 어째서 고대에는 철학이 과학과 동일시되었는가를 역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그 당시에는 세계를 서술하는데 사용된 개념들이 모두 매우 애매하였기 때문이다. 과학에게 임무가 부과된 것은 명료한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과학이 서서히 발전됨에 따라 개념들은 명료하게 되게 마련이니 과학적 탐구의 노력은 주로 이 명료화에 향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과학적 탐구는 철학적이 될 수밖에 없었으니, 과학과 철학은 구별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우리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실은 오늘날에도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 윤리학이나 미학 같은 어떤 특수한 연구분야는 ‘철학적’이라 불리워지고 있으며, 철학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되고 있다. 그러나 철학은 활동이기 때문에, 부분이나 독립적인 여러 분야로 나누어 질 수 없는 하나의 통일체 unit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러한 탐구들이 철학이라고 불리워지는가? 그것은 그런 탐구들이 과학적 단계의 초기에 처해 있음에 불과하기 때문이며, 내 생각에는 어느 정도 심리학도 그런 것 같다. 윤리학과 미학은 확실히 아직도 충분히 명료한 개념을 갖고 있지 않으며, 그 연구의 대부분은 아직도 그 개념들을 명료화하는데 바쳐지고 있다. 따라서 그것을 철학적이라고 부름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장차 그것들은 당연히 과학의 위대한 체계의 한 부분이 될 것이다.
미래의 철학자들은 과학자들의 방법은 겉으로나마 취할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이 깨닫기를 나는 바란다. ..... 철학 책들은 대부분 마치 과학 책인듯한 모습을 띠고 있는데, 이는 철학 책이 과학의 언어를 사용하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미의 발견이 진리의 발견과 같은 방법으로 이루어 질 수는 없다. 이 차이는 미래에는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나는 마치 내가 과학적 연구와 철학적 연구의 실제적인 分離를 주장하고 있는 듯이 오해되지 않기를 바란다. 오히려 그 반대로 대부분의 경우 미래의 철학자들은 과학자가 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왜하면 자기들이 탐구할 어떤 주제를 갖는 것이 그들로서는 필요할 것이며 - 그래야 그들은 특별히 그 과학의 기초에 있어서 혼란되고 애매한 의미의 사례를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관계하고 있는 많은 문제에 있어서도 의미의 명료화는 크게 요구될 것이다. 몇몇 사상가들, 그 중에서도 아마 가장 뛰어난 몇몇 사람들은 이러한 실제적인 분야에 특별한 才質을 보여줄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철학자는 과학자가 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있어서 그는 이해가 깊은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요컨대 그는 현명한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나는 철학의 본성에 관한 우리의 견해가 미래에는 일반적으로 채택되리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하나의 체계로서의 철학을 가르치려고 기도하지는 않게 될 것이다. 우리는 명료함을 추구하는 진정한 철학적 정신으로 특수과학과 그 역사를 가르칠 것이며, 이렇게 함으로써 후세의 철학적 정신을 啓發시킬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이 전부이지만, 그것은 인류의 정신적 진보의 巨步가 될 것이다.
둘째로, 진정한 질문임이 입증되는 ‘철학적’ 문제가 있다. 그러나 적절히 분석해 보면 이런 문제도 비록 지금으로서는 순전히 技術的인 이유 때문에 과학적 방법을 적용할 수는 없지만, 과학의 방법에 의하여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종류의 문제는 특별히 ‘철학적인’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과학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이런 문제는 실제로는 대답될 수 없다 하더라도, 원리상으로는 항상 대답될 수 있는 문제이며, 더구나 그 대답도 오직 과학적 탐구만이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철학적 문제’의 운명은 이렇다; 그 중 어떤 것은 우리 언어가 저지른 과오요 오해라는 것이 밝혀짐으로써 사라질 것이며, 다른 것들은 變裝한 보통의 과학문제임이 밝혀질 것이다. 이러한 소견은 철학의 전 장래를 좌우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몇몇 위대한 철학자들은, 비록 精巧하게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철학적 思惟의 본질을 비교적 명확히 인지하였다. 예컨대 칸트는 강의시간에 철학은 가르칠 수는 없다고 말하곤 했다. 그렇지만, 만일 철학이 地質學이나 天文學같은 과학이라면, 어째서 가르칠 수 없겠는가? 그렇다면 사실 철학을 가르치는 일이 확실히 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칸트는 “ 내가 가르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철학하는 것이다.” 라고 말했을 때, 철학은 과학이 아니라는 것을 어느 정도 낌새챘던 것이다. 이 文脈에 動詞 philosophiren을 사용하고 名詞 Philosophie를 퇴짜 놓으므로써 칸트는, 거의 무의식적으로이긴 하지만, 활동으로서의 철학의 특수한 성격을 명확하게 지적했던 것이다....
동일한 洞察의 유사한 예를 라이프니쯔에서도 볼 수 있다. 그가 베를린 翰林院을 창설하고 그 조직을 위한 槪略的인 계획을 세웠을 때, 그는 그 조직 안에 모든 과학의 위치는 정해 주었으나 철학은 거기까지 못하였다. 라이프니쯔가 과학의 체계 안에 철학의 자리를 두지 않았던 것은, 철학은 특수한 진리의 추구가 아니라 모든 진리 탐구에 스며들 하나의 활동임을 명백히 간파하였기 때문이다,
내가 옹호하고 있는 견해를 현대에 가장 분명하게 표현한 사람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다. 그는 자기의 要旨를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철학의 목표는 사상을 논리적으로 명료하게 함에 있다. 철학은 이론이 아니라 활동이다. 철학의 성과는 ‘철학적 명제’가 아니라 ‘명제의 명료화’이다. “ 이것은 내가 여기서 설명하려 애써 온 바로 그 견해이다,
이제 우리는 어째서 철학은 보편과학으로 간주될 수 없는가를 역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철학이 이렇게 오해된 것은, 명제의 ‘의미’가 어느 면에서는 모든 논의의 기초가 되는 까닭에 그것이 무슨 ‘보편적’인 것 인양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 어째서 고대에는 철학이 과학과 동일시되었는가를 역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그 당시에는 세계를 서술하는데 사용된 개념들이 모두 매우 애매하였기 때문이다. 과학에게 임무가 부과된 것은 명료한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과학이 서서히 발전됨에 따라 개념들은 명료하게 되게 마련이니 과학적 탐구의 노력은 주로 이 명료화에 향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과학적 탐구는 철학적이 될 수밖에 없었으니, 과학과 철학은 구별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우리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실은 오늘날에도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 윤리학이나 미학 같은 어떤 특수한 연구분야는 ‘철학적’이라 불리워지고 있으며, 철학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되고 있다. 그러나 철학은 활동이기 때문에, 부분이나 독립적인 여러 분야로 나누어 질 수 없는 하나의 통일체 unit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러한 탐구들이 철학이라고 불리워지는가? 그것은 그런 탐구들이 과학적 단계의 초기에 처해 있음에 불과하기 때문이며, 내 생각에는 어느 정도 심리학도 그런 것 같다. 윤리학과 미학은 확실히 아직도 충분히 명료한 개념을 갖고 있지 않으며, 그 연구의 대부분은 아직도 그 개념들을 명료화하는데 바쳐지고 있다. 따라서 그것을 철학적이라고 부름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장차 그것들은 당연히 과학의 위대한 체계의 한 부분이 될 것이다.
미래의 철학자들은 과학자들의 방법은 겉으로나마 취할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이 깨닫기를 나는 바란다. ..... 철학 책들은 대부분 마치 과학 책인듯한 모습을 띠고 있는데, 이는 철학 책이 과학의 언어를 사용하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미의 발견이 진리의 발견과 같은 방법으로 이루어 질 수는 없다. 이 차이는 미래에는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나는 마치 내가 과학적 연구와 철학적 연구의 실제적인 分離를 주장하고 있는 듯이 오해되지 않기를 바란다. 오히려 그 반대로 대부분의 경우 미래의 철학자들은 과학자가 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왜하면 자기들이 탐구할 어떤 주제를 갖는 것이 그들로서는 필요할 것이며 - 그래야 그들은 특별히 그 과학의 기초에 있어서 혼란되고 애매한 의미의 사례를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관계하고 있는 많은 문제에 있어서도 의미의 명료화는 크게 요구될 것이다. 몇몇 사상가들, 그 중에서도 아마 가장 뛰어난 몇몇 사람들은 이러한 실제적인 분야에 특별한 才質을 보여줄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철학자는 과학자가 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있어서 그는 이해가 깊은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요컨대 그는 현명한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나는 철학의 본성에 관한 우리의 견해가 미래에는 일반적으로 채택되리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하나의 체계로서의 철학을 가르치려고 기도하지는 않게 될 것이다. 우리는 명료함을 추구하는 진정한 철학적 정신으로 특수과학과 그 역사를 가르칠 것이며, 이렇게 함으로써 후세의 철학적 정신을 啓發시킬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이 전부이지만, 그것은 인류의 정신적 진보의 巨步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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