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대중문화, 의미, 기호
2. 기호학: “거짓말”의 과학
3. 대중매체: 기호의 통로
4. 텔레비전: 이미지의 언어
5. 내러티브
6. 결론: 말과 글을 넘어
2. 기호학: “거짓말”의 과학
3. 대중매체: 기호의 통로
4. 텔레비전: 이미지의 언어
5. 내러티브
6. 결론: 말과 글을 넘어
본문내용
절히 조정하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이 사용자들에게도 돌아가야 하지만, 파업이 시작되고 나면 사용자는 책임자의 위치에서 슬며시 모습을 감춘다. 그리고 미디어에 남는 것은 불편해하는 시민들과 목소리를 높이는 노동자들뿐이다.
파업이 강행되고, 경찰이 여느 때처럼 강경대처 방침을 밝힘으로써 갈등이 고조되기 시작하면, 갈등의 책임 당사자로서 자리를 비웠던 사용자는 어느덧 시민의 구원자로 등장한다. 비장한 모습으로 등장한 우리의 영웅은 시민이 발이 멈추는 사태를 막기 위해 대체인력을 투입하는 등 비상수송대책 마련에 나선다. 가까스로 문제는 해결되고, 세상은 다시 평화를 되찾는다. 여기서 문제의 해결은 파업의 원인이 해결되기보다는 아니라 파업 그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한동안 평화를 누릴 것이다. 노동자들이 다시 요구를 해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6. 결론: 말과 글을 넘어
현대사회에서 대중매체의 영향력은 점차 확대되어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의미는 말과 글의 범위를 넘어 계속해서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우리는 앞에서 어떻게 동일한 텍스트가 다른 영상이미지와 음악 및 음향과 결합되어 전혀 다른 의미를 만들어내는지 살펴보았다. 이처럼 비언어적 기호들은 언어기호의 의미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자체적으로 의미를 생산하고 순환시키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말과 글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사진의 문법에 대해서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음악의 언어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은 이미 우리들의 일상적인 언어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무수히 많은 이미지들이 지나간 뒤 잠깐 회사 로고를 보여주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스포츠용품 광고,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어보이는 이미지들을 음악의 박자에 따라 배열해 놓은 뮤직비디오, 그리고 의미가 차지할 자리는 전혀 없어보일만큼 감각적인 이미지와 요란한 효과음으로 가득찬 비디오 게임을 생각해 보자. 이것들이 무의미의 영역에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라면, 이들은 이 순간에도 우리를 향해 무수히 많은 의미들을 쏟아내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글을 읽고 쓰는 능력 못지 않게 비언어적 이미지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읽고 쓰는 능력을 일컬었던 기존의 리터러시(literacy)라는 개념에는 이제 이미지에 대한 이해와 판단능력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의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의미의 과학인 기호학이다.
앞에서 기호학을 거짓말의 이론의 관점에서 설명한 바 있다. 에코의 지적대로 기호학이 거짓말에 사용될 수 있는 모든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면, 대중매체의 이미지야말로 기호학의 가장 적절한 분석 대상이 될 것이다. 사람들이 큰 문제의식 없이 수용하는 미디어의 이미지야말로 가장 효율적으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은 보도사진, 자연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것처럼 들리는 효과음향, 그리고 영상 뒤에 숨어서 의미를 교묘히 조종하는 음악, 이들보다 더 좋은 거짓말의 도구가 있을까?
기호에 의해서 생산되고 순환되는 의미체계는 항상 특정 집단의 권력 및 이해관계와 연관되어 있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행동을 학살로 만들 것인지 아니면 해방으로 만들 것인지의 여부는 추상적인 언어유희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 권력관계의 문제이며 물리적 이해관계의 문제다. 그리고 이처럼 말할 수 있는 권력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말할 수 있는 힘이란 곧 다른 사람들에게 듣기를 요구할 수 있는 힘까지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호를 유통시킬 수 있는 능력은 곧 현실을 이해하는 지침을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이다. 기호생산자들은 현실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통제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기호를 통해 현실의 특정 부분을 강조할 수도 있고, 특정 부분을 감출 수도 있으며, 존재하지 않는 현실을 창조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는 현실이란 저 밖의 세계가 아니라 권력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자의적으로 생산된 사회적 구성물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책임은 특정 기호와 의미를 생산하고 전달한 자들에게만 있는가? 아니면 그 의미를 수용한 우리들도 그 책임을 나누어야 하는가? 퍼스(Charles Sanders Peirce)에 따르면, 하나의 기호가 사람들에 의해 해석되기 전까지는 기호가 아니다. 즉 기호가 의미를 발생시키기 위해서는 항상 사용자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호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곧 이 기호의 유통을 허락하는 행위인 동시에, 이 기호가 유포하는 의미의 생산과정에 협력하는 것이다. 우리가 특정 기호를 수용하는 것은 곧 이 기호가 제공하는 현실에서 살아가기로 동의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의 현실을 한 번 돌아보자. 한국 사회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판검사는 사실적이지 못하다. 반면에 이것이 폭력배들에 의해 사용되면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리고 파출부 아주머니들은 언제나 충청도 사투리를 써야 제격이다. 그리고 연인들은 남자다운 남자와 여자다운 여자로 대표되는 지배적 성역할을 재현해야만 로맨틱한 관계가 된다. 그렇다면 리얼리즘(realism), 즉 그럴 듯함이란 객관적 현실이 아닌 지배적 의미체계를 반영하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생각하는 현실이란 객관적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한 사회에서 그럴 듯하게 보이도록 만들어진 지배적 현실감(dominant sense of realism)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Fiske 1987, pp 37-47) 그렇다면 남성의 보살핌을 받아야 여자다운 여자가 되고, 지방색을 벗고 표준어를 사용해야만 멋진 인텔리가 될 수 있으며, 과격한 지하철 파업을 근엄하게 꾸짖어야 온건한 시민이 되는 것이다.
이게 현실이라면 우리는 비현실을 지향해야 한다. 현실이란 지배체제의 자화상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의미를 객관적 현실로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지배체제의 재생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 당연한 현실을 거부할 때, 사회의 변혁을 가능케 하는 가장 근원적인 문제제기, 즉 의미를 둘러싼 투쟁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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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이 강행되고, 경찰이 여느 때처럼 강경대처 방침을 밝힘으로써 갈등이 고조되기 시작하면, 갈등의 책임 당사자로서 자리를 비웠던 사용자는 어느덧 시민의 구원자로 등장한다. 비장한 모습으로 등장한 우리의 영웅은 시민이 발이 멈추는 사태를 막기 위해 대체인력을 투입하는 등 비상수송대책 마련에 나선다. 가까스로 문제는 해결되고, 세상은 다시 평화를 되찾는다. 여기서 문제의 해결은 파업의 원인이 해결되기보다는 아니라 파업 그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한동안 평화를 누릴 것이다. 노동자들이 다시 요구를 해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6. 결론: 말과 글을 넘어
현대사회에서 대중매체의 영향력은 점차 확대되어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의미는 말과 글의 범위를 넘어 계속해서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우리는 앞에서 어떻게 동일한 텍스트가 다른 영상이미지와 음악 및 음향과 결합되어 전혀 다른 의미를 만들어내는지 살펴보았다. 이처럼 비언어적 기호들은 언어기호의 의미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자체적으로 의미를 생산하고 순환시키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말과 글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사진의 문법에 대해서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음악의 언어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은 이미 우리들의 일상적인 언어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무수히 많은 이미지들이 지나간 뒤 잠깐 회사 로고를 보여주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스포츠용품 광고,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어보이는 이미지들을 음악의 박자에 따라 배열해 놓은 뮤직비디오, 그리고 의미가 차지할 자리는 전혀 없어보일만큼 감각적인 이미지와 요란한 효과음으로 가득찬 비디오 게임을 생각해 보자. 이것들이 무의미의 영역에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라면, 이들은 이 순간에도 우리를 향해 무수히 많은 의미들을 쏟아내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글을 읽고 쓰는 능력 못지 않게 비언어적 이미지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읽고 쓰는 능력을 일컬었던 기존의 리터러시(literacy)라는 개념에는 이제 이미지에 대한 이해와 판단능력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의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의미의 과학인 기호학이다.
앞에서 기호학을 거짓말의 이론의 관점에서 설명한 바 있다. 에코의 지적대로 기호학이 거짓말에 사용될 수 있는 모든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면, 대중매체의 이미지야말로 기호학의 가장 적절한 분석 대상이 될 것이다. 사람들이 큰 문제의식 없이 수용하는 미디어의 이미지야말로 가장 효율적으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은 보도사진, 자연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것처럼 들리는 효과음향, 그리고 영상 뒤에 숨어서 의미를 교묘히 조종하는 음악, 이들보다 더 좋은 거짓말의 도구가 있을까?
기호에 의해서 생산되고 순환되는 의미체계는 항상 특정 집단의 권력 및 이해관계와 연관되어 있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행동을 학살로 만들 것인지 아니면 해방으로 만들 것인지의 여부는 추상적인 언어유희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 권력관계의 문제이며 물리적 이해관계의 문제다. 그리고 이처럼 말할 수 있는 권력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말할 수 있는 힘이란 곧 다른 사람들에게 듣기를 요구할 수 있는 힘까지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호를 유통시킬 수 있는 능력은 곧 현실을 이해하는 지침을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이다. 기호생산자들은 현실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통제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기호를 통해 현실의 특정 부분을 강조할 수도 있고, 특정 부분을 감출 수도 있으며, 존재하지 않는 현실을 창조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는 현실이란 저 밖의 세계가 아니라 권력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자의적으로 생산된 사회적 구성물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책임은 특정 기호와 의미를 생산하고 전달한 자들에게만 있는가? 아니면 그 의미를 수용한 우리들도 그 책임을 나누어야 하는가? 퍼스(Charles Sanders Peirce)에 따르면, 하나의 기호가 사람들에 의해 해석되기 전까지는 기호가 아니다. 즉 기호가 의미를 발생시키기 위해서는 항상 사용자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호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곧 이 기호의 유통을 허락하는 행위인 동시에, 이 기호가 유포하는 의미의 생산과정에 협력하는 것이다. 우리가 특정 기호를 수용하는 것은 곧 이 기호가 제공하는 현실에서 살아가기로 동의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의 현실을 한 번 돌아보자. 한국 사회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판검사는 사실적이지 못하다. 반면에 이것이 폭력배들에 의해 사용되면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리고 파출부 아주머니들은 언제나 충청도 사투리를 써야 제격이다. 그리고 연인들은 남자다운 남자와 여자다운 여자로 대표되는 지배적 성역할을 재현해야만 로맨틱한 관계가 된다. 그렇다면 리얼리즘(realism), 즉 그럴 듯함이란 객관적 현실이 아닌 지배적 의미체계를 반영하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생각하는 현실이란 객관적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한 사회에서 그럴 듯하게 보이도록 만들어진 지배적 현실감(dominant sense of realism)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Fiske 1987, pp 37-47) 그렇다면 남성의 보살핌을 받아야 여자다운 여자가 되고, 지방색을 벗고 표준어를 사용해야만 멋진 인텔리가 될 수 있으며, 과격한 지하철 파업을 근엄하게 꾸짖어야 온건한 시민이 되는 것이다.
이게 현실이라면 우리는 비현실을 지향해야 한다. 현실이란 지배체제의 자화상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의미를 객관적 현실로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지배체제의 재생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 당연한 현실을 거부할 때, 사회의 변혁을 가능케 하는 가장 근원적인 문제제기, 즉 의미를 둘러싼 투쟁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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