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빈과 조선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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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종 27년 인현왕후가 3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자 장씨는 재기를 꿈꿨다. 서인들은 장씨의 목숨을 끊어놓지 않으면 언제 기사환국과 같은 일이 재발할지 모른다고 판단했다. 서인들은 숙빈 최씨를 시켜 ‘민비의 죽음은 장희빈의 저주 때문’이라고 밀고하게 했다. 숙종은 장씨를 희생양으로 삼기로 결심했다. 그는 장씨가 중전을 한번도 문병하지 않고, 취선당 서쪽에 신당을 설치해 저주했다고 비난하면서 자결을 명령했다.
14세의 세자가 대신들에게 어머니를 살려달라고 빌었다. 그러나 노론 좌의정 이세백은 옷자락을 붙잡고 매달리는 세자를 외면했다. 여종의 딸로 신분제에 맞섰던 장씨는 당쟁을 이용해 왕비까지 올랐으나 역시 당쟁 때문에 비참하게 생애를 마감하고 말았다. 남은 것은 증오였고 그에 따른 보복의 비극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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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10.05
  • 저작시기2005.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14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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