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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졸업생 대표이자 학급 시인으로 졸업한 후 다트마우스 대학에 들어갔으나 학문을 충분히 닦았다고 주장하면서 대학을 떠났다. 그 후 몇 년 동안, 출세 같은 것에는 별로 야심이 없는 듯, 이것저것 밥벌이를 하면서 지냈다. 로렌스에 있는 공장에서 일하기도 했고, 신문 기자 노릇도 했고, 교편을 잡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한가할 때면 시작(詩作)에 몰두했다. 1894년 유명한 문학지인 <<뉴욕 인디펜던트>>에 처음으로 『나의 나비』라는 작품을 싣게 되자, 그것을 자축하기 위해서 서정시 6편을 묶어 <황혼>이라는 제목으로 제 손으로 첫 시집을 프린트해서 냈다. 부수는 단 두 부였는데, 하나는 그의 약혼자 엘리너 화이트에게 주기 위해서, 그리고 나머지 한 부는 자기 자신이 갖기 위해서였다. 그녀는1938년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 frost시의 주된 영향이 되었다
1895년 결혼한 그는 교편을 잡고 생활의 안정을 꾀하려 했다. 2년 이상을 그는 로렌스에서 사립학교를 운영하는 어머니를 도왔고, 대학에서 강의를 맡을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그 준비로 하버드 대학에 2년간 특대생으로 다녔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는 아카데믹한 분위기가 자기에게는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1895년 결혼한 그는 교편을 잡고 생활의 안정을 꾀하려 했다. 2년 이상을 그는 로렌스에서 사립학교를 운영하는 어머니를 도왔고, 대학에서 강의를 맡을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그 준비로 하버드 대학에 2년간 특대생으로 다녔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는 아카데믹한 분위기가 자기에게는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