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2. 본론
1) 동구 각국의 현대사
(!) 헝거리
(2) 체코
(3) 루마니아
(4) 폴란드
(5) 불가리아
2) 후루시초프의 스탈린 비판과 브레즈네프 독트린
3) 폴란드와 체코, 헝가리의 특수성
2. 본론
1) 동구 각국의 현대사
(!) 헝거리
(2) 체코
(3) 루마니아
(4) 폴란드
(5) 불가리아
2) 후루시초프의 스탈린 비판과 브레즈네프 독트린
3) 폴란드와 체코, 헝가리의 특수성
본문내용
, 루마니아에서는 관료적 민족주의가 나타난다. 체코의 귀족층은 강력하나 모두 외국이었다. 따라서, 이들이 체코 민족주의 운동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기에는 부적합하였다. 그 대신 18세기부터 보헤미아, 실레지아 지역의 상업의 발달로 서구적 사고 방식과 사상의 발전이 이루어졌는데, 이들 가운데서 부를 축적하기 시작한 부르조아 중산 계층과 지성인들은 체코 인 대중과 독일인 상층 사이의 갭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19세기 후반부터 독일인과 체코 인의 반목이 격심해지자, 체코 귀족층이 중산층 부르조아에 합세하였다. 체코 민족주의자들이 추구한 정치적 목표는 입헌 군주정, 의회주의, 연방주의, 가부장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경제 발전 등으로 서유럽에 대단히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체코인은 체코의 본래 역사적 전통을 되찾으려는 의도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권리들, 국가 권력, 그리고 제도에 있어서 원하는 모습들을 보였다. 폴란드와 헝가리는 사정이 달랐다. 헝가리는 독일로부터 더 많은 자치권을 누렸고, 귀족층은 본국인이었으며, 그 숫자는 동유럽에서 가장 많은 숫자였다. 동시에 헝가리의 중산층은 전혀 존재하지 않다시피 했다. 따라서, 헝가리 귀족의 세력은 왕권을 능가하였으며 농민들을 전제적으로 지배해 왔다. 민족주의에 대한 이들 지배층의 견해는 민족주의 운동이 마쟈르인 귀족들의 이권 보호, 자유권 보호와 동일한 것이었다. 그들의 자유는 권리 이상의 특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층 귀족들의 민족주의는 비록 혁명적이고 애국적이기는 하였으나, 동시에 대단히 계급 배타적이었으며, 전통적 색채를 띄었다. 이 특징은 폴란드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루마니아에서는 1848년까지는 귀족층들이 가장 독점적인 위치를 가지고 반동적 입장을 취해 왔다. 그러다가, 1859년 루마니아 왕국의 통일 이후부터는 정치가 민족주의 운동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였다. 민족주의는 독재적, 관료적 정부의 모든 활동과 정책을 합리화시키는 슬로건이 되었다. 농민 민족주의가 등장했던 불가리아나 세르비아는 오스만제국 지배 하에서 특히 많은 탄압을 받은 나라였다. 회교로 전향한 상층 슬라브인은 분권주의적 대영주, 봉건 귀족으로 존재하였을 뿐, 정교도 민족적 귀족 계급이 되지 못하였다. 따라서, 이들의 봉건적 영주는 오히려 역작용으로 농민 대중의 정치 의식을 일깨우는 역설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지주가 대부분 외래인이었던 것에 반해, 농민 다수는 슬라브 인이었고, 이들이 전통 문화, 언어, 제도를 그대로 보존함으로써 인민 민족주의의 강한 기반이 되었다.
③시민의식의 표현
이런 배경에서 생긴 시민의식의 차이는 동구에서 각기 다른 형태로 표현된다. 첫 번째 차이가 일당독재와 일인독재의 차이로 나타났다. 두 번째가 탈 소련운동과 반 스탈린주의 운동으로 나타났다. 시민의식의 차이는 언제나 대안 세력을 만들거나 조직하게 하여 구조적 불만을 좀더 빠르게 대응할 수 있게 하였다.
같은 시기에 같은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의식에서 국가가 수립되지만 폴란드와 체코, 헝가리에서는 일당독재를 만들었으며 유고와 루마니아 불가리아 알바니아는 같은 일당독재가 유연성이 떨어지는 일인독재로 흐르게 되었다. 티토에 의해 대안세력이나 불만세력을 모두 축출하여 사회가 일시 봉합된 유고, 1954년 서기장에 오른 지프코프(Tudor Zhivkov)가 1989년까지 장기 독재 체재한 불가리아, 1965년 공산당 지도자 게오르게 게오르규 데지(Gheorghe GheorghiuDej) 사망 이후 취임한 니콜라에 차우셰스쿠(Nicolae Ceau瑚escu) 당 제1서기가 점차 국가 권력을 독점하고 민족주의의 고취와 탈소(脫蘇) 자주 노선을 이용해 1969년 이후에는 `차우셰스쿠 노선'을 실시한 후 친족 연고자들을 국가 핵심 부서의 책임자로 앉혀 `일가 사회주의'를 건설 1990년까지 독재 체제가 유지된 루마니아, 1944년 권력을 장악한 엔버 호자가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고 경제와 사회를 근대화시키기 위해 독재 권력을 확보하여 1985년까지 독재정치를 한 알바니아. 모두 불만이 힘으로 억눌려졌지 대안 세력에 의해 해소되지 못한 채 유지되어 결국 후진성만 반복하게 되었다. 반면, 폴란드 체코 헝가리에서는 대중의 불만이 쌓여 표출이 되면 당내 다른 세력에 의해 교체됨으로 어느 정도 불만도 해소되었으며 점진적으로 발전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또 동구의 모든 국가가 설립될 때 소련의 영향으로 스탈린식 공산 정권이 들어서나 폴란드와 체코 헝가리에서는 탈 스탈린식, 반 소련운동이 일어난다. 폴란드에서는 1956년 6월 '포츠난' 노동자들이 빵과, 자유, 물가 인하, 임금인상, 소련으로부터의 독립 등을 요구하며 벌린 시위가 그것인데 이 시위는 폴란드 각지로 번졌으며 결국 군대에 의해 진압되었지만 또한 스탈린체제의 붕괴를 알리는 것 이였다. 이 시위는 민족주의적 공산주의자, 티토주의자 등으로 낙인찍혀 당에서 추방되었던 고물카의 당 복귀를 만들었으며 1956년 10월 민족주의적 사회주의자인 고물카가 폴란드 공산당 당 서기로 선출된 후 새로운 노선-탈 스탈린식의-을 실현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헝가리에서는 스탈린 사후 1953년 스탈린주의 비판소리가 높아질 당시 독재를 행사했던 라코시가 임레나지에 의해 권좌에서 밀려나게 된다. 임레나지는 탈 스탈린 정책을 실현시키는데 이러한 새 노선은 권좌에서 물러난 라코시가 이끄는 스탈린주의자들과 강경한 소수파들의 큰 반대를 받았다. 결국 소련의 흐르시츠프는 게레를 내세워 새 노선의 철폐를 기도하고, 소련의 이와 같은 행위에 1956년 10월 23일 대규모 학생들의 민족적 자유를 위한 시위가 무력충돌로 발전-이후의 과정은 헝가리 현대서 부분에 언급되어 있다-한다. 체코에서는 1967년부터 지식인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강력한 반정부-탈 스탈린 주의-운동이 확산되어 두브체크(A. Dubcek)가 등장한다. 개혁파들은 체코슬로바키아식 사회주의 즉 인간주의적 사회주의를 실현하나 1968년 8월 20일 바르샤바조약기구 연합군은 체코에 군사개입을 함으로 끝이나고 이것의 '프라하의 봄'-이 과정 역시 체코 현대사부분에 언급되어 있다-이다.
③시민의식의 표현
이런 배경에서 생긴 시민의식의 차이는 동구에서 각기 다른 형태로 표현된다. 첫 번째 차이가 일당독재와 일인독재의 차이로 나타났다. 두 번째가 탈 소련운동과 반 스탈린주의 운동으로 나타났다. 시민의식의 차이는 언제나 대안 세력을 만들거나 조직하게 하여 구조적 불만을 좀더 빠르게 대응할 수 있게 하였다.
같은 시기에 같은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의식에서 국가가 수립되지만 폴란드와 체코, 헝가리에서는 일당독재를 만들었으며 유고와 루마니아 불가리아 알바니아는 같은 일당독재가 유연성이 떨어지는 일인독재로 흐르게 되었다. 티토에 의해 대안세력이나 불만세력을 모두 축출하여 사회가 일시 봉합된 유고, 1954년 서기장에 오른 지프코프(Tudor Zhivkov)가 1989년까지 장기 독재 체재한 불가리아, 1965년 공산당 지도자 게오르게 게오르규 데지(Gheorghe GheorghiuDej) 사망 이후 취임한 니콜라에 차우셰스쿠(Nicolae Ceau瑚escu) 당 제1서기가 점차 국가 권력을 독점하고 민족주의의 고취와 탈소(脫蘇) 자주 노선을 이용해 1969년 이후에는 `차우셰스쿠 노선'을 실시한 후 친족 연고자들을 국가 핵심 부서의 책임자로 앉혀 `일가 사회주의'를 건설 1990년까지 독재 체제가 유지된 루마니아, 1944년 권력을 장악한 엔버 호자가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고 경제와 사회를 근대화시키기 위해 독재 권력을 확보하여 1985년까지 독재정치를 한 알바니아. 모두 불만이 힘으로 억눌려졌지 대안 세력에 의해 해소되지 못한 채 유지되어 결국 후진성만 반복하게 되었다. 반면, 폴란드 체코 헝가리에서는 대중의 불만이 쌓여 표출이 되면 당내 다른 세력에 의해 교체됨으로 어느 정도 불만도 해소되었으며 점진적으로 발전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또 동구의 모든 국가가 설립될 때 소련의 영향으로 스탈린식 공산 정권이 들어서나 폴란드와 체코 헝가리에서는 탈 스탈린식, 반 소련운동이 일어난다. 폴란드에서는 1956년 6월 '포츠난' 노동자들이 빵과, 자유, 물가 인하, 임금인상, 소련으로부터의 독립 등을 요구하며 벌린 시위가 그것인데 이 시위는 폴란드 각지로 번졌으며 결국 군대에 의해 진압되었지만 또한 스탈린체제의 붕괴를 알리는 것 이였다. 이 시위는 민족주의적 공산주의자, 티토주의자 등으로 낙인찍혀 당에서 추방되었던 고물카의 당 복귀를 만들었으며 1956년 10월 민족주의적 사회주의자인 고물카가 폴란드 공산당 당 서기로 선출된 후 새로운 노선-탈 스탈린식의-을 실현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헝가리에서는 스탈린 사후 1953년 스탈린주의 비판소리가 높아질 당시 독재를 행사했던 라코시가 임레나지에 의해 권좌에서 밀려나게 된다. 임레나지는 탈 스탈린 정책을 실현시키는데 이러한 새 노선은 권좌에서 물러난 라코시가 이끄는 스탈린주의자들과 강경한 소수파들의 큰 반대를 받았다. 결국 소련의 흐르시츠프는 게레를 내세워 새 노선의 철폐를 기도하고, 소련의 이와 같은 행위에 1956년 10월 23일 대규모 학생들의 민족적 자유를 위한 시위가 무력충돌로 발전-이후의 과정은 헝가리 현대서 부분에 언급되어 있다-한다. 체코에서는 1967년부터 지식인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강력한 반정부-탈 스탈린 주의-운동이 확산되어 두브체크(A. Dubcek)가 등장한다. 개혁파들은 체코슬로바키아식 사회주의 즉 인간주의적 사회주의를 실현하나 1968년 8월 20일 바르샤바조약기구 연합군은 체코에 군사개입을 함으로 끝이나고 이것의 '프라하의 봄'-이 과정 역시 체코 현대사부분에 언급되어 있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