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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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창조로부터 시작하여

2.부르심을 따라
1)아브라함
2)이삭
3)야곱
4)요셉

3.애굽에서 약속의 땅으로
1)애굽에서의 생활
2)모세
3)바로와의 대결
4)출애굽과 광야 생활
5)정복과 분배

4.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1)사사들
2)사무엘

5.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하소서
1)사울
2)다윗
3)솔로몬
4)갈라진 왕국
5)남유다와 북 이스라엘

6.성전에서 율법으로
1)포로에서 귀환까지

본문내용

맥을 이어간다. 바벨론은 인구분산으로 반란을 줄이기 위해 많은 사람을 포로로 끌고가지만, 앗시리아처럼 그곳 사람들을 이주시키지 않음으로 남유다는 북이스라엘처럼 혼혈된 사마리아인과 같은 사람들이 생겨나지 않는다. 남유다는 바벨론의 일개 주가 되고 왕이 아니라 파견된 총독이 다스리는데 첫 총독은 사반의 손자이며 아히감의 아들인 그달리야이다.(왕하 25:22) 총독 그달리야는 예루살렘이 파괴되어 미스바를 수도로 정하였고 이곳에서 두 달 동안 다스리다가 바벨론이 공격했을 때 암몬으로 도망갔다 돌아온 왕가의 한 인물인 이스마엘에게 암살당한다. 이때 바벨론의 관리와 군인들도 죽임을 당하여 바벨론의 보복을 두려워한 많은 사람들이 애굽으로 내려가게 되는데 예레미야도 이들과 동행하며, 이들에게 다시는 유다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바벨론은 느부갓네살이 왕으로 있을 때에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게 되지만 그가 죽은 뒤 나라는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한다. 다니엘은 이 당시에 활동하던 사람이며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높은 지위에 오른다. 느부갓네살은 전쟁에 뛰어난 왕이고 또한 건축에도 매우 조예가 있지만 그의 사후에 바벨론은 왕위를 차지하려는 싸움으로 여러 왕들이 암살된다.
하란 출신인 아람 귀족의 아들 니보니두스가 왕이 되었을 때 다시 한번 부흥의 기회를 맞는 듯 했지만 그의 아들 벨사살에게 나라를 맡긴 10년 동안의 공백으로 인해 멸망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몽한 다니엘이 등용되어 여호야긴 왕이 옥에서 풀려나는데도 영향을 주게 된다. 포로 중에는 선지자 에스겔이 있었는데 그는 하나님의 사자로서 죄를 꾸짖기도 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전파하는데, 설교를 통해서, 그들의 포로 됨은 하나님의 능력 없음이 아니고 그들의 죄 때문임을 깨닫게 한다.
백성들은 포로 기간 중에도 그들의 선지자와 제사장을 가지고 있었고 비교적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받음으로 서신 왕래를 통해 팔레스타인 땅의 백성들과 서로 교류하였다. 또한 땅을 경작할 수 있었으며 그들 자신의 능력대로 여러 곳에 고용되거나 자영업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포로 되었다는 그들의 수치는 하나님의 징게였으며 시편 137편은 이때에 쓰여진 것이다.
하나님의 도구로 이스라엘(북이스라엘, 남유다)을 멸망시킨 바벨론도 하나님의 또다른 도구인 페르시아라는 나라에게 멸망당하고 영원히 역사에서 사라진다. 바벨론을 정복한 페르시아 왕 고레스는 포로 된 유대 백성들을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조서를 내리게 되는데 제1차 귀환은 유대의 왕자 세스바살의 인도하에 4만2,360명의 백성과 7,337명의 노비가 돌아온다. 돌아온 그들은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 스룹바벨의 지도하에 기쁨으로 공사를 시작하지만 뜻밖의 사마리아인들의 반대에 부딪힌다. 게다가 백성들은 자신의 집을 짓는 데 더 열심히 갖게 되므로 성전 건축은 기초 단계에서 16년 동안이나 진척되지 못한다.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가 성전 건축을 촉구하여 4년 후 드디어 성전이 왕공된다.
제2차 귀환은 에스라에 의해 1,500명의 백성들이 돌아오는데 에스라는 주위의 많은 이방인들과 결혼한 유대 백성들의 죄악을 듣고 그의 옷을 찢고 머리털을 뜯으며 괴로워하며 기도를 드린다. 이방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백성들은 에스라의 권고로 당사자들간의 많은 상처와 곤경이 있었지만, 재판을 통해 3개월 안에 모든 결혼을 취소시키고 종교적, 정신적 체계를 다시 세우게 된다.
제3차 귀환은 느헤미야에 의해 이루어지며 그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인다. 그러나 사마리아 총독인 산발랏의 반대와 암몬 사람 도비야, 아라비아 사람 세겜의 반대로 큰 어려움에 처한다. 이에 느헤미야는 일하는 사람들을 둘로 나누어 일부는 성을 건축하고 일부는 방해자들의 공격을 수비하면서 52일 만에 성벽 건축을 마친다. 성벽이 완성된 후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왕의 명령에 따라 이 지역의 총독으로 남아 백성들의 빚을 탕감시키는 일과 성을 지키는 일을 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고취시키는 일을 한다. 먼저 초막절을 지킴으로 신앙을 확립시키고 제사장과 레위인의 조직을 재정비하고 이들을 이방세력으로부터 분리시킨다. 안식일을 지키는 일과 다시 만연된 이방인과의 혼합 결혼을 금지시키는 일을 하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유대 백성을 유지시키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조치들은 계속해서 나라 없이 살아가는 유대인으로서의 생활에서 이방인과 이방우상에 동화되지 않고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잇게 한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인 말라기는 제사장들의 경건성이 없음과 이방인과의 결혼, 성전을 유지하는 십일조의 경시 풍조 등의 죄악을 경고한다. 바벨론의 첫 번째 총독인 그달리야를 암살한 뒤 애굽으로 도망간 유대인들은 나일 강에 있는 엘레판틴 섬에서 살면서 성전을 지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본국 유대에 있는 사람들과 교류를 한다. 그러나 그곳 원주민들의 공격으로 성전이 파괴되자 본국에 도움을 요청하고 얼마간의 원조를 받게 된다.
실상 유대인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멸망하면서 주변지역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흩어짐은 성서의 예언을 이루기 위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후 신약이 시작되기까지 약 400년 동안은 신약시대를 준비하는 기간으로 볼 수 있다.
포로귀환 연대표
1차 귀환
2차 귀환
3차 귀환
연 대
기원전 538년
기원전 458년
기원전 445년
인 도 자
스룹바벨 예수아
에스라
느헤미야
바 사 왕
고레스
아닥사스다 1세
아닥사스다 1세
조서 내용
포로 귀향 허가
성전 건축 허가
성전 그릇 반환
건축재료 지원
포로 귀향 허가
재물 재정 지원
성직자 세금면제
관리조직 허용
예루살렘 증건 허락
건축재료 지원
귀환 자수
일반회중 42,360명 노비 7,337명
노래하는 자 200명
합계 49,897명
남자 1,496명
(여자, 어린이까지 5,000명)
레위인 38명
수종자 220명
합계 1,754명
통계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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