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상사 원효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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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사상사 원효대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元曉, 그는 누구인가

3. 時代的 背景

4. 主要 史料
1) 高仙寺誓幢和上碑
2) 芬皇寺和諍國師碑
3)『宋高僧傳』「元曉傳」
4)『華嚴宗祖師繪傳(華嚴緣起)』
5) 『三國遺事』「元曉不羈」

5. 元曉의 生涯

6. 元曉의 敎化行(無碍行)

7. 元曉의 思想
1) 著述目錄
2) 和諍思想
3) 一心思想
4) 敎判

8. 마치며

본문내용

것과 같을 뿐이다.”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경전의 우열을 고착화시켜 이해하려는 경향에 대한 원효의 비판적 태도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원효는 교판론 자체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인정하였는데, 그랬기에 『華嚴經疏』에서 독자적인 四敎判論을 건립하였던 것이다.
그러나『화엄경소』는 현재에 와서는 그 대부분이 흩어지고 그 일부만 전해지고 있으니 사교판론은 중국 화엄종 승려들의 인용문을 통해서만 겨우 골격을 알 수 있을 뿐이다.
法藏 智儼의 문하에서 의상과 동문수학했으며 화엄종의 제3조가 된다. 중국 화엄학을 체계화하였으며 그가 의상과 원효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원효 사교판론은 다음과 같다.
一. 三乘別敎이니 四諸敎와 緣起經 등이다.
二. 三乘通敎이니 般若經과 解深密經 등이다.
三. 一乘分敎이니 瓔珞經과 梵網經 등이다.
四. 一乘滿敎이니 華嚴經의 普賢敎이다.
이를 살펴보면 먼저 원효가 일승과 삼승을 구별하되 일승의 입장에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삼승 중에도 법이 空하다 보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살펴 별교와 통교로 나누었는데 이는 대 소승 이분법을 계승한 것이다. 한편 두 번째 문장을 보면 중관의『반야경』과 유식의『해심밀경』을 같은 삼승통교로 놓았는데 이렇듯 중관과 유식을 하나로 묶는 시도는 원효가 처음으로 원효의 교판에서 보이는 특징 중 하나이다. 원효는 『起信論疏』와『別記』에서 중관과 유식의 한계에 대해 설명하고『기신론』을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하며 두 사상의 화쟁을 꾀하였다. 사교판론에서 이 두 사상을 삼승통교에 나란히 놓은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김상현 지음, 앞의 책, 1994, p.184).
또한 세 번째 문장에서는 일승분교에『영락경』과『법망경』 이 두 경전은『화엄경』의 구상을 원용하여 5세기 경 증국에서 만든 僞經이라 한다(남동신 지음, 앞의 책, 1999, p.243).
을 나란히 놓았는데 이 또한 교판사상 원효가 처음이었다. 이 두 경전은 실천적인 보살도를 강조한 대승경전으로 원효는 이 두 경전의『화엄경』과의 친연성을 고려함과 동시에 실천을 중시하는 자신의 사상을 분명히 하기 위해 이 두 경전을 일승분교에 배정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인 일승만교에 오직『화엄경』하나만을 두니 이로써 모든 대립물간의 무차별성, 즉 圓融無碍를 설하는『화엄경』중심의 사교판론을 완성시켰다.
아울러 보충하자면 사교판론을 보면 원효의 다방면에 걸친 경전의 섭렵을 고려할 때 매우적은 수의 경전만이 언급되고 있는데 이는 원효 자신의 文約意豊이라는 저술방침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三藏 중에 經藏만을 대상으로 하고 論藏과 律藏은 제외시켰는데 이는 원효 자신이 경과 논을 엄격히 구분하는데서 말미암는다.
8. 마치며
본 글은 한국 사상사 수업의 과제물이다. 원래 과제물은 두 가지가 있었는데 글 첫머리에 써놓았듯이 하나는 한국 사상가의 저서를 읽고 그 解題를 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 사상가의 평전을 쓰는 것이었다. 이들 과제의 목적은 적어도 한국 사상사 수업을 들었다면 적어도 한국의 사상가 중 한 명과 그의 저서에 대해서는 알고 끝내자는 데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이에 두 과제에 각각 儒家와 佛敎의 인물을 배정하여 알아보기로 마음먹었고 첫 번째 과제물로 유가의 인물인 정약용의『牧民心書』해제를 쓰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과제에서는 불교의 인물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다 싶은 인물로 원효를 지목하여 지금 이렇게 그의 평전을 쓰고 있다. 그리고 원효에 대한 책을 읽고, 또 글을 진행해 나갈수록 내가 원효라는 큰 인물을 이제껏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글을 끝마치고 있는 이 순간에도 그의 사상의 넓고 깊음을 측량할 수 없어 마치 짙은 안개 속을 헤매이는 듯, 그의 사상에 대한 흐릿한 파악도 나에게는 어렵기만 하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 내가 원효에게 갖고 있던 이미지는 ‘신이담이 널리 알려진 고승’ 정도의 모습이었는데 그 실상을 조금씩 알게 되니 원효는 실로 한국 사상계의 우뚝 솟은 高峰이요, 그 앎을 행동과 일치시킨 몇 안되는 실천가였다. 그랬기에 박종홍 선생 같은 이는 원효가 우리 역사에 있다는 것에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했을 것이다. 그는 密經을 제외한 거의 모든 대승불교의 분과를 섭렵하였으며 이와 관련한 수많은 저서들을 남겼다. 그가 비록 그의 도반인 의상과 달리 세속의 거사행을 선택함으로써 그의 학통을 잇는 제자들을 길러내어 종단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그가 남긴 수많은 명저들을 통해 후학들은 그의 사상을 계승, 발전시켜 나갈 수 있었다. 그 큰 예로 대각국사 의천을 들 수 있다.
또한 그는 단순히 앎에서 그치지 않고 그 앎을 실천에 옮겨 중생들 속으로 들어가 교화행을 펼쳤다. 그는 신분이 결코 낮지 않았고 요석공주와의 인연으로 왕실과 인척간이었으며 학문의 수준 또한 깊었다. 그렇기에 원한다면 부귀와 명예를 모두 얻을 수 있었음에도 원효는 이것을 모두 포기하고 중생을 제도하는 길을 택한 것이었다. 원효는 그의 필생의 역작이요, 대작이 되었을지도 모를『화엄경소』의 저술을 券4 十廻向品에서 멈췄는데 이는 중생제도를 먼저 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끝으로 과제의 형식이 평전이니 글 말미에 원효에 대한 평으로 끝내는 것이 옳을 것이라 생각한다. 비록 일연의 ‘元曉不羈’나 이기영 박사의 ‘歸一心原 饒益衆生’과 같이 원효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나오는 함축적이고 적확한 평가를 할 수는 없겠지만 원효에 대한 나의 평으로 이 글을 마친다.
원효, 그는 세상만물을 한마음에 담은 대사상가요, 자유로운 삶 속에서 중생을 제도한 대실천가이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많은 가르침을 주는 영원한 스승이다.
※참고문헌※
고영섭,『한국불학사 신라 고려시대편』, 연기사, 1999.
김상현 지음,『역사로 읽는 원효』, 고려원, 1994.
金煐泰,「元曉의 新羅말 이름 ‘塞部’에 대하여」,『佛敎思想史論』, 민족사, 1992.
남동신 지음,『영원한 새벽 원효』, 새누리, 1999.
李光洙 著,『元曉大師』, 又新社, 1981.
이민수 역,『三國遺事』, 乙酉文化社, 1987.
황영선 편저,『원효의 생애와 사상』, 국학자료원,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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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1.05
  • 저작시기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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