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에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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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가야제국의 형성과 발전

2. 가야의 진출과 세력확장

3. 일본 속의 가야 문화

4. 가야의 멸망

5, 전기 가야연맹의 와해

6. 후기 가야연맹의 대두

7. 후기가야 南部諸國의 소멸

8. 수로왕비 허황옥은 인도에서 왔나

9. 가야는 왜 삼국에 들지 못했나?

10. 가야금에 얽힌 사연

11. 임나일본부, 무엇이 문제인가?

12. 기마민족설이란 무엇인가?

본문내용

소한 516-524년 즉 520년 전후로 볼 때, 이상의 6세기 전반의 남부 지역의 세력권 편제상 가야 지역에 대한 백제의 진출이 어느 정도 진행된 시점을 반영하는 것이다. 따라서 12곡을 만든 목적은 이 같은 백제의 침입에 대하여, 고령 지역연맹체의 결속을 강화하고자 하는 마지막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② 가야 연맹의 결속을 다짐
11. 임나일본부, 무엇이 문제인가 「시민을 위한 가야사」p116-117
1) 임나일본부 : 임나(任那) + 일본(日本) + 부(府)의 합성어
① 임나 : 가야 제국 중 특정한 일국을 지칭하는 협의의 임나국과 가야 전체를 지칭하는 광의의 개념, 그리고 단순히 일본측이 말하는 허구의 소위 임나관가(일본부) 등 3가지 개념
② 일본 : 왜(倭)를 일본으로 고쳐 쓴 것에 불과 → 일본이란 국호는 7세기 이후에나 확인되는 것으로 임나일본부의 문제가 거론되는 6세기 중반에는 존재하지 않음.
③ 부 : 막부(幕府)를 의미(중국의 한 대에서 비롯하여 장군이 천자로부터 위임받은 군사권과 행정권을 행사하기 위하여 일정한 지역에 설치한 것) → 고대의 일본에서 중국과 같은 막부제가 시행된 적 없었고, 6세기에 부가 존재하였음을 믿을 수 없다.
2) 일본측의 주장
4세기에 있어서 야마토 세력에 의한 서부 일본의 통일을 인정하고 그러한 국내적 안전을 기반으로 4세기 후반부터 5세기 초에 선진적인 생산기술 및 철 자원을 획득하기 위해 한반도에 진출하여 그 당시 소국분립 상태였던 한반도 남부의 변한제국을 그 세력하에 두었다고 주장함.
3) 우리측 반박
① 「삼국사기」열전 강수조의 기록 : 임나 가량인의 가량은 가야이며 강수가 임나가야인 이었음을 알 수 있다.
② 광개토대왕 비문 : 임나가라란 나라이름을 나타내고, 안라인이란 말이 보이는데 안라란 지금의 경남 함안으로 가야국의 하나임. 광개토대왕 비문은 장수왕이 아버지의 업적을 칭송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서 왜가 어떻고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습니다.
→ 임나일본부란 왜에서 임나(가야)에 파견된 사신이 그 실체임.(최근 한일양국의 고대사학계의 많은 지지를 받고 있음)
- 여러 가지 설 - 「시민을 위한 가야사」p108-111
① 출선기관설(出先機關說) : 출선기관이란 일본어적 표현으로서 출장소 내지는 출장기관과 같은 뜻이다. 고대의 일본이 4-6세기의 이백 년간에 걸쳐서 한반도 남부를 근대의 식민지와 같이 경영하였으며, 그 중심적 통치기관이 임나일본부였다고 해석하여, 이름바 남선경영론의 골자를 이루었던 견해이다.
② 가야(伽倻)의 왜설(倭說) : 가야 지역에도 일부의 왜인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게 되었으며 임나일본부는 그러한 왜인들 내지는 왜인과 한인과의 혼혈인들을 통제하는 행정기관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③ 분국설(分國說) : 선사시대 이래 삼한 삼국의 주민들은 일본열도에 이주하여 각기 자신들의 출신지와 같은 나라를 건국하여 모국에 대하여 분국과 같은 위치에 있었다고 전제하고, 이들 분국들 중에는 가야인들이 현재의 히로시마 동부와 오카야마에 걸치는 지역에 건국한 임나국이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임나국을 중심으로 서부에는 백제계의 분국이, 동북쪽에는 신라계의 분국이, 동쪽에는 고구려의 분국이 각각 위치하였으며, 또한 동쪽으로는 대화정권이 위치하고 있었다고 해석하였다. 고대 일본의 한반도 남부에 대한 진출론을 완전히 거꾸로 하여 고대 한국의 일본열도 진출론을 확립하고 같은 맥락에서 임나일본부의 문제를 해석하였던 것이다.
④ 백제군사령부설(百濟軍司令部說) : 4세기 말경에 왜가 가라칠국을 점령하였다는 기술에 보이는 역사적 사실이란 백제의 가야 제국 정복이라고 해석하였으며, 6세기 중반에 보이는 임나일본부란 다름 아닌 임나백제부와 같은 것이었다고 해석하고, 임나백제부는 백제가 군사적 목적으로 가야 지역에 설치하였던 군사령부와 같은 성격을 가졌던 것으로 해석하였다.
⑤ 외교사절설(外交使節說) : 임나일본부를 임나에 파견되어진 왜의 사신들로 이해하였다.
12. 기마민족설이란 무엇인가 「시민을 위한 가야사」p69-76
1) 기마민족설(騎馬民族說) : 일본의 고대국가가 기마민족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보는 학설
사전적 의미 → 말을 타는 민족
① 기마민족설의 참신성 : 일본의 고대국가가 민족의 기원을 동북아시아 및 한반도와 관련하여 추구하려 한 점과 전통적 황국사관 황국사관 : 일본의 군국주의 시대 국가통치의 산물. “천황통치”를 의미하며, “모든 일본국민이 한마음으로 천황의 뜻을 받들고 충성과 효도의 미덕을 발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의 틀을 과감히 벗어난 점.
② 문제점 : 일본학계에서 그들의 민족원류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제기된 가설이기 때문에 이들 주장에는 애초부터 한국사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을 염두에 볼 필요가 있다.
2) 에가미설 서기 300년을 전후한 시기에 중국 만리장성의 이북에 살고 있었던 오호민족이 장성을 넘어 중국의 화복지방으로 이동할 무렵, 고구려와 가까운 퉁구스 계통의 북방기마민족의 일부가 새로운 무기와 말을 가지고 한반도로 남하하여 당시 남부지방에 있었던 구야국(지금의 김해지역 부근을 가리킴. 즉 가락국임)을 중심으로 한 변한지역을 정복하였다고 한다. “일본열도 내 기마민족 정복왕조론”의 약칭 「시민을 위한 가야사」p71
: 종래에 주장되었던 임나일본부설과 어느 정도 차이를 보이는 듯 하지만 일본열도내의 세력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하고 있었다고 보는 점에서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즉 야마토 정권을 세운 기마민족은 원래의 근거지였던 한반도 남부 지역을 여전히 지배하고 있었다고 봄.
3) 레드야드 : 에가미설의 시기적 모순을 합리적으로 해석하려는데 중점을 두고 멸망한 부여족 강조 → 한국의 역사적 기록 및 당시의 한반도 정세를 무시하고 있음.
《참고문헌》
1. 「신편가야사」혜안 출판사 윤석효 지음
2. 「시민을 위한 가야사」부산 경남 연구소 엮음 권오영 남재우 외 9명
3. 「한국 고대사의 숨은 이야기」(주)우리교육 박승제 지음
4. 「한국고대사와 고고학」신서원 출판사 김정배 지음
5. 「고구려 백제 신라와 가야를 찾아서」도서출판 한길사 이이화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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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06.02.03
  • 저작시기2006.0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35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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