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의와 천문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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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간의[簡儀]

(2) 간의

(3) 소간의

<동아시아의 천문활동>

◆천문활동과 역법의 기준기; 규표

◆규표의 구조

3. 간의

본문내용

합쳐 보통 규표라 부르는 것이다. 곽수경은 그림자의 길이를 정확히 재기 위해 높이를 5배로 하고서 측정기도 개선하여 새로운 장비를 붙였다. "높은 막대라 불리는 곽수경의 규표는 첫째, 그 꼭대기에 지름이 3촌되는 가로막대를 올려놓았다. 이 막대로부터 규면까지의 높이가 40척을 이룬다. 이 가로막대 위에는 수평을 맞추는 수준장치가 있어 막대를 수평으로 유지하도록 조정할 수 있었다. 둘째로, 규면 위에는 경부를 장치했는데 이것이 극히 중요한 곽수경의 발명으로 평가된다. 가로 2촌 세로 4촌의 구리판에 작은 구멍을 뚫고 그것을 규면상에서 남북으로 자유로 이동하게 만든 축에 고정시켰다. 그리고 구리판은 태양광선에 직각이 되도록 방향조정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경부를 이동하여 태양-가로막대 -경부구멍을 일직선 위에 모아 놓으면 구멍을 통과한 태양의 영상이 가운데에 가로줄이 그어진채 바닥에 선명하게 드러난다. "바늘구멍 사진기"의 원리에 의한 것이다. 셋째로 곽수경은 가로막대로 갈라진 태양의 상을 정밀히 측정하기 위해 경부 아래에 일종의 관측용 탁자를 마련했는데 그것이 "규궤"였다. 1976년에 발표된 실험결과에 의하면 경부를 1.5- 2mm만 이동하면 규궤안에 나타나는 태양의 상을 양분해주던 막대의 그림자가 이미 양분이 아니라 한쪽으로 치우치고 있음을 뚜렷이 보여주었다. 얼마나 정확한 관측이 가능하게 만든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세종대의 규표가 얼마나 곽수경의 방식을 따른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세종대에 40척짜리 규표와 경부가 있었다는 점에서 곽수경의 것을 상당히 따르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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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3.23
  • 저작시기2006.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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