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실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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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레포트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序論

Ⅱ. 本論
1. 生涯
2. 業績
-發明品
3. 後代의 認識
-蔣英實賞
-발명, 획기적인 창의성

Ⅲ. 結論

본문내용

우리 나라에도 이렇게 상으로써 남아 후대에 그의 정신과 업적을 기리게 하는 상이 국내 과학분야 최고의 상인 장영실상이다.
장영실상은 뛰어난 과학적 재능을 바탕으로 우수한 신기술 제품을 개발한 사람에게 주는, 우리 나라 산업 기술 분야의 최고상이다. 국내 산업계 기술개발 장려를 위한 상으로 조선 세종 때 측우기, 자격루, 우량계 등 수많은 발명품을 남긴 장영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과학기술의 독창성, 기술적 중요성이 인정되는 제품에 주어진다. IR은 Industrial Research의 약자로 산업기술연구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52는 1년 52주동안 매주 1개 제품씩을 시상한다는 의미로,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와 매일경제신문사가 공동주관하고 과학기술부가 후원하여 91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국내최고의 산업기술상이다. 이 상의 제정목적은 국내기업과 연구소 등의 기술개발을 촉진하고 기술개발 담당자의 사기를 앙양시키며 산업기술 혁신의 풍토를 조성하고, 수상제품과 기업에 대한 언론홍보를 통해 초기시장진출 기반을 조성하는데 있다. 시상 대상은 국내에서 개발된 신기술 개발제품 중 심사 시기 전 1년 동안(단 수송기계, 자동화기계 분야는 2년 동안)에 실용화한 제품으로 독창성, 경제성, 기술적 중요성 등을 인정받은 우수한 개발제품이다. 1991년 제1주 현대자동차(주)의 α―1.5엔진 및 트랜스미션을 시작으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매주 시상중에 있으며, 수상한 제품은 서울과학관에 전시된다. 참가하는 순서는 신청(기업, 추천기관)-접수(산기협)-예비심사(전문분과위원회)-본심사(심사위원회)-시상(산기협, 매일경제신문사)이며, 수상작은 각종 지원을 얻게 된다. 시장진출지원으로 매일경제신문사 등 언론매체를 통해 수상제품의 우수성을 정기적, 집중적으로 취재하여 홍보, 장영실상 홈페이지를 통한 홍보, 산기협 발간 월간지 ‘기술과 경영’에 게재 홍보, 수상제품에 대한 다각적 홍보방안 마련이 주어지고 수상자에 대해서는 청와대 초청 간담회, 특별수련회 등 수상자 초청 행사의 정기적 개최, 정부의 훈ㆍ포장과 과학기술 타상의 수상후보자로 적극 지원, 매년 발간되는 IR52 장영실상 수상집「자주기술의 승리」에 게재된다. 금융면에서 기업은행, 국민은행, 산업은행 등 금융기관의 기술개발자금 우선지원, 기술신용보증기금의 기술우대보증이 지원된다. 92년~93년 대덕연구단지내 국립중앙과학관에서 개최되었고, 94년~2001년 서울과학관 산업기술관에서 개최되었으며 2003년~현재 매일경제신문사 한상비즈니스센터 수상제품 무료 전시·지원되고 있다. 장영실상 이외에도 과학기술진흥유공자포상이나 대한민국과학기술상 등이 과학기술분야 상이 있으나 그 권위에 미치지 못한다.
그리고 그의 업적을 기려 만든 단체의 또다른 예로 그가 태어난 부산에 설립된 연제구 연산9동의 장영실과학고등학교가 2002년에 설립되었다.
Ⅲ. 결론
장영실은 부산 동래현에서 관기의 아들로 태어나 신분제 사회에서 천민으로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하였고 그 결과, 이례적으로 정3품의 벼슬에 까지 올라가는 진풍경을 자아내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좌절하지 않고, 그 속에서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으로 태종과 세종의 두 임금에게 인정을 받아(<<世宗實錄>>을 보면 세종 15년 9월조에 ‘태종이 그를 보호하였다. 나도 역시 그를 아낀다’고 기록하고 있어 태종과 세종이 장영실을 얼마나 총애하였는가를 알려준다.) 우리 역사 속에 찬란하게 빛날 문화재를 여럿 만들어 내었고, 조선이라는 작은 나라에 당시의 대국 중국과 어깨를 견줄 만한 발명들을 연이어 해냈다. 하지만 그가 해낸 업적들에 비하면 초라할 정도의 실수 하나로 역사의 후면으로 사라져 버린 천재. 만약에 그 작은 실수에 대한 세종의 너그러운 이해가 있었거나, 그 작은 실수 자체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분명 그에 대해 더 분명하고 자세한 사료를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어쨌든 비운한 말년의 운명에도 그는 분명 부산이 낳은 한국 최고의 발명가이며 부산을 빛낸 인물 중 당당히 그 한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있다.
-참고문헌-
<<장영실상>>, 이주호, 한국공학교육학회, 제1권2호pp.108-113, 1994
<<천민 출신의 과학자 장영실>>, 이이화, 월간사회평론, 1991
<<창의적 행정의 요인분석>>, 천대윤, 한국행정학회, 2001/289~304페이지
<<탁월한 손재수의 기술자 장영실(蔣英實)>>, 박성래, 과학동아, 1986. 9
http://www.IR5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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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11.04.10
  • 저작시기2009.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6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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