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삼국유사(三國遺事란)?
-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비교
- 삼국유사가 사서로써 지니는 가치
- 삼국유사의 체제
- 향가에 대하여
- 삼국유사의 내용
- 삼국유사 내용정리
-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비교
- 삼국유사가 사서로써 지니는 가치
- 삼국유사의 체제
- 향가에 대하여
- 삼국유사의 내용
- 삼국유사 내용정리
본문내용
다는 내용이다. 이를테면 왕의 생명을 위협하는 여우를 물리쳤다든가 하는 내용들이 주된 내용의 일부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일연이 현세의 업과 고통을 없애고 복을 구하는 밀교에 대해서 일연이 비판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되게 황당한 내용이지만 그것들이 우리 역사의 자주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감통편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감흥편은 일종의 불교 신앙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일으킨 기적에 관한 내용이다. 또한 이 감통편은 일반 신자들을 그 주인공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아마도 일반인들에게 좀 더 쉽게 읽혀 졌을 것이며 모두가 공감하기 편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우리는 이 감흥편을 통해 불교가 얼마나 사회를 관통하고 있으며 일반인들에게 얼마나 지지를 얻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 부분을 통해 그때 당시의 불교의 위상에 대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부분이 우리가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배웠던 많은 향가들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는 ‘제망매가’, ‘도솔가’, ‘원왕생가’등 우리가 수업시간에 한 번쯤 들어봤을 향가들을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 문학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향가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감흥 편은 큰 의의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의 대표적인 일화로는 평범한 계집종이었던 육면이 자신의 일에 성심성의를 다함과 동시에 불교에 지극정성을 다 바쳐 끝내는 극락에 달았다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기억할 것은 이 부분 역시 비합리적인 기적과 관련된 것들을 그때 당시의 사회를 지배하던 불교를 옹호하기위한 장치로써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피은’ 부분을 살펴보자. 이 부분의 주제인 피은의 어휘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보자. ‘피은’ 의 ‘피’는 ‘피하다‘는 뜻을 가지는 한자이고 ‘은’ 은 ‘숨기다‘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즉 이 부분은 세상을 피하여 다른 곳으로 은둔함으로써 자신만의 경기를 개척했던 승려들의 얘기를 담고 있다. 이러한 승려들은 속세와의 인연을 완전히 끊어버리지만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내세 정토의 귀의하려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따지고 봤을 때 승려들 자체가 본래 세속과 단절된 존재임은 모두가 아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현대적 개념의 승려들로써는 당연한 생각이다. 그러나 고려의 승려의 역할은 다소 달랐다. 그들은 사회로부터 완전히 격리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조선시대의 승려들과는 다르게 그들은 사회의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그 것들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던 이들이다 그리하여 이 ‘피은’ 편의 승려들의 ‘은둔’을 무조건적인 사회와의 단절이나 현실도피적인 개념이로 보는 것보다 그러한 것들이 그때 당시의 사회가 지닌 모순이나 정당치 않은 규범에 벗어나려 했던 승려들의 자율적 정신으로 볼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일화로는 혜연이 깨달음을 얻은 일화를 들 수 있다. 백제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승려가 되어 깨달음을 얻기 위해 노력했던 혜연은 오로지 다른 것에 구애 받지 않고 법화경을 외울 뿐이었다. 그가 불경을 외우거나 강론을 하면 사방 먼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리곤 했다. 그러나 그는 이런 번잡함을 싫어하여 달라산에 가서 살았고 조용히 깨달음을 갈구하다가 죽음에 이르렀다. 그의 시신을 옮겨 두었으나 호랑이가 그 유해를 다 씹어 먹어 해골과 혀만 남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그의 혀는 오히려 붉고 부드러웠다. 후에는 그것이 검붉어지고 돌과 같이 단단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다른 승려들과 속인들은 모두 그를 존경하여 그의 유해를 석탑 속에 간직하였다. 이런 얘기들은 ‘피은’의 내용을 잘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장닌 ‘효선’ 편은 말 그대로 효성스러운 사람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사실 일연 자신도 매우 효자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왕에게 어머니를 위해 여러 차례 고향으로 내려가길 간청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편의 얘기들은 모두가 효도에 관환 눈물겨운 얘기들을 다루고 있다. 물론 효의 개념은 유교와 관련된 것이지만 유, 불, 도 사상을 어느 정도 모두 담고 있는 신라의 풍류도 사상으로 보았을 때 효도란 신라사회에선 중요한 부분으로 여겨진다. 대표적인 일화로는 진정법사의 얘기를 들 수 있다. 가난한 그에게 남은 재산이라고는 유일하게 다리가 부러진 솥 하나 뿐 이었다. 그런데 그마저도 그의 어머님이 시주에 바쳐버렸다. 그러나 그는 결코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처님을 위해 시주하는 것을 잘 한 것이라 말하며 그의 어머니를 옹호했다. 지극히 어머니를 사랑했던 그는 그의 어머니에게 효를 다하고 뜻을 깨닫기 위해 승려가 되겠다고 얘기했다. 그러자 그의 어머니는 자신은 신경 쓰지 말고 그의 신념을 이루라고 얘기했다. 그러자 그는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출가하려하자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남은 식량을 먹기를 원했다. 그러나 가난한 집 사정을 알았던 그는 반대했으나 그의 어머니가 원하셔서 어쩔 수없이 그의 어머니가 주신 식량을 들고 떠났다. 이런 얘기는 효선편의 얘기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5권에서 반드시 인지해야 할 것은 이것이라 느꼈다. 5권도 삼국유사가 쓰인 주제의식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삼국유사가 쓰여 진 것은 무신정변이후 몽고의 위협을 받던 고려의 매우 위기인 시기였다. 그때에 그는 이런 힘든 시기에 자주적인 의식을 심어줌으로써 일반 백성들에게 힘을 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가 제시하는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인 얘기들은 자주성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였던 것이라 여겨진다. 삼국유사는 신이하고 불가능할 듯 한 얘기를 다룸으로써 조선시대 배척 되었다. 유교적 사관에서는 삼국유사가 당연히 허무맹랑한 얘기일뿐더러 유교 사상의 궤를 이루는 ‘충’이란 개념보다는 자주성에 기반을 둔 민족성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적합하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허나 이러한 것은 그때 당시의 고려 사회로서는 그때에 직면한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하나의 도구가 아니었을까? 이러한 점에서 나는 일연이 종교인을 떠나서 당시의 고려를 위해 자신의 정열을 바친 민족주의자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감통편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감흥편은 일종의 불교 신앙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일으킨 기적에 관한 내용이다. 또한 이 감통편은 일반 신자들을 그 주인공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아마도 일반인들에게 좀 더 쉽게 읽혀 졌을 것이며 모두가 공감하기 편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우리는 이 감흥편을 통해 불교가 얼마나 사회를 관통하고 있으며 일반인들에게 얼마나 지지를 얻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 부분을 통해 그때 당시의 불교의 위상에 대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부분이 우리가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배웠던 많은 향가들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는 ‘제망매가’, ‘도솔가’, ‘원왕생가’등 우리가 수업시간에 한 번쯤 들어봤을 향가들을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 문학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향가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감흥 편은 큰 의의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의 대표적인 일화로는 평범한 계집종이었던 육면이 자신의 일에 성심성의를 다함과 동시에 불교에 지극정성을 다 바쳐 끝내는 극락에 달았다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기억할 것은 이 부분 역시 비합리적인 기적과 관련된 것들을 그때 당시의 사회를 지배하던 불교를 옹호하기위한 장치로써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피은’ 부분을 살펴보자. 이 부분의 주제인 피은의 어휘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보자. ‘피은’ 의 ‘피’는 ‘피하다‘는 뜻을 가지는 한자이고 ‘은’ 은 ‘숨기다‘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즉 이 부분은 세상을 피하여 다른 곳으로 은둔함으로써 자신만의 경기를 개척했던 승려들의 얘기를 담고 있다. 이러한 승려들은 속세와의 인연을 완전히 끊어버리지만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내세 정토의 귀의하려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따지고 봤을 때 승려들 자체가 본래 세속과 단절된 존재임은 모두가 아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현대적 개념의 승려들로써는 당연한 생각이다. 그러나 고려의 승려의 역할은 다소 달랐다. 그들은 사회로부터 완전히 격리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조선시대의 승려들과는 다르게 그들은 사회의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그 것들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던 이들이다 그리하여 이 ‘피은’ 편의 승려들의 ‘은둔’을 무조건적인 사회와의 단절이나 현실도피적인 개념이로 보는 것보다 그러한 것들이 그때 당시의 사회가 지닌 모순이나 정당치 않은 규범에 벗어나려 했던 승려들의 자율적 정신으로 볼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일화로는 혜연이 깨달음을 얻은 일화를 들 수 있다. 백제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승려가 되어 깨달음을 얻기 위해 노력했던 혜연은 오로지 다른 것에 구애 받지 않고 법화경을 외울 뿐이었다. 그가 불경을 외우거나 강론을 하면 사방 먼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리곤 했다. 그러나 그는 이런 번잡함을 싫어하여 달라산에 가서 살았고 조용히 깨달음을 갈구하다가 죽음에 이르렀다. 그의 시신을 옮겨 두었으나 호랑이가 그 유해를 다 씹어 먹어 해골과 혀만 남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그의 혀는 오히려 붉고 부드러웠다. 후에는 그것이 검붉어지고 돌과 같이 단단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다른 승려들과 속인들은 모두 그를 존경하여 그의 유해를 석탑 속에 간직하였다. 이런 얘기들은 ‘피은’의 내용을 잘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장닌 ‘효선’ 편은 말 그대로 효성스러운 사람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사실 일연 자신도 매우 효자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왕에게 어머니를 위해 여러 차례 고향으로 내려가길 간청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편의 얘기들은 모두가 효도에 관환 눈물겨운 얘기들을 다루고 있다. 물론 효의 개념은 유교와 관련된 것이지만 유, 불, 도 사상을 어느 정도 모두 담고 있는 신라의 풍류도 사상으로 보았을 때 효도란 신라사회에선 중요한 부분으로 여겨진다. 대표적인 일화로는 진정법사의 얘기를 들 수 있다. 가난한 그에게 남은 재산이라고는 유일하게 다리가 부러진 솥 하나 뿐 이었다. 그런데 그마저도 그의 어머님이 시주에 바쳐버렸다. 그러나 그는 결코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처님을 위해 시주하는 것을 잘 한 것이라 말하며 그의 어머니를 옹호했다. 지극히 어머니를 사랑했던 그는 그의 어머니에게 효를 다하고 뜻을 깨닫기 위해 승려가 되겠다고 얘기했다. 그러자 그의 어머니는 자신은 신경 쓰지 말고 그의 신념을 이루라고 얘기했다. 그러자 그는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출가하려하자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남은 식량을 먹기를 원했다. 그러나 가난한 집 사정을 알았던 그는 반대했으나 그의 어머니가 원하셔서 어쩔 수없이 그의 어머니가 주신 식량을 들고 떠났다. 이런 얘기는 효선편의 얘기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5권에서 반드시 인지해야 할 것은 이것이라 느꼈다. 5권도 삼국유사가 쓰인 주제의식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삼국유사가 쓰여 진 것은 무신정변이후 몽고의 위협을 받던 고려의 매우 위기인 시기였다. 그때에 그는 이런 힘든 시기에 자주적인 의식을 심어줌으로써 일반 백성들에게 힘을 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가 제시하는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인 얘기들은 자주성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였던 것이라 여겨진다. 삼국유사는 신이하고 불가능할 듯 한 얘기를 다룸으로써 조선시대 배척 되었다. 유교적 사관에서는 삼국유사가 당연히 허무맹랑한 얘기일뿐더러 유교 사상의 궤를 이루는 ‘충’이란 개념보다는 자주성에 기반을 둔 민족성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적합하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허나 이러한 것은 그때 당시의 고려 사회로서는 그때에 직면한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하나의 도구가 아니었을까? 이러한 점에서 나는 일연이 종교인을 떠나서 당시의 고려를 위해 자신의 정열을 바친 민족주의자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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