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일본부의 제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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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임나일본부의 제문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들어가며

Ⅰ. 임나일본부 연구가 걸어 온 길

Ⅱ. 종래의 연구에 대한 비판

맺음말

본문내용

닌 것이다. 대가야(고령)의 후예로서 조상대에 신라가 충주로 사민(斯民)시켰던 집안의 인물이었다. 창원 봉림사의 <진경대사탑비>(923)에도 신라인 진경대사(眞鏡大師)가 임나왕족의 후예임을 밝히는 구절이 확인된다. 임나는 경남 김해의 가야를 가리킨다. 결국 임나는 한남부의 가야로서, 일본열도의 어디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일본열도에 가야계 분국이 존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러나 『일본서기』에 기록된 임나일본부의 관련자료는 가야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역사적 사실이 반영된 것으로 보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맺음말
새로운 연구방향
이상과 같이 임나일본부에 대한 연구사와 그에 대한 간단한 비판을 제시했다. 앞으로 한일 학계의 객관적 연구를 위해서 반드시 극복해야 하거나 전제로 삼아야 할 몇 가지를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 짓겠다.
첫째, 임나일본부의 문제는 고대사의 연구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연구의 대부분이 근현대 한일 양국의 정치적 변화에 좌우되어 왔다. 일제의 조선병합과 강점기에는 한남부에 대한 일본의 통치기관으로 이해되었고, 1960-70년대 초의 미일안보협약반대투쟁기에는 통치기관설에 대한 재검토와 수정론이 제시되었다. 북한과 남한에서는 일본에 대한 비판과 대안으로 분국론과 백제군사령부설이 제시되었지만, 감정적 반발의 수준을 넘는 것은 아니었다.
한일 양국은 고대 한일관계사를 주종관계로 파악하고, 어느 쪽이 주고, 어느 쪽이 종이었던가를 증명하는 데 골몰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의 연구는 오히려 근대사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임나일본부 연구를 한국과 일본이라는 현대적인 국가 의식의 과잉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둘째, 현대적 국가 의식을 배제할 수 있는 방법은 오히려 『일본서기』로 다시 돌아가는 일이다. 객관적인 사료 비판을 통해 관련 기술을 다시 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우선은 『일본서기』의 기록을 있는 그대로 보는 태도도 필요하다. 임나일본부의 내용에서 행정적 통치나 군사적 지배와 같은 것은 단 한자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는 통치기관을, 한국에서는 군정기관을 상정하였다. 또 이러한 연구의 대부분은 임나일본부의 성립을 4세기 신공기에서 구하였다. 그러나 임나일본부는 무려 200년 뒤인 6세기의 흠명기에 등장하고 있다. 임나일본부의 기록도 없는 신공기에서 기원이나 성격을 찾으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일본학계가 먼저 시작했던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같은 방법으로 지배의 주체만을 왜에서 백제로 바꾼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본서기』의 정밀한 사료비판은 다음 문제일 수 있다. 임나일본부의 해석은 임나일본부가 기록된 흠명기에 천착해 볼 일이다. 흠명기의 기술에 신공기와 관계되는 것 같이 보이는 부분은 『일본서기』의 역사관이나, 『일본서기』가 인용한 「백제삼서(百濟三書)」에 포함되었던 백제의 외교적 주장으로 분석하는 시각이 중요하다.
셋째, 가야제국의 자율적 발전론과 이해관계에 기초해야할 것이다.
임나일본부 관련의 역사가 전개된 곳은 가야 지역이었다. 왜도 아니고 백제도 아니었다. 지금까지의 연구는 당사자인 가야-임나 부재의 임나일본부론이었다. 왜나 백제의 세력만이 강조되었고 가야는 배제되어 있었다. 왜는 선진문물의 공급을, 백제는 대신라 전선의 완충지대 확보를 목적으로 하였다. 통치나 군정은 아니었다. 왜나 백제의 이해를 통치나 군정으로 설정했기 때문에 잘 풀리지 않았고, 『일본서기』에조차도 씌어있지 않은 역사를 창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반대로 가야제국의 이해 관계를 중심에 놓고 보면 임나일본부의 문제는 쉽게 풀릴 수 있다.
종래 연구에서 왜나 백제의 지배나 영향력 하에 있는 임나일본부가 어째서 왜나 백제의 적국이었던 신라와 친선외교를 전개하고 있는지에 대해 도무지 이해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백제와 신라의 침입에 대해 독립을 유지하고자 했던 가야제국의 이해관계를 중심에 놓고 보면 이 문제는 쉽게 풀릴 수 있다. 신라의 침입에는 친백제외교로, 백제의 침입에는 다시 친신라외교로 해결하려 했던 가야제국의 이해와 꼭 맞아 떨어지는 외교활동을 임나일본부들은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의 연구는 가야제국의 이해관계를 중심에 놓고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 참고 ■
이영식, "임나일본부에 대한 연구의 역사",『우리역사를 의심한다』,서해문집, 2002
한국역사연구회, "임나일본부, 무엇이 문제인가",『한국고대사 산책』,역사비평,2002
이희근, 『한국사는 없다』, 사람과사람, 2001
  • 가격1,000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06.05.09
  • 저작시기2006.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48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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