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들어가며
Ⅱ. 아즈치 모모야마시대의 시작
1. 막부의 쇠퇴와 지역소국가의 성립
2. 오다 노부나가의 등장
3. 오다 노부나가의 천하통일야망
4. 오다 노부나가의 죽음과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등장
5. 히데요시의 통치
6. 임진왜란
7. 남만문화
Ⅲ. 마치며
Ⅱ. 아즈치 모모야마시대의 시작
1. 막부의 쇠퇴와 지역소국가의 성립
2. 오다 노부나가의 등장
3. 오다 노부나가의 천하통일야망
4. 오다 노부나가의 죽음과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등장
5. 히데요시의 통치
6. 임진왜란
7. 남만문화
Ⅲ. 마치며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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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세력확대를 좀더 본격화하기 위해 일본을 준관구지역으로 승격시키고 일본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였고 일본지역을 3교구로 나누었으며 교육기관을 설립하여 일본인 사제와 정직자의 양성에 착수하였다. 그리고 1582년 기독교 마이묘인 오오토모 소오린과 아리마 하리노부, 오오무라 스미타다의 대리인을 로마교황에게 파견한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워 4명의 소년사절을 인솔하여 덴쇼오유럽파견사절이라는 이름으로 로마를 방문하였다.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와 마찬가지로 기독교에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통일정책의 일환으로 보호하고 이용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히데요시의 주변에는 기독교 무장이 있었던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히데요시는 1587년 6월 돌연 하카다에서 선교사 추방령을 발하고 예수회 신부들에게 일본 퇴거를 명령하였다. 그리고 나가사키를 몰수하고 직할령으로 삼았다. 그러면서 무역은 계속해서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리고 일반하층민에게도 신앙의 자유는 보장되었다. 그것은 기독교의 정치세력화를 방지하고 무역에 대한 독점권을 확립하려는 수단이었으나 무역에서 예수회가 조정자역할을 한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금령을 완화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금령은 이에야스 시대에도 계속 지속되었고 점차 그 탄압은 심화되었다.
이러한 기독교문화는 유럽문화의 도입을 통한 일본적 휴머니즘의 성립에 도움이 되었고 교육사업 및 서적사업도 활발히 일어났고 미술에도 영향을 미쳐 유화와 템페라화 기법을 배우고 미숙하나마 원근법과 음영법 등을 습득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미술의 발전은 남만병풍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그리고 의학 및 사회전반에 많은 영향을 미추었으나 에도시대에 이르러 기독교적인 요소가 제거된 체 도쿠가와 봉건지배체제 속으로 편입되고 말았다.
Ⅲ. 마치며
일본은 막부말기 막부의 권력이 약해지면서 사회혼란이 왔으며 자신의 세력을 기반으로 하는 막부를 무시하는 다이묘들이 나오게 된다. 이들은 천하의 쟁취를 위해 서로 피나는 경쟁을 했으며 그 과정에서 농업생산력의 발달, 사회적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고 마침내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서 전 일본이 통일되면서 전국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그동안의 축적한 힘을 토대로 대외팽창을 시도, 임진왜란이 일어나게 되고 이는 실패로 끝나게 되었지만 일본의 문화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뒤에 오는 에도시대를 열게 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는 마치 20세기 초반에 있었던 일제침략기의 상황과 유사하다. 이를 교훈삼아 현실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지혜를 얻었으면 한다.
<<참고문헌>>
가와사키 쓰네유키, 나라모토 다쓰야 공저, 김현숙, 박경희 역. <<일본문화사>>. 서울: 혜안, 1994.
강창일·하종문 공저. <<한권으로 보는 일본사 101장면>>. 서울: 가람기획, 1998.
김희영. <<이야기 일본사>>. 서울: 청아출판사, 1987.
박찬수. <<한국에서 쓴 일본역사 이야기>>. 서울: 솔출판사, 2003.
아미노 요시히코, 이계황 역. <<일본 사회의 역사(下)>>. 서울: 소화출판사, 2001.
이러한 세력확대를 좀더 본격화하기 위해 일본을 준관구지역으로 승격시키고 일본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였고 일본지역을 3교구로 나누었으며 교육기관을 설립하여 일본인 사제와 정직자의 양성에 착수하였다. 그리고 1582년 기독교 마이묘인 오오토모 소오린과 아리마 하리노부, 오오무라 스미타다의 대리인을 로마교황에게 파견한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워 4명의 소년사절을 인솔하여 덴쇼오유럽파견사절이라는 이름으로 로마를 방문하였다.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와 마찬가지로 기독교에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통일정책의 일환으로 보호하고 이용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히데요시의 주변에는 기독교 무장이 있었던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히데요시는 1587년 6월 돌연 하카다에서 선교사 추방령을 발하고 예수회 신부들에게 일본 퇴거를 명령하였다. 그리고 나가사키를 몰수하고 직할령으로 삼았다. 그러면서 무역은 계속해서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리고 일반하층민에게도 신앙의 자유는 보장되었다. 그것은 기독교의 정치세력화를 방지하고 무역에 대한 독점권을 확립하려는 수단이었으나 무역에서 예수회가 조정자역할을 한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금령을 완화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금령은 이에야스 시대에도 계속 지속되었고 점차 그 탄압은 심화되었다.
이러한 기독교문화는 유럽문화의 도입을 통한 일본적 휴머니즘의 성립에 도움이 되었고 교육사업 및 서적사업도 활발히 일어났고 미술에도 영향을 미쳐 유화와 템페라화 기법을 배우고 미숙하나마 원근법과 음영법 등을 습득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미술의 발전은 남만병풍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그리고 의학 및 사회전반에 많은 영향을 미추었으나 에도시대에 이르러 기독교적인 요소가 제거된 체 도쿠가와 봉건지배체제 속으로 편입되고 말았다.
Ⅲ. 마치며
일본은 막부말기 막부의 권력이 약해지면서 사회혼란이 왔으며 자신의 세력을 기반으로 하는 막부를 무시하는 다이묘들이 나오게 된다. 이들은 천하의 쟁취를 위해 서로 피나는 경쟁을 했으며 그 과정에서 농업생산력의 발달, 사회적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고 마침내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서 전 일본이 통일되면서 전국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그동안의 축적한 힘을 토대로 대외팽창을 시도, 임진왜란이 일어나게 되고 이는 실패로 끝나게 되었지만 일본의 문화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뒤에 오는 에도시대를 열게 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는 마치 20세기 초반에 있었던 일제침략기의 상황과 유사하다. 이를 교훈삼아 현실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지혜를 얻었으면 한다.
<<참고문헌>>
가와사키 쓰네유키, 나라모토 다쓰야 공저, 김현숙, 박경희 역. <<일본문화사>>. 서울: 혜안, 1994.
강창일·하종문 공저. <<한권으로 보는 일본사 101장면>>. 서울: 가람기획, 1998.
김희영. <<이야기 일본사>>. 서울: 청아출판사, 1987.
박찬수. <<한국에서 쓴 일본역사 이야기>>. 서울: 솔출판사, 2003.
아미노 요시히코, 이계황 역. <<일본 사회의 역사(下)>>. 서울: 소화출판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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