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다한다.
선암사의 800년된 비밀스러운 차밭에서 나는 차맛이 갑자기 궁금해졌다.
스님께서 정겨운 조롱박 바가지에 물을 퍼주셨다. 그 물맛을 앞으로도 잊을 수 없을 듯 싶다.
스님께 감사를 드리며 달마전에서 나와서 응진강영역을 살펴보았다.
응진당 영역이 주변의 담장으로 독립된 공간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방금 보았던 달마전이 응진당의 좌에 위치하며 우에는 선암사의 큰스님들의 진영을 모신 진영당이 위치하였다.
응진당은 석가모니의 설법장인 영산회상에서 유래한 전각으로 선암사 경내의 승원중에서 가장 뒤쪽에 위치하고 있고 이 영역의 주불전라 했다.
그 옆으로는 오른쪽에 나란히 위치한 요사형식의 승방 미타전이 보였다. 건물자체로는 조선시대 사찰에서 2대불전으로 여겨지는 중요한 전각이지만 그 쓰임이 선방이나 요사이므로 특별한 의미를 둘 수 없는 곳이라한다.
다시 대웅전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야외법당으로 사용되는 만세루는 선암사의 강당으로 통칸의 넓은 공간을 단일 부재인 커다란 대들보로 처리한 간결하고 강직한 느낌의 건물이었다.
2층 누각건물로 아래를 통과해 계단을 올라서면 탑이 서 있는 정원과 대웅전이 나타나고 좌우에 선방인 적묵당과 부엌인 심검당이 배치되어있었다. 이는 산지중정형의 가람배치라한다.
절에 따라 조금씩 이름이 다르지만 선암사의 가람배치구조는 대웅전, 적묵당, 만세루, 심검당으로 구성돼 있는 기본적인 형태가 산사의 기본구조를 따랐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 목적에 따른 분류로는 나한과 지장·관음보살 을 모시는 응진전과 명부전, 관음전, 산신각 등의 조성을 둘수있다고 한다.
대웅전을 중심축으로 오른쪽에는 심검당이 위치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외관상으로는 1층으로 보이나 내부가 2층으로 되어진 건물로 1층에서는 승방으로 위층에서는 사찰에서 쓰이는 음식과 물건들을 보관하는 요사채나 종무소 역할을 하는 건물이라한다.
대웅전 뒤쪽 중심축선상에 팔상전과 불조전이 나란히 배치되어있다. 불조전에서는 조선후기의 건물로 사찰의 개창자와 중창자 그리고 중수자 및 역대 주지들이 모셔져있으며, 팔상전은 석가모니의 전생부터 열반에 이르는 일대기가 그려진 팔상도를 모시고 석가를 기리는 불전이라 했다.
선암사에는 장엄하고 화려한 대웅전, 팔상전, 원통전, 금동향료, 일주문 등 지방 문화재 12점이 남아있고 선암사 본찰 왼편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높이 17M, 넓이2M에 이르는 거대한 바위에 조각된 마애불을 볼 수 있다. 또 선종이 송으로 유학을 가서 받아온 대각국사 법복도 그대로 남아 있다고 했다.
다음으로 선암사의 발전과 깊이 관련된 원통전은 구원융통으로 자비를 구한다는 뜻으로 사찰건물에서는 보기힘든 T자형 구조로 낡은 기왓장으로 힘겹게 이루어진듯 보이나 독특한 형태의 팔작지붕이 고색을 읽지 않아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내부에는 '대복전'이 써진 현판이 걸려져있었다.
원통전은 임진왜란 후 모두 불타버린 선암사를 중창하기 위해 대장군봉 배바위에서 백일기도를 드린 호암선사의 전설이 기초된 곳으 관세음보살을 모셨다한다. 순조의 현판이 살펴본 전설을 더욱 사실화시켜주고 있었다. 특이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건물인듯싶었다.
마지막으로 산신각은 토속적 민속 신앙의 대상이 되는 건물로 주벽에 호랑이와 동자를 대동한 신령탱이 사찰의 맨 위에 위치하며, 신앙의 위계상으로는 하단에 속하지만 의미론적으로 보았을 때는 승화공간이라한다. 전형적인 사찰에서는 보기 힘든 기복신앙을 대상으로하고 있다했다.
선암사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따스함과 신비가 담겨져있었다.
선암사는 크지 않은 공간에 잘 형성된 가름의 배치와 함께 푸르름을 잃지 않고 서있는 후박나무와 차나무 등의 상록수림, 대웅전 앞의 4백년이된 수령과 연산홍, 산철쭉을 비롯한 자목련, 동백나무, 수국, 부용 등이 시선 곳곳을 즐겁게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살펴본 곳은 울창한 수목이 절정인 차밭쪽으로 가는 길이었다.
800여년 동안 관리해온 차밭은 차의 대가 지허스님이 계신 선암사이기에 더욱 깊이가 있다한다.
선암사는 가을이나 겨울의 고즈넉한 산사 분위기도 좋지만 봄에는 매화를 비롯한 봄꽃이 경내에 만발하는 화사한 절이기도 해 4계절을 다 와도 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다한다.
이러한 건물과 고색자연의 색체의 아름다움이 주는 신비스러운 조화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발걸음을 떼는 것이 어려워졌지만 또 다시 편안한 마음으로 찾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선암사의 아름다움을 뒤로했다.
내려오는 길에 보니 건강에 좋다고 맨발로 흙길을 내려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내려오는 사람들마다 마치 푸근하고 정겨운 시골외가집에 다녀오는 듯히 얼굴얼굴에 여유로운 미소가 보여진다.
구석구석 본다고 발걸음에 힘을 실었더니 피곤했나보다. 내려오는 길에 계곡에 발을 담구고 오늘의 답사를 다시한 번 되새겨보았다.
선암사에 취해있던 시간들이 마치 잠시 전혀 다른 세상속에 머무른 듯한 느낌이었다.
절집의 갖춰진 넉넉하고 조화스러운 미를 느끼게 해준 선암사와의 답사 인연이 더없이 소중히느껴졌다.
이것이 마치 일생의 단 한번뿐인 꿈속에 나타난 선경이라해도 고맙다는 생각을 하며 2005년 5월 27일 여름 오후의 선암사 답사를 마쳤다.
선암사는 실로 한국을 대표 최고의 사찰중 하나임이 확실했다. 선암사는 다른 절집에서 보아오던 규칙적이고 화려함 넘치는 느낌과는 확실하게 달랐다. 크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주위 산세와 조화를 이루어 단아한 멋의 흐름이 멈추지 않았으며 구석구석에 아기자기함은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어 마치 어미의 품을 느끼게 해주는 포근함을 지녔다. 절집이 줄 수 있는 극치의 아름다움을 연출한 것이다.
새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속 살고있지만 고색이 주는 시간의 얼룩과 낡음을 빈틈없는 덧칠과 새로운 손길보다 아름답다고 여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실 새로운 보수공사로 인해 낡고 오래된 멋을 잃어버린 곳이 눈에 보이기도 했지만, 늘 여전한 선암사의 전체적인 풍경을 생각하며 계속되는 들뜬 기분에 더해진 안타까움을 달래보았다.
몇년이 지나 다시 찾았을 때 사라져버리고 낮설어져버린 목록에 하나도 더해지는 것이 없기를 바래본다.
선암사의 800년된 비밀스러운 차밭에서 나는 차맛이 갑자기 궁금해졌다.
스님께서 정겨운 조롱박 바가지에 물을 퍼주셨다. 그 물맛을 앞으로도 잊을 수 없을 듯 싶다.
스님께 감사를 드리며 달마전에서 나와서 응진강영역을 살펴보았다.
응진당 영역이 주변의 담장으로 독립된 공간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방금 보았던 달마전이 응진당의 좌에 위치하며 우에는 선암사의 큰스님들의 진영을 모신 진영당이 위치하였다.
응진당은 석가모니의 설법장인 영산회상에서 유래한 전각으로 선암사 경내의 승원중에서 가장 뒤쪽에 위치하고 있고 이 영역의 주불전라 했다.
그 옆으로는 오른쪽에 나란히 위치한 요사형식의 승방 미타전이 보였다. 건물자체로는 조선시대 사찰에서 2대불전으로 여겨지는 중요한 전각이지만 그 쓰임이 선방이나 요사이므로 특별한 의미를 둘 수 없는 곳이라한다.
다시 대웅전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야외법당으로 사용되는 만세루는 선암사의 강당으로 통칸의 넓은 공간을 단일 부재인 커다란 대들보로 처리한 간결하고 강직한 느낌의 건물이었다.
2층 누각건물로 아래를 통과해 계단을 올라서면 탑이 서 있는 정원과 대웅전이 나타나고 좌우에 선방인 적묵당과 부엌인 심검당이 배치되어있었다. 이는 산지중정형의 가람배치라한다.
절에 따라 조금씩 이름이 다르지만 선암사의 가람배치구조는 대웅전, 적묵당, 만세루, 심검당으로 구성돼 있는 기본적인 형태가 산사의 기본구조를 따랐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 목적에 따른 분류로는 나한과 지장·관음보살 을 모시는 응진전과 명부전, 관음전, 산신각 등의 조성을 둘수있다고 한다.
대웅전을 중심축으로 오른쪽에는 심검당이 위치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외관상으로는 1층으로 보이나 내부가 2층으로 되어진 건물로 1층에서는 승방으로 위층에서는 사찰에서 쓰이는 음식과 물건들을 보관하는 요사채나 종무소 역할을 하는 건물이라한다.
대웅전 뒤쪽 중심축선상에 팔상전과 불조전이 나란히 배치되어있다. 불조전에서는 조선후기의 건물로 사찰의 개창자와 중창자 그리고 중수자 및 역대 주지들이 모셔져있으며, 팔상전은 석가모니의 전생부터 열반에 이르는 일대기가 그려진 팔상도를 모시고 석가를 기리는 불전이라 했다.
선암사에는 장엄하고 화려한 대웅전, 팔상전, 원통전, 금동향료, 일주문 등 지방 문화재 12점이 남아있고 선암사 본찰 왼편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높이 17M, 넓이2M에 이르는 거대한 바위에 조각된 마애불을 볼 수 있다. 또 선종이 송으로 유학을 가서 받아온 대각국사 법복도 그대로 남아 있다고 했다.
다음으로 선암사의 발전과 깊이 관련된 원통전은 구원융통으로 자비를 구한다는 뜻으로 사찰건물에서는 보기힘든 T자형 구조로 낡은 기왓장으로 힘겹게 이루어진듯 보이나 독특한 형태의 팔작지붕이 고색을 읽지 않아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내부에는 '대복전'이 써진 현판이 걸려져있었다.
원통전은 임진왜란 후 모두 불타버린 선암사를 중창하기 위해 대장군봉 배바위에서 백일기도를 드린 호암선사의 전설이 기초된 곳으 관세음보살을 모셨다한다. 순조의 현판이 살펴본 전설을 더욱 사실화시켜주고 있었다. 특이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건물인듯싶었다.
마지막으로 산신각은 토속적 민속 신앙의 대상이 되는 건물로 주벽에 호랑이와 동자를 대동한 신령탱이 사찰의 맨 위에 위치하며, 신앙의 위계상으로는 하단에 속하지만 의미론적으로 보았을 때는 승화공간이라한다. 전형적인 사찰에서는 보기 힘든 기복신앙을 대상으로하고 있다했다.
선암사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따스함과 신비가 담겨져있었다.
선암사는 크지 않은 공간에 잘 형성된 가름의 배치와 함께 푸르름을 잃지 않고 서있는 후박나무와 차나무 등의 상록수림, 대웅전 앞의 4백년이된 수령과 연산홍, 산철쭉을 비롯한 자목련, 동백나무, 수국, 부용 등이 시선 곳곳을 즐겁게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살펴본 곳은 울창한 수목이 절정인 차밭쪽으로 가는 길이었다.
800여년 동안 관리해온 차밭은 차의 대가 지허스님이 계신 선암사이기에 더욱 깊이가 있다한다.
선암사는 가을이나 겨울의 고즈넉한 산사 분위기도 좋지만 봄에는 매화를 비롯한 봄꽃이 경내에 만발하는 화사한 절이기도 해 4계절을 다 와도 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다한다.
이러한 건물과 고색자연의 색체의 아름다움이 주는 신비스러운 조화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발걸음을 떼는 것이 어려워졌지만 또 다시 편안한 마음으로 찾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선암사의 아름다움을 뒤로했다.
내려오는 길에 보니 건강에 좋다고 맨발로 흙길을 내려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내려오는 사람들마다 마치 푸근하고 정겨운 시골외가집에 다녀오는 듯히 얼굴얼굴에 여유로운 미소가 보여진다.
구석구석 본다고 발걸음에 힘을 실었더니 피곤했나보다. 내려오는 길에 계곡에 발을 담구고 오늘의 답사를 다시한 번 되새겨보았다.
선암사에 취해있던 시간들이 마치 잠시 전혀 다른 세상속에 머무른 듯한 느낌이었다.
절집의 갖춰진 넉넉하고 조화스러운 미를 느끼게 해준 선암사와의 답사 인연이 더없이 소중히느껴졌다.
이것이 마치 일생의 단 한번뿐인 꿈속에 나타난 선경이라해도 고맙다는 생각을 하며 2005년 5월 27일 여름 오후의 선암사 답사를 마쳤다.
선암사는 실로 한국을 대표 최고의 사찰중 하나임이 확실했다. 선암사는 다른 절집에서 보아오던 규칙적이고 화려함 넘치는 느낌과는 확실하게 달랐다. 크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주위 산세와 조화를 이루어 단아한 멋의 흐름이 멈추지 않았으며 구석구석에 아기자기함은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어 마치 어미의 품을 느끼게 해주는 포근함을 지녔다. 절집이 줄 수 있는 극치의 아름다움을 연출한 것이다.
새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속 살고있지만 고색이 주는 시간의 얼룩과 낡음을 빈틈없는 덧칠과 새로운 손길보다 아름답다고 여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실 새로운 보수공사로 인해 낡고 오래된 멋을 잃어버린 곳이 눈에 보이기도 했지만, 늘 여전한 선암사의 전체적인 풍경을 생각하며 계속되는 들뜬 기분에 더해진 안타까움을 달래보았다.
몇년이 지나 다시 찾았을 때 사라져버리고 낮설어져버린 목록에 하나도 더해지는 것이 없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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