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케로의 최고선악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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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Prologue.

I. 키케로의 『최고선악론』제 1권

II. 에피쿠로스 철학의 출발점

III. 에피쿠로스는 왜?

Epilogue. 에피쿠로스, 삶의 예술가

본문내용

형성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⑸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영혼과 정신’ 그리고 ‘미신’이란 무엇인가? <자연학>
⒜『최고선악론』에서 토르콰투스는 ‘영혼과 정신’의 평화를 역설했다. 혼동을 피하기 위해선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정신과 영혼’의 본질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물론 앞서도 언급했듯 에피쿠로스에 의하면 세계에는 원자와 공간만이 존재하며, 따라서 정신과 영혼도 어디까지나 물질임에 틀림없다. 영혼은 육체와 분리되는 이원론적 존재가 아니며, 육체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윤회나 영혼의 불멸은 불가능하며, 죽음은 지각의 절멸, 즉 모든 것의 완벽한 끝이다. 에피쿠로스에게 죽음은 전혀 두려워할 일이 아니며 그로인한 고통은 불필요하다.
⒝ 에피쿠로스는 ‘미신’의 타파를 외치는 점에서 일종의 계몽주의자이다. 그렇다면 이때의 ‘미신’은 신의 부재를 의미하는가? 그는 신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는다. 에피쿠로스는 단지 초자연적 존재가 현상을 통제하거나 인간사에 영향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을 한다. 그가 ‘미신’으로 배격하고자 하는 것은 신의 존재가 아니라 ‘원인적 존재로서의 신’이다. 신들은 단지 중간계(intermundia)에서 먹고 마시며, 그리스어를 말하며 그들의 유쾌한 삶을 살아갈 뿐이다. 따라서 그는 신학적인 사상을 부정하며, 사후의 세계 존재를 부정함으로써, 신의 심판과 영원한 처벌에 대한 인간이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근심의 원인을 제거하였으며, 그런 신에 대한 믿음은 오히려 마음의 동요만 일으킨다고 주장한다. 신이 우주를 다스린다는 생각을 공격할 때, 에피쿠로스가 특히 플라톤의 데미우르고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제일운동인과 하늘의 지성)을 겨냥했다고 여길 수 있다.
⑹ 에피쿠로스의 쾌락의 기준이란 무엇이며, 모든 쾌락의 동급화는 정합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 (‘토르콰투스’의 예)
에피쿠로스의 쾌락의 요건을 정리하자면, 첫째 영속성(↔순간의 쾌락)이며, 둘째 고통의 부재(↔적극적 만족)이다. 에피쿠로스의 논리에 다르면 서로 다른 도덕적 가치들에 기초한 쾌락들 사이의 차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앞서 ‘토르콰투스의 예’에서도 나타났듯- 쾌락의 영속성과 그에 따른 고통의 유무가 쾌락들 사이의 선택과 거부를 결정하게 된다. 이러한 기준에 의한 선별의 논리는 결국 “최저의 쾌락”은 “보다 세련된 쾌락”과 동급이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에피쿠로스가 쾌락의 귀결로 윤리적 실천의 삶을 표방하는 이상 우리는 당장 ‘토르콰투스의 예’에서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과연 ‘안전’ 보다 ‘칭찬과 명성’이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더 큰 쾌락으로 나타날 것인가? 또 자식을 잃은 슬픔(자손의 중요성에 대해선 아리스토텔레스가 언급한 행복의 외적 구성요소에 자식이 포함된다는 것만 떠올려봐도 충분할 것이다)과 자신의 소유가 온전히 유지되는 것 사이에서 쾌락의 선택은 명백한 것인가?
아무리 에피쿠로스가 이론적으로 쾌락의 동급화를 주장한다해도 그것이 실천의 문제에 봉착했을 때 -그리고 에피쿠로스가 강한 윤리적 경향 표방하는 한- 은연중에라도 어떠한 ‘가치’에 기반한 쾌락의 등급화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⑺ 에피쿠로스의 최대의 선인 ‘도덕적 통찰력(pronesis), 사려 깊음, 신중함’이란 무엇인가?
사실 에피쿠로스의 윤리학은 그의 도덕적 의무에 대해 이론적으로 거의 설명을 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제1의 쾌락에 대한 계산 혹은 측량은 에피쿠로스 윤리학에서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쾌락과 고통에 대한 올바른 측량을 가능케 하는 통찰력, 이 ‘신중함’이 최대의 선善인 것이다. 이는 철학보다도 가치있는 어떤 것인데 모든 덕이 이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즉 어떤 사람이 사려깊을 때 덕스럽게 되며, 덕스러운 사람이란 주어진 순간에 어떤 쾌락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 쾌락을 추구할 때 어떻게 행동할지를 아는 사람인 것이다. 따라서 신중함은 행복의 지속에 절대적 필요조건임이 명백하다.
⑻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는 사회와 법질서에 반하는 것인가?
⒜ 에피쿠로스는 그리스 가회의 기본 가치에 도전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공동체 삶을 지향하는 자연적 경향이 전혀 없다. 쾌락을 얻고 고통을 피하고자 하는 욕구와, 추론하고 계획하는 능력, 그리고 외부 환경이 결정하는 진화의 과정을 통해 문명이 발전했다. 상호 이익이라는 판단 하에 사회적 조직을 이루어졌다. 에피쿠로스의 따르면 루소식의 “계약적” 요소가 도덕적 책임이나 사회적 책임의 토대가 아니며, 다른 사람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은 이로움에 따른 원리를 준수하는 것뿐이다. 그의 계약의 토대는 자기 보호적인 이기심인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의 고요함을 보존하기 위해 정의롭게 행동한다.
현자는 영혼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정치에 휘말리지 않지만 두가지 경우 예외가 존재한다. 자신의 개인적 안정을 위해 참여의 필요가 있는 경우와 정치경력에 대한 강한 충동으로 영혼이 평온함을 잃을 경우이다.
⒝ 쾌락과 개인적 이익의 원리는 법이론에서도 결정적이다. 법이 지배하고 “권리”가 존중되는 사회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보다 영혼의 평정에 이롭기 때문에 법질서가 추구된다.
Epilogue. 에피쿠로스, 삶의 예술가
에피쿠로스주의는 분명 철학이라기 보단 하나의 (종교적) 세계관이란 말이 더 어울릴지 모른다. 물론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따르면 에피쿠로스의 철학도 나름대로 논리적 체계 속에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역시 에피쿠로스의 이론은 그들의 실천적 덕목을 모두 뒷받침 해주지 못한다. 에피쿠로스도 자신의 철학이 이론적으로 완벽하기를 바라고 살아가진 않았던 것 같다. 이들에게 있어 현인이란 사변적 지혜의 담지자가 아니라 구체적 삶의 예술가(기술자)였기 때문이다. 입으로는 쾌락을 외쳤고 자기보존의 욕구로부터 모든 가치를 파생시키려 했지만, 본능은 이들로 하여금 누구보다도 바른 길을 걷게 했다.
인간이란 무엇이고, 또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항상 던져보는 질문이지만 이 질문의 진짜 무게를 가늠하기란 좀처럼 쉽지가 않다.
“벗이여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황금빛 생명의 나무는 푸르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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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6.13
  • 저작시기2005.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54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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