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향 중랑구 소개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내고향 중랑구 소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서론

Ⅱ.본론
1.중랑구의 역사
2.중랑구 연혁
3.중랑구의 동(洞) 소개
1)면목동
2)묵동
3)상봉동
4)망우동
5)신내동
6)중화동
4.중랑구의 문화재 및 자랑거리
1)중랑구 문화재 현황
2)중랑구 자랑거리

Ⅲ.결론

본문내용

설화》
옛날 서울에서 전국 장사모임이 있었는데 뒤늦게 이 소식을 들은 경상도 장사가 허겁지겁 짐을 꾸려 서울로 오던 도중 집으로 돌아가는 강원도 장사를 만났다. 강원도 장사는 “서울의 도성(都城)문을 닫을 시간이 다 되었고, 오느라고 기운이 다 빠졌으니 그냥 집으로 돌아가라.”며 권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경상도 장사는 그 말을 듣지 않고 길을 재촉하여 상봉동까지 왔을 때 너무 갈증이 나서 중랑천의 물을 마셨다. 물을 마시고 일어나는데 포졸을 앞세운 마을 사람들이 “저 사람이 냇물을 모두 마셔 농사를 지을 수 없음은 물론 식수마저도 없어져 버렸으니 이는 요물임이 틀림없다.”며 에워싸는 것이었다. 장사는 “나는 요물이 아니고 사람이며 강원도에서 온 장사가 먼저 물을 마시고 남은 물을 조금 마셨는데 그것도 죄가 되느냐.”며 오히려 억울함을 호소하였지만 관아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고 죽음을 직전에 둔 그는 “내 한이 물을 말려 사람이 살 수 없는 검은 땅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며 저 중랑천은 해마다 홍수로 넘쳐흘러 농사를 망치게 될 것이다.”하고 숨을 거두었다. 그 때부터 해마다 중랑천은 범람하게 되었다고 한다.
③용마 폭포 공원
용마산 정상(해발 348m) 바로 아래 위치한 넓은 5만여 평의 옛 채석장 부지에 1991년부터 공원 조성에 착수하여 1993년 5월 용마 돌산공원으로 개장하였다가, 1996년부터 시작된 동양최대의 인공폭포 조성공사의 완공과 함께 1997년 5월 10일 용마폭포공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공원 내에는 3개의 인공폭포와 축구장, 테니스장, 게이트볼장, 배드민턴장과 대형 잔디광장이 있어 주민들의 편안한 휴식공간으로 사랑받는 곳이다. 중심부의 용마폭포는 동양최대의 인공폭포로 2단 51 m이고, 좌측에는 21.4m의 청룡폭포, 우측에는 21m의 백마폭포가 있으며, 앞으로 대형 연못, 스케이트장, 전망대, 수석 정원, 하늘 공원이 들어설 예정이다.
④망우리 공원
망우동과 면목동, 경기도 구리시에 걸쳐있는 망우산은 해발 281.7m이며, 망우산 일대에는 서울 시립장묘사업소 망우묘지가 있다. 이곳이 공동묘지로 지정된 것은 1933년 5월 27일 경기도의 임야 일부를 경성부에서 양도 받아 공동묘지로 사용하게 되면서부터이다. 현재 서울 안에 있는 유일한 공동묘지로 총면적 190,884평에 약 28,500 기의 분묘가 있으며, 1973년 3월 25일 봉분이 가득 차서 더 이상 묘지 구하기가 어렵다.
망우리공원에서는 우리나라 어린이 운동의 효시인 방정환, 독립운동가이며 민족대표 33인중 한 분인 오세창, 한용운, 우두보급의 선구자로 의학자이며 국어학자인 지석영, 임시정부 내무부서기를 역임한 독립운동가 문명훤, 동아일보 주필과 한국민주당 창당을 주도했던 장덕수, 제헌국회의원이며 진보당 당수였던 조봉암 등의 묘소가 있으며, 이들 일곱 분의 애국지사 및 유명인사 연보비가 공원 내 산책로 조성과 함께 지난 1997년 2월에 설치되었다. 이어서 1998년 2월에 시인 박인환, 독립운동 가 문일평, 서병호, 서동일, 오재영, 서광조, 유상규, 교육가 오긍선 등 여덟 분의 연보비가 추가로 설치되어 역사의 교육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또한 망우리공원 내의 내부순환도로 5.2㎞를 포장하여 산책로를 만들었으며, 산책로의 이름을 공모하여 ’98년 5월 사색의 길로 정하고, 도시환경과 자연관찰로, 종합안내판, 나무정자, 약수터 등이 설치되어 구민의 휴식 및 자연공원으로 많은 시민들이 찾고 있다.
⑤봉화산 봉수대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5호인 아차산 봉수대는 해발 160.1m의 봉화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는데 비록 해발고도는 낮으나 주위에 높은 산들이 가로막지 않아서 사방이 탁 트인 지세로 남산의 목멱산 (木覓山)봉수와 양주의 한이산(汗伊山) 봉수를 일망무제(一望無際)로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아차산 봉수는 함경도와 강원도 방면에서 남산 제1봉수로 연결되는 제1봉수로의 끝으로써 경기도 양주 한이산에서 봉수를 받아 목멱산 제1봉수로 전달해 주는 봉수대였다. 봉수는 평시에는 횃불 한번, 적이 나타나면 횃불 두 번, 국경에 가까이 오면 횃불 세 번, 국경을 침범하면 횃불 네 번, 접전하면 횃불 다섯 번을 올리게 하였는데, 낮에는 연기를 올리고 밤에는 불을 올렸다고 한다. 1993년 서울시립대부설박물관의 고증을 통해 봉수대 연조 5개, 상단석축 24.5m 규모로 복원계획을 수립하여 1994년 연조 1개, 상단석축 11.62m의 규모로 복원을 완료하였으며 연차사업으로 연조 5개의 아차산 봉수대를 모두 복원할 계획이다.
Ⅲ.결론
중랑구에서 약 10년 정도 살아왔지만 솔직히 집 근처도 잘 나가보지도 않았을 뿐 더러 중랑구내의 다른 동네는 거의 가 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교수님이 내주신 과제를 계기로 내가 살아왔던 중랑구에 대해서 많은 자료를 찾고 직접 가보기도 하면서 너무 우리 동네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중랑구에도 많은 유적지와 명소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조금 놀라기도 하였다. 재정적인 측면이나 시설적인 측면에서 중랑구가 다른 서울의 행정구들에 비해 비록 많이 뒤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서민들을 위한 주거공간으로 중랑구는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살기 좋다고 생각한다. 중랑구가 서울 외곽에 위치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공기도 좋은 것 같고 집값도 싸며, 아직 미개발 된 곳들이 남아있어 생태적인 측면에서도 서울의 다른 지역들에 비해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알게 되었지만 우리 중랑구를 나타내는 꽃은 배꽃이고, 나무는 느티나무이며 새는 까치라고 한다. 아무 관심도 없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었지만 보고서를 쓰기 위해 조사하다가 중랑구청 홈페이지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다. 조금만 내가 사는 지역에 관심이 있었다면 알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느꼈으며 이제 확실히 알았으니까 내가 중랑구에 사는 동안은 절대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은은한 바람을 느끼며 지금도 집에서 레포트를 쓰고 있지만 번화한 지역을 살짝 벗어나 있는 조용한 우리 동네와 바로 앞에 보이는 탁 트인 용마폭포공원, 사람 사는 향취가 물씬 풍기는 나의 고향 중랑구를 사랑한다.

키워드

  • 가격1,0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06.06.26
  • 저작시기2006.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56736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