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시(始)
Ⅱ. 전(展)
1. 큰 뜻을 품고 무인의 길로 나서다.
2. 승첩과 백의종군의 아이러니
3. 폭풍전야의 고요 속에서
1) 사선(死線)으로
2) 귀선의 포효
3) 피를 부르는 칼의 징후
4. 칼의 노래
1) 바람 앞에 등불
2) 칼의 울부짖음
3) 한산 섬 달 밝은 밤에
5.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 있나이다.
1)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 했던가.
2) 공든 탑이 무너지랴?
3)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 있나이다.
6. 사지(死地)로
Ⅲ. 종(終)
Ⅱ. 전(展)
1. 큰 뜻을 품고 무인의 길로 나서다.
2. 승첩과 백의종군의 아이러니
3. 폭풍전야의 고요 속에서
1) 사선(死線)으로
2) 귀선의 포효
3) 피를 부르는 칼의 징후
4. 칼의 노래
1) 바람 앞에 등불
2) 칼의 울부짖음
3) 한산 섬 달 밝은 밤에
5.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 있나이다.
1)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 했던가.
2) 공든 탑이 무너지랴?
3)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 있나이다.
6. 사지(死地)로
Ⅲ. 종(終)
본문내용
싸워 전공을 세움으로 사함을 받음.
-공의 나이 44세에 정읍현감이 됨. 고을 수령이 되는데 14년이 걸림.
3. 폭풍전야의 고요 속에서
1) 사선(死線)으로
-공은 혼란스러운 인사파행 끝에 서애 유성룡의 추천으로 정 3품 전라좌수사로 임명됨.
-공이 임명되기 전 원균이 전라좌수사였으나 그 행적이 바르지 못하다하여 파직되었음.
-좌수영을 철저히 관리하여 우수한 병영으로 육성함.
2) 귀선의 포효
-공은 좌수영에 있으면서 외침에 대비하여 귀선을 건조하게 됨.
-귀선의 크기는 판옥선과 같으며 앞머리에는 용의 머리처럼 하여 입으로 대포를 쏠 수 있게 하였 음. 뒤에는 거북꼬리처럼 만들고 꼬리 밑에도 총구멍이 나있음. 좌우에도 각각 6개의 총구멍이 있음. 등은 판자를 덮고 판자 위에 총총히 쇠못을 박아 적이 오르지 못하게 함.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있으나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음.
3) 피를 부르는 칼의 징후
-임란 발발 전까지 조선의 정국은 붕당정치 등으로 매우 혼란한 상태였음.
-율곡이이가 외침에 대비하여 10만 양병설을 주장하였으나 묵인 됨.
-일본의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하고 강력한 전투력을 밖으로 표출시키려함.
-조선에서 일본의 요청으로 통신사를 파견하여 동태를 살피려 했으나, 통신사 황윤길과 부사 김 성일이 서로 판이한 답을 보여 정국이 더욱 혼란스러움.
-조정 중론이 부사 김성일의 의견으로 흐르면서 국방의 방비를 소홀히 하게 됨.
-여러 가지 자연 현상이 발생하면서 민심이 흉흉해짐.
4. 칼의 노래
1) 바람 앞에 등불
-임진년(1592년), 공의 나이 48세. 4월 13일 임란 발발. 대략 30만 병력으로 침략.
-4월 14일 부산성에서 흑포장군 정발 전사. 부산성 함락.
-4월 15일 동래성 함락. 부사 송상헌 전사. 조선 육군은 연전연패함.
-순변사 이일 상주에서 패주. 도제찰사 신립 충주 탄금대에서 전사.
-4월 28일 선조 임금 도성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
2) 칼의 울부짖음
-경상우수사 원균은 전선 백여 척을 불태우고 대포 및 군기 등을 모조리 바다 속에 버리고 휘하 제장들과 함께 전선 4척으로 곤양 어귀로 도주함.
-5월 4일 공의 함대가 첫 출정. 7일 옥포에서 적선 26척을 전멸시킴. 8일 적진포에서 적선 11척 을 불태움. 23전 23승 불패신화이 서막이 오름.
3) 한산 섬 달 밝은 밤에
-임란이 발발하고 공의 옥포에서 첫 승첩이후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 활약함.
-5월 29일부터 6월 1일까지 좌수영 함대를 주축으로 조선수군 연합함대를 이끌고 사천에서 왜선 13척을 격침시키고 왜군 2600여명을 사살함.
-왜적이 전라도를 점령하기 위해 서해로 북상하려하자 공이 위기를 느끼고 출전함.
-7월 8일 이른 아침, 공은 조선 수군 연합함대 56척으로 견내량으로 나아감. 왜군을 한산도 앞바 다로 유인하여 학익진으로 궤멸시킴. 이것이 곧 한산도 대첩임.
-학익진은 수세와 공세, 유인과 섬멸, 도주와 역공, 포위와 역포위에서 신속한 전환의 위력을 떨 침. 강도 높은 훈련과 지휘관의 대담성이 작전을 승리로 이끌게 됨.
-9월 부산포에서 적선 100여척을 불태움. 녹도만호 정운 전사. 공이 많이 애통해 함.
-공의 나이 49세, 7월 14일, 한산도로 진을 옮김. 이때 권율은 행주대첩에서 큰 승리를 거둠.
-8월 15일 삼도수군통제사가 됨. 7, 8월 한산진에서 전염병이 돌아 군민이 크게 고초를 겪음.
-임진, 계사년 이후 3, 4년에 걸쳐 전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듬. 명과 왜의 강화교섭. 그러나 강화 가 결렬되고 왜의 재침. 15만 병력. 선조 30년. 이것이 곧 정유재란.
5.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 있나이다.
1)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 했던가.
-왜적의 간교한 속임수에 조정이 넘어가 공을 옥에 가두게 됨. 공의 나이 53세.
군민의 대성통곡.
-단순히 왜의 속임수로 옥에 갇혔다기보다는 공을 시기하는 무리들이 앞 다투어 탄핵하여 목숨이 위태하였으나 공을 살리고자 많은 충신들이 나서 백의종군으로 권율 휘하에 들어가게 됨.
-백의종군 도중 모친의 사망. 공이 매우 애통해함.
2) 공든 탑이 무너지랴?
-공의 후임으로 통제사가 된 원균은 칠천량에서 공이 애써 이룬 조선수군 무적함대를 거의 모두 전멸시킴. 통제사 원균, 전라우수사 이억기, 충청수사 최호 전사. 이 싸움의 패전은 원균이 지휘 했지만, 작전을 기획하고 강행한 사람은 도원수 권율. 전술적 책임은 원균에게 있고 전략적 책임 은 권율에게 있으며, 정치적 책임은 병조판서와 임금에게 있음.
-공이 이 소식을 듣고 매우 비통해 함.
3)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 있나이다.
-8월 3일 공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함.
-9월 16일 전선 12척으로 명량에서 133척으로 오는 적을 맞아 31척을 깨뜨림. 나머지 적은 도 주. 세계 해전 상에 길이 남을 전투인 명량해전임.
-정유재란의 국면 전체를 결정적으로 바꾸어 놓음.
-10월 14일, 셋째 아들 이면이 아산에서 왜적이 보낸 병력과 싸우다 전사함. 공은 아들 면을 가 장 사랑하였으므로 매우 애통해 하였음.
-고금도로 진을 옮기고, 한동안 전쟁이 소강상태. 이때 공은 다시 조선수군을 강건하게 육성함.
6. 사지(死地)로
-공의 나이 54세, 이때 히데요시는 죽었고, 왜군은 철수를 결정함.
-11월 19일, 공은 조명 수군 연합함대를 이끌고 노량에서 적을 맞아 싸우다 총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함.
-적선 200여 척이 격침되고 겨우 50여 척만 도주.
-공의 죽음은 전투가 끝난 뒤에 알려짐. 통곡이 바다를 덮었음. 이날 전쟁이 끝남.
Ⅲ. 종(終)
Ⅰ. 시(始)
Ⅱ. 전(展)
1. 큰 뜻을 품고 무인의 길로 나서다.
2. 승첩과 백의종군의 아이러니
3. 폭풍전야의 고요 속에서
1) 사선(死線)으로
2) 귀선의 포효
3) 피를 부르는 칼의 징후
4. 칼의 노래
1) 바람 앞에 등불
2) 칼의 울부짖음
3) 한산 섬 달 밝은 밤에
5.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 있나이다.
1)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 했던가.
2) 공든 탑이 무너지랴?
3)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 있나이다.
6. 사지(死地)로
Ⅲ. 종(終)
-공의 나이 44세에 정읍현감이 됨. 고을 수령이 되는데 14년이 걸림.
3. 폭풍전야의 고요 속에서
1) 사선(死線)으로
-공은 혼란스러운 인사파행 끝에 서애 유성룡의 추천으로 정 3품 전라좌수사로 임명됨.
-공이 임명되기 전 원균이 전라좌수사였으나 그 행적이 바르지 못하다하여 파직되었음.
-좌수영을 철저히 관리하여 우수한 병영으로 육성함.
2) 귀선의 포효
-공은 좌수영에 있으면서 외침에 대비하여 귀선을 건조하게 됨.
-귀선의 크기는 판옥선과 같으며 앞머리에는 용의 머리처럼 하여 입으로 대포를 쏠 수 있게 하였 음. 뒤에는 거북꼬리처럼 만들고 꼬리 밑에도 총구멍이 나있음. 좌우에도 각각 6개의 총구멍이 있음. 등은 판자를 덮고 판자 위에 총총히 쇠못을 박아 적이 오르지 못하게 함.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있으나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음.
3) 피를 부르는 칼의 징후
-임란 발발 전까지 조선의 정국은 붕당정치 등으로 매우 혼란한 상태였음.
-율곡이이가 외침에 대비하여 10만 양병설을 주장하였으나 묵인 됨.
-일본의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하고 강력한 전투력을 밖으로 표출시키려함.
-조선에서 일본의 요청으로 통신사를 파견하여 동태를 살피려 했으나, 통신사 황윤길과 부사 김 성일이 서로 판이한 답을 보여 정국이 더욱 혼란스러움.
-조정 중론이 부사 김성일의 의견으로 흐르면서 국방의 방비를 소홀히 하게 됨.
-여러 가지 자연 현상이 발생하면서 민심이 흉흉해짐.
4. 칼의 노래
1) 바람 앞에 등불
-임진년(1592년), 공의 나이 48세. 4월 13일 임란 발발. 대략 30만 병력으로 침략.
-4월 14일 부산성에서 흑포장군 정발 전사. 부산성 함락.
-4월 15일 동래성 함락. 부사 송상헌 전사. 조선 육군은 연전연패함.
-순변사 이일 상주에서 패주. 도제찰사 신립 충주 탄금대에서 전사.
-4월 28일 선조 임금 도성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
2) 칼의 울부짖음
-경상우수사 원균은 전선 백여 척을 불태우고 대포 및 군기 등을 모조리 바다 속에 버리고 휘하 제장들과 함께 전선 4척으로 곤양 어귀로 도주함.
-5월 4일 공의 함대가 첫 출정. 7일 옥포에서 적선 26척을 전멸시킴. 8일 적진포에서 적선 11척 을 불태움. 23전 23승 불패신화이 서막이 오름.
3) 한산 섬 달 밝은 밤에
-임란이 발발하고 공의 옥포에서 첫 승첩이후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 활약함.
-5월 29일부터 6월 1일까지 좌수영 함대를 주축으로 조선수군 연합함대를 이끌고 사천에서 왜선 13척을 격침시키고 왜군 2600여명을 사살함.
-왜적이 전라도를 점령하기 위해 서해로 북상하려하자 공이 위기를 느끼고 출전함.
-7월 8일 이른 아침, 공은 조선 수군 연합함대 56척으로 견내량으로 나아감. 왜군을 한산도 앞바 다로 유인하여 학익진으로 궤멸시킴. 이것이 곧 한산도 대첩임.
-학익진은 수세와 공세, 유인과 섬멸, 도주와 역공, 포위와 역포위에서 신속한 전환의 위력을 떨 침. 강도 높은 훈련과 지휘관의 대담성이 작전을 승리로 이끌게 됨.
-9월 부산포에서 적선 100여척을 불태움. 녹도만호 정운 전사. 공이 많이 애통해 함.
-공의 나이 49세, 7월 14일, 한산도로 진을 옮김. 이때 권율은 행주대첩에서 큰 승리를 거둠.
-8월 15일 삼도수군통제사가 됨. 7, 8월 한산진에서 전염병이 돌아 군민이 크게 고초를 겪음.
-임진, 계사년 이후 3, 4년에 걸쳐 전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듬. 명과 왜의 강화교섭. 그러나 강화 가 결렬되고 왜의 재침. 15만 병력. 선조 30년. 이것이 곧 정유재란.
5.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 있나이다.
1)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 했던가.
-왜적의 간교한 속임수에 조정이 넘어가 공을 옥에 가두게 됨. 공의 나이 53세.
군민의 대성통곡.
-단순히 왜의 속임수로 옥에 갇혔다기보다는 공을 시기하는 무리들이 앞 다투어 탄핵하여 목숨이 위태하였으나 공을 살리고자 많은 충신들이 나서 백의종군으로 권율 휘하에 들어가게 됨.
-백의종군 도중 모친의 사망. 공이 매우 애통해함.
2) 공든 탑이 무너지랴?
-공의 후임으로 통제사가 된 원균은 칠천량에서 공이 애써 이룬 조선수군 무적함대를 거의 모두 전멸시킴. 통제사 원균, 전라우수사 이억기, 충청수사 최호 전사. 이 싸움의 패전은 원균이 지휘 했지만, 작전을 기획하고 강행한 사람은 도원수 권율. 전술적 책임은 원균에게 있고 전략적 책임 은 권율에게 있으며, 정치적 책임은 병조판서와 임금에게 있음.
-공이 이 소식을 듣고 매우 비통해 함.
3)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 있나이다.
-8월 3일 공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함.
-9월 16일 전선 12척으로 명량에서 133척으로 오는 적을 맞아 31척을 깨뜨림. 나머지 적은 도 주. 세계 해전 상에 길이 남을 전투인 명량해전임.
-정유재란의 국면 전체를 결정적으로 바꾸어 놓음.
-10월 14일, 셋째 아들 이면이 아산에서 왜적이 보낸 병력과 싸우다 전사함. 공은 아들 면을 가 장 사랑하였으므로 매우 애통해 하였음.
-고금도로 진을 옮기고, 한동안 전쟁이 소강상태. 이때 공은 다시 조선수군을 강건하게 육성함.
6. 사지(死地)로
-공의 나이 54세, 이때 히데요시는 죽었고, 왜군은 철수를 결정함.
-11월 19일, 공은 조명 수군 연합함대를 이끌고 노량에서 적을 맞아 싸우다 총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함.
-적선 200여 척이 격침되고 겨우 50여 척만 도주.
-공의 죽음은 전투가 끝난 뒤에 알려짐. 통곡이 바다를 덮었음. 이날 전쟁이 끝남.
Ⅲ. 종(終)
Ⅰ. 시(始)
Ⅱ. 전(展)
1. 큰 뜻을 품고 무인의 길로 나서다.
2. 승첩과 백의종군의 아이러니
3. 폭풍전야의 고요 속에서
1) 사선(死線)으로
2) 귀선의 포효
3) 피를 부르는 칼의 징후
4. 칼의 노래
1) 바람 앞에 등불
2) 칼의 울부짖음
3) 한산 섬 달 밝은 밤에
5.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 있나이다.
1)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 했던가.
2) 공든 탑이 무너지랴?
3)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 있나이다.
6. 사지(死地)로
Ⅲ. 종(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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