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충무공이순신장군][거북선][의병][금속활자][일본군기물]임진왜란과 해상전, 임진왜란과 충무공이순신장군, 임진왜란과 거북선, 임진왜란과 의병, 임진왜란과 금속활자, 임진왜란과 일본군기물 심층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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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임진왜란][충무공이순신장군][거북선][의병][금속활자][일본군기물]임진왜란과 해상전, 임진왜란과 충무공이순신장군, 임진왜란과 거북선, 임진왜란과 의병, 임진왜란과 금속활자, 임진왜란과 일본군기물 심층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임진왜란과 해상전
1. 1차 출동
2. 2차 출동
3. 3차 출동
4. 4차 출동

Ⅲ. 임진왜란과 충무공이순신장군

Ⅳ. 임진왜란과 거북선
1. 이충무공전서에 나오는 두 가지 거북선
2. 거북선의 구조
3. 거북선의 화력
4. 충무공 행장에 나타난 거북선
5. 임진왜란때의 거북선

Ⅴ. 임진왜란과 의병
1. 왜란의 발발
2. 권율의 행주대첩
3. 바다를 장악한 전라도 수군
4. 호남 의병과 금산 전투

Ⅵ. 임진왜란과 금속활자

Ⅶ. 임진왜란과 일본군기물

Ⅷ.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夫)가 1970년에 발표한 「군기문학주요작품목록軍記文學主要作品目錄」에서 비롯된다. 이 목록을 바탕으로 1985년에 근대 이후 활자화된 작품만을 정리한 것이 기타가와 다다히코(北川忠彦) 『군기물의 계보(軍記物の系譜)』의 부록에 수록한 「군기물작품복제번각목록軍記物作品複製飜刻目錄」이다. 한편 최관은 일본문학에 나타난 임진왜란의 영향에서 조선군기물 작품으로 오제 호안(小瀨甫庵)의 다이코키(太閤記) 등 12편의 간행된 작품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목록은 근세 이후 활자화된 작품을 위주로 하고, 그것도 제목과 수록된 서명만을 제시한 정도이다. 여러 이본과 사본의 형태로 전하는 것을 포함하는 임진왜란에 관한 군기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실정이다.
임진왜란 관련 군기물은 전쟁참가자에 의한 군기와 후대의 군기로 분류할 수가 있다. 전쟁참가자에 의한 군기에는 당시 일본 최고 지식인 그룹으로 무장들을 수행한 승려의 종군일기와 전투에 직접 참가했던 무사들의 군기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이를 종군승 일기와 참전무사의 군기로 구분할 수 있다.
한편, 전란 참가자들에 의한 군기를 바탕으로 하면서 이들을 종합한 형태가 17세기 초반 이래로 근세사회에서 꾸준하게 나타났다. 이러한 작품으로는 풍신수길의 전기傳記와, 임진왜란의 종합적인 군기가 있다. 풍신수길은 조선에 직접 건너오지는 못했으나, 침략 전진기지인 규슈(九州)의 나고야(名護屋)에 주둔하면서 전쟁을 지휘하였고, 부하들의 조선에서의 전공이 풍신수길의 일대기안에 포함되어 있다. 풍신수길의 전기는 17세기 전반 오제 호안(소뢰보암)의 태합기에서 최초의 종합적인 형태가 나타났다. 이후 다케나카 쥬몬(죽중중문)의 풍감(1631년경 성립), 하야시 라잔(림라산)의 풍신수길보(1658년 간행), 수길 장군기(1664년 간행), 오하라 다케키요(대원무청)의 신찬풍신실록(1665년경 성립), 원록판태합기(태합기회입)(1698년 간행), 다케우치 가쿠사이(죽내확재)의 회본태합기(1797-1802년 간행), 구리하라 류안(율원류암)의 진서태합기(1852-명치 초기), 하치코샤 도쿠스이(팔공사덕수)의 회본풍신훈공기(1857-)등이 있다.
한편, 임진왜란에 관한 후대의 종합적인 군기로는 호리 교안(굴행암)의 조선정벌기(1659년 간행)에서 비롯된다. 이후 오제키 사다스케(대·정우)의 조선정벌기(1665년 성립), 성귀의 조선군기대전(1705년 간행), 조선태평기(1705년 간행), 본조선군기(1800년 간행), 본조선정벌기(1853년) 등이 있다.
임진왜란에 관한 군기는 전쟁 참가자들의 군기가 바탕이 되면서도, 허구적 요소가 덧보태지고 시대상황이 반영되면서 새롭게 재생산되고 있다. 이것은 전국시대의 군기이지만 일본 국내의 전란을 소재로 한 작품들과는 다른 생명력과 열기에 의해 지탱돼오고 있는 것이다.
임진왜란 관련 군기작품은 사실의 기록을 위주로 한 작품이 먼저 나타났다. 따라서 이들 작품은 원래부터 허구를 지향한 작품과는 구별된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추구한 군기도, 단편적인 기록에서 나아가 사건의 전말을 드러내기 위한 서술을 추가하면서 문학적 허구가 만들어지게 된다. 특히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정착되자 낯선 외국에서의 전란체험은 새로운 문학 작품 세계로 등장하게 되었다.
Ⅷ. 결론
일본의 침략으로 시작된 임진왜란은 16세기말 유교적 평화주의에 안주하던 조선 사회를 크게 위협하였다. 조선은 전국토가 유린되고 숱한 인명과 재산이 파괴되었지만, 끝까지 침략자에 대항함으로써 침략야욕을 분쇄하기에 이르렀다. 조선은 숱한 희생을 치루었지만 이를 계기로 다시 한번 유교적 평화주의의 우위를 확인한 결과가 되었다. 이 때의 험난한 상황에서 구국을 위한 의로운 활동은 실기문학으로 나타났다.
조선의 임란실기와 같은 문학 형태가 일본에서는 어떻게 나타나고 전개된 것일까. 일본은 오랜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전투의 공훈을 기술한 군기문학이 많이 나타났다. 임진왜란 관련 군기는 무장들을 수행한 종군 승려들의 진중일기와, 전투에 참가한 무사들의 군기가 있다. 이러한 임란체험 군기는 17세기에 이르러 종합화된다. 이것은 침략의 주모자인 풍신수길의 전기 속에 포함된 형태와, 조선군기물로 독립된 형태로 나누어진다.
전국시대 일본의 사상적 바탕을 이룬 것으로는 세속화된 불교가 있다. 불가의 승려들은 귀족 계급으로 안주하면서 은일한 문학적 취미에 심취하였다. 무수한 생명들이 죽어가는 전쟁의 와중에서도 승려들은 주흥과 시흥에 몰두하였다. 이들에게 전쟁은 오히려 극도로 형식화된 비애의 감정인 물애라는 전통적 미의식을 표현해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전장의 현실과 유리된 유미주의적 문학 행태는 무장들의 군기에서도 나타난다.
무사들의 군기의 세계는 맹목적인 충성과 전공에만 치중한 나머지 사실의 집적에 머물고 역사적 통찰이 결여되어 있다. 그러던 것이 전쟁을 기화로 일본에 새롭게 이식된 주자학의 세계관을 통해 임진왜란이 무도한 침략임이 처음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의식도 주자학의 인식의 깊이에 도달하지 못하였고, 비판의 의도는 오히려 풍신수길 영웅상을 만들고 만다. 17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는 주자학자들의 배타적 일본인식을 바탕으로 조선정벌이라는 명분이 형성된다.
조선의 임란실기와 일본의 임진왜란 관련 군기를 대비하여 살펴보면 동일한 사건에 대한 양쪽의 인식 차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조선의 임란실기는 주자학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순리를 거역하는 침략의 악행을 응징하기 위한 의리의 입장을 견지한다. 전쟁은 단순한 공훈이나, 맹목적인 충성이 아니라 평화를 지키기 위한 숭고한 행위로 나타난다. 조선의 임란실기는 전쟁의 와중에서도 인간사회에 대한 믿음에서 결코 떠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참고문헌
김문길(1995) / 임진왜란은 문화전쟁이다, 혜안출판사
김재근 / 우리배의 역사, 서울대 출판부
금종수 / 임진왜란 이후 조선 대명·청 관계, 임란수군활동연구논총, 해군군사연구실
국사편찬위원회(1995) / 한국사29
송정현(1995) / 임진왜란론, 전남사학8
전라남도(1993) / 임진왜란사료집(1), 일신
최영희(1992) / 임진왜란에 대한 이해의 문제점, 한국사론22,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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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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