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전개과정
1)4.3 사건의 발발 원인
2)1948년 4월 3일
3)4.28 평화협상
4)5.10선거 거부 투쟁]
5)초토화 작전과 계엄령
6)여수 반란사건과 진압작전
7)지속되는 대학살과 항쟁의 종식
Ⅱ. 의문제기
Ⅲ. 맺음말
1)4.3 사건의 발발 원인
2)1948년 4월 3일
3)4.28 평화협상
4)5.10선거 거부 투쟁]
5)초토화 작전과 계엄령
6)여수 반란사건과 진압작전
7)지속되는 대학살과 항쟁의 종식
Ⅱ. 의문제기
Ⅲ. 맺음말
본문내용
원이 발급한 치료비 추정서를 토대로 실무위원회의 의견 등을 참고하여 위원회에서 결정하고 있다. 의료지원금 지급 및 지원금액 결정은 후유장애자 중 근로능력 상실로 생활이 어려운 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최저 생계비를 지원하되 대상자로부터 신청을 받아 시장, 군수의 사실조사를 토대로 실무위원회에서 결정한 다음 예산 범위내에 지금액은 결정한다. 05년도 3월 17일 제 10차 전체위원회 후유장애자 의료지원금 지급은 19명으로 62백만원으로 결정되었다.
-현정권의 태도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 4.3사건 희생자 위령제에 참석해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국가 권력이 불법하게 행사됐던 잘못에 대해 사과했다. 또 “자랑스러운 역사든 부끄러운 역사든 역사는 있는 그대로 밝히고 정리해야 한다”고 말하고 “특히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잘못은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며 과거사 정리에 강한 의지를 밝혔다.
Ⅲ. 맺음말
현재의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틀 안에 살고 있다.
너무나 당연하고 평범한 이 틀의 자유란 새삼 따로 열거할 필요 없이 우리 정신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태초부터 민주시민이었던 우리에게는 인권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세상의 보편적인 진리속에 자유와 권리의 기원 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알고 있다. 지금껏 살펴보았던 4.3사건과 같은 수많은 저항과 갈망이 있음으로 비로소 자유가 있고 민주주의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4.3사건은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에게 어떤 느낌으로 와 닿는가.
4·3은 강요된 저항이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조건에서 이들이 봉기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상황을 주목해야만 한다. 목숨이 위태로움을 알면서도 봉기할 수 밖에 없었던, 그만큼 절박한 상황 하에서의 저항이었다.
그들이 나고 내가 그들이었다면 어찌했을까.
4·3을 역사적 사건이게 한 가장 큰 요인은 무엇보다도 엄청난 인명이 희생되었다는 데 있다. 실로 3만 명이란 숫자는 통계 수치로는 간단할 지 모르나, 한사람 한사람 그 가족의 아픔과 함께 가슴으로 다가간다면 이러한 대량학살은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부모와 형제가 죽고 나 또한 개죽음을 당할 상황에 놓인다면 그것은 저항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로 하여금 저항하게끔 만든 것이다.
4.3사건이 일어난 지 이미 50여년이 넘었다. 하지만 사건의 피해자들에겐 아직도 큰 상처로 남아있다. 어찌보면 학살을 자행한 군인들 또한 일부 피해자라 할 수 있다.
광주의 5.18이 그러했듯 상명하복으로 움직이는 군인들 또한 의지와 무관하게 움직여야만 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계속되는 갈등과 피해자들의 한은 풀어져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확한 사실 전모를 밝혀내는 노력이 필요할 뿐 아니라 피해자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 명예회복 또한 절실하다.
긴 세월동안 한민족임을 자긍심으로 삼고 살아온 한반도. 이 땅에서 4.3사건이라는 반인륜적 학살이 자행되었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충격적임에 분명하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 더 비극적인 우리의 역사를 이제는 말해야만 한다.
참고 문헌
4.3은 말한다1,2,3,4 박세길, 돌베개,1998 / 서원대
제주 4.3연구 장두환, 역사비평사,1999 / 충북중앙도서관
제주 4.3사건의 쟁점과 진실 조남현,돌담,1993 / 충북중앙도서관
새로쓰는 제주사 이영권, 휴머니스트,2005 / 충북중앙도서관
제주민중항쟁1아라리연구원 편, 소나무,1988 / 충북대
한국사18 한길사,1994 /서원대
4.3학습 자료 - http://www.bille.pe.kr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 위원회 - http://www.jeju43.go.kr
이제는 말할 수 있다- 4.3제주사건 편 , 레드헌트
참고자료>>
제주 4 3 사건 희생자 최종신고 현황
<총괄> (2004. 3. 31 현재)
구분
지역별
희 생 자 수 (명)
비고
계
사망자
행방
불명자
후유
장애자
총계
계
3차
2차
1차
14,373
347
888
13,138
10,949
227
632
10,090
3,248
77
240
2,931
176
43
16
117
제주도
계
3차
2차
1차
13,674
285
807
12,582
10,387
179
572
9,636
3,124
68
222
2,834
163
38
13
112
도외
/
해외
소계
소계
3차
2차
1차
699
62
81
556
562
48
60
454
124
9
18
97
13
5
3
5
도외
(국내)
소계
3차
2차
1차
621
45
47
529
495
33
29
433
115
9
15
9
11
3
3
5
해외
(국외)
소계
3차
2차
1차
78
17
34
27
67
65
31
21
9
-
3
6
2
2
-
-
일본:73
미국:5
희생자 접수 기관별 (도, 시순)
(2004. 3. 31 현재)
구분
신고인수
희 생 자 수 (명)
시군별
주계
누계
계
사망자
행방 불명자
후유 장애자
유족인수
주계
누계
주계
누계
주계
누계
주계
누계
총계
-
9,917
-
14,028
-
10,715
-
3,171
-
142
28,561
제주도
-
139
-
139
-
113
-
20
-
6
203
제주시
-
4,722
-
4,722
-
3,465
-
1,209
-
48
7,743
서귀포시
-
1,347
-
1,347
-
1,026
-
306
-
15
2,974
북제주군
-
4,813
-
4,813
-
3,686
-
1,050
-
77
10,031
남제주군
-
3,352
-
3,352
-
2,659
-
663
-
30
7,610
제주 4.3 사건 희생자 최종신고 현황 분석
◎ 희생자 유형별
계
희 생 자 수
신고인수
유족인수
사망자
행방불명자
후유장애자
14.373
비율(%)
10,949
(76.2%)
3,248
(22.6%)
176
(1.2%)
9,917
28,561
(단위:명)
◎신고자거주지별 (단위:명)
계
제주도
도외 (육지부)
국외
14,373
비율(%)
13,674
(95.1%)
621
(4.3%)
78
(0.6%)
◎성별(남,여) (단위:명)
계
남
여
14,373
11,303(78.6%)
3,070(21.4%)
-현정권의 태도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 4.3사건 희생자 위령제에 참석해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국가 권력이 불법하게 행사됐던 잘못에 대해 사과했다. 또 “자랑스러운 역사든 부끄러운 역사든 역사는 있는 그대로 밝히고 정리해야 한다”고 말하고 “특히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잘못은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며 과거사 정리에 강한 의지를 밝혔다.
Ⅲ. 맺음말
현재의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틀 안에 살고 있다.
너무나 당연하고 평범한 이 틀의 자유란 새삼 따로 열거할 필요 없이 우리 정신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태초부터 민주시민이었던 우리에게는 인권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세상의 보편적인 진리속에 자유와 권리의 기원 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알고 있다. 지금껏 살펴보았던 4.3사건과 같은 수많은 저항과 갈망이 있음으로 비로소 자유가 있고 민주주의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4.3사건은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에게 어떤 느낌으로 와 닿는가.
4·3은 강요된 저항이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조건에서 이들이 봉기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상황을 주목해야만 한다. 목숨이 위태로움을 알면서도 봉기할 수 밖에 없었던, 그만큼 절박한 상황 하에서의 저항이었다.
그들이 나고 내가 그들이었다면 어찌했을까.
4·3을 역사적 사건이게 한 가장 큰 요인은 무엇보다도 엄청난 인명이 희생되었다는 데 있다. 실로 3만 명이란 숫자는 통계 수치로는 간단할 지 모르나, 한사람 한사람 그 가족의 아픔과 함께 가슴으로 다가간다면 이러한 대량학살은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부모와 형제가 죽고 나 또한 개죽음을 당할 상황에 놓인다면 그것은 저항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로 하여금 저항하게끔 만든 것이다.
4.3사건이 일어난 지 이미 50여년이 넘었다. 하지만 사건의 피해자들에겐 아직도 큰 상처로 남아있다. 어찌보면 학살을 자행한 군인들 또한 일부 피해자라 할 수 있다.
광주의 5.18이 그러했듯 상명하복으로 움직이는 군인들 또한 의지와 무관하게 움직여야만 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계속되는 갈등과 피해자들의 한은 풀어져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확한 사실 전모를 밝혀내는 노력이 필요할 뿐 아니라 피해자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 명예회복 또한 절실하다.
긴 세월동안 한민족임을 자긍심으로 삼고 살아온 한반도. 이 땅에서 4.3사건이라는 반인륜적 학살이 자행되었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충격적임에 분명하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 더 비극적인 우리의 역사를 이제는 말해야만 한다.
참고 문헌
4.3은 말한다1,2,3,4 박세길, 돌베개,1998 / 서원대
제주 4.3연구 장두환, 역사비평사,1999 / 충북중앙도서관
제주 4.3사건의 쟁점과 진실 조남현,돌담,1993 / 충북중앙도서관
새로쓰는 제주사 이영권, 휴머니스트,2005 / 충북중앙도서관
제주민중항쟁1아라리연구원 편, 소나무,1988 / 충북대
한국사18 한길사,1994 /서원대
4.3학습 자료 - http://www.bille.pe.kr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 위원회 - http://www.jeju43.go.kr
이제는 말할 수 있다- 4.3제주사건 편 , 레드헌트
참고자료>>
제주 4 3 사건 희생자 최종신고 현황
<총괄> (2004. 3. 31 현재)
구분
지역별
희 생 자 수 (명)
비고
계
사망자
행방
불명자
후유
장애자
총계
계
3차
2차
1차
14,373
347
888
13,138
10,949
227
632
10,090
3,248
77
240
2,931
176
43
16
117
제주도
계
3차
2차
1차
13,674
285
807
12,582
10,387
179
572
9,636
3,124
68
222
2,834
163
38
13
112
도외
/
해외
소계
소계
3차
2차
1차
699
62
81
556
562
48
60
454
124
9
18
97
13
5
3
5
도외
(국내)
소계
3차
2차
1차
621
45
47
529
495
33
29
433
115
9
15
9
11
3
3
5
해외
(국외)
소계
3차
2차
1차
78
17
34
27
67
65
31
21
9
-
3
6
2
2
-
-
일본:73
미국:5
희생자 접수 기관별 (도, 시순)
(2004. 3. 31 현재)
구분
신고인수
희 생 자 수 (명)
시군별
주계
누계
계
사망자
행방 불명자
후유 장애자
유족인수
주계
누계
주계
누계
주계
누계
주계
누계
총계
-
9,917
-
14,028
-
10,715
-
3,171
-
142
28,561
제주도
-
139
-
139
-
113
-
20
-
6
203
제주시
-
4,722
-
4,722
-
3,465
-
1,209
-
48
7,743
서귀포시
-
1,347
-
1,347
-
1,026
-
306
-
15
2,974
북제주군
-
4,813
-
4,813
-
3,686
-
1,050
-
77
10,031
남제주군
-
3,352
-
3,352
-
2,659
-
663
-
30
7,610
제주 4.3 사건 희생자 최종신고 현황 분석
◎ 희생자 유형별
계
희 생 자 수
신고인수
유족인수
사망자
행방불명자
후유장애자
14.373
비율(%)
10,949
(76.2%)
3,248
(22.6%)
176
(1.2%)
9,917
28,561
(단위:명)
◎신고자거주지별 (단위:명)
계
제주도
도외 (육지부)
국외
14,373
비율(%)
13,674
(95.1%)
621
(4.3%)
78
(0.6%)
◎성별(남,여) (단위:명)
계
남
여
14,373
11,303(78.6%)
3,07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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