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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 만주족이 한족을 다스린다, 이는 누가 보더라도 한족의 입장에서 보면 기분 나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만주족이 왕조를 장악한 이상 청조는 만주인에 대해서도 독재 군주이며 중국인에 대해서도 역시 독재 군주여야 한다. 하지만 이를 모든 한족들에게 거리낌없이 받아들이게 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이로 인해 옹정제도 고심을 하였으며 심리적으로 고생이 심했던 것 같다. 하지만 옹정제는 그러한 기색을 나타내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으며 이를 타계할 수 있는 강건한 논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옹정제는 예로부터 군주가 없는 백성은 없고 군주를 세운 뒤에 충의를 다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이며 이는 다름 아닌 한족의 사상인 중국 유교에서 나온 가르침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청 왕조가 명 왕조를 멸하고 새로운 왕조를 새운 것은 매우 정당한 방법이었으며 이는 바로 천명이라고 하였다. 천명은 만주족, 한족을 가리지 않으므로 도탄과 혼란에 빠진 중국을 나서서 지배 통치하여주는 청 왕조에 중국 백성들은 충의를 다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옹정제는 이와 같은 자신의 논리를 백성들에게 뼈 속 깊이 새겨야 할 필요성을 충분히 느꼈으며 또한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그 결과 청 왕조 중반 이후로 넘어오게 되면 백성들은 청 왕조가 만주족이 세운 왕조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되고 민족 문제가 더 이상 군주 정치에 큰 문제가 되지 않게 된다. 이러한 점 역시 옹정제가 후세를 위하여 청 왕조에 남긴 큰 업적이라 할 수 있다.
옹정제는 비록 13년이라는 짧은 기간이기는 하지만 재위 기간동안 내내 역사상 찾아볼 수 없는 강력한 독재정치, 강력한 개혁정치를 단행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들은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옹정제가 죽고 난 후 건륭제 시대로 접어들면서 다시 과거의 정치인 방임정치로 돌아가고 만다. 옹정제 시대에 그렇게 많은 성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옹정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옹정제 식의 정치가 이루어지지 못했던 이유는 옹정제 식 정치는 옹정제만이 할 수 있는 정치였기 때문이다. 옹정제는 매우 치밀하고, 냉철하며 부지런하고 백성들을 자신의 몸과 같이 아끼던 군주였다. 천하를 호령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옹정제처럼 행동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희생하여야만 모든 백성이 편안해진다고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치국에 힘쓴 그의 참 군주다운 모습은 후세에 능히 본보기가 될만하다. 물론 옹정제의 정치는 한계를 지닌다. 하나는 위에 언급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정치여서 후세에 길이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과 또 하나는 옹정제의 개혁정치 역시 어쩔 수 없는 독재정치였다는 사실이다. 독재를 신뢰하게된 대중은 독재가 아니면 다스려질 수 없도록 틀지워지게 마련이다. 옹정제는 이러한 치적과 한계를 남기고 짧은 재위기간을 마쳤다. 오늘날 옹정제에 대한 평가는 아버지 강희제나 아들 건륭제만큼 좋지가 않았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 옹정제에 대한 평가가 재검토되기 시작하고있다. 청 왕조의 고독한 독재군주 옹정제는 이제 다시 역사적 재평가를 받기 위해 우리 앞에 섰다.
옹정제는 비록 13년이라는 짧은 기간이기는 하지만 재위 기간동안 내내 역사상 찾아볼 수 없는 강력한 독재정치, 강력한 개혁정치를 단행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들은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옹정제가 죽고 난 후 건륭제 시대로 접어들면서 다시 과거의 정치인 방임정치로 돌아가고 만다. 옹정제 시대에 그렇게 많은 성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옹정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옹정제 식의 정치가 이루어지지 못했던 이유는 옹정제 식 정치는 옹정제만이 할 수 있는 정치였기 때문이다. 옹정제는 매우 치밀하고, 냉철하며 부지런하고 백성들을 자신의 몸과 같이 아끼던 군주였다. 천하를 호령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옹정제처럼 행동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희생하여야만 모든 백성이 편안해진다고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치국에 힘쓴 그의 참 군주다운 모습은 후세에 능히 본보기가 될만하다. 물론 옹정제의 정치는 한계를 지닌다. 하나는 위에 언급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정치여서 후세에 길이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과 또 하나는 옹정제의 개혁정치 역시 어쩔 수 없는 독재정치였다는 사실이다. 독재를 신뢰하게된 대중은 독재가 아니면 다스려질 수 없도록 틀지워지게 마련이다. 옹정제는 이러한 치적과 한계를 남기고 짧은 재위기간을 마쳤다. 오늘날 옹정제에 대한 평가는 아버지 강희제나 아들 건륭제만큼 좋지가 않았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 옹정제에 대한 평가가 재검토되기 시작하고있다. 청 왕조의 고독한 독재군주 옹정제는 이제 다시 역사적 재평가를 받기 위해 우리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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