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신채호의 생애와 업적
2. 신채호의 사상체계
3. 신채호 사상의 영향
4. 맺음말
2. 신채호의 사상체계
3. 신채호 사상의 영향
4. 맺음말
본문내용
을 처음으로 제시함으로써 민족주의 사학을 개척하였으며, 일본인들의 임나일본부설, 신공후침공설 등 식민주의적 역사관을 비판하면서 한국 근대 민족주의사학의 과제 중의 하나가 반식민 사학에 있음을 분명히 하였기 때문이다.
신채호와 박은식의 역사학은 민족주의 사관에 입각하였다는 점, 근대적인 역사학방법론을 수용하여 한국 사학을 근대적인 학문으로 성립시키려 노력하였다는 점에서 공통되지만 양자간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단재가 특히 고대사에 더 관심을 쏟았다면, 박은식은 근대사에 더 관심을 쏟았다. 이는 박은식이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을 비판하고 민족운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반면, 신채호는 한국민족의 강국시대였던 고대사를 웅혼한 모습으로 복원하는 데 더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역사서술을 통하여 민족혼을 되살리고자 하였던 점은 양자에 공통된 것이었으며, 따라서 그들의 민족주의 사관이 모두 관념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었던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신채호와 박은식에 의해 성립된 민족주의 사학은 1930년대 정인보, 문일평, 안재홍 등에 의해 관념론적인 한계를 극복하면서 신민족주의 사학으로 비약하게 된다.
4. 맺음말
단재 신채호는 우리나라 근대사가 낳은 대표적 사상가 중의 한 사람이다. 현전되고 있는 그의 저술들을 살펴보아 그의 연구 과정은 단순히 역사 기술 자체의 발전만 기한 것이 아니고, 사회 사상과의 부단한 접촉을 통해서 발전심화된 것이다. 이렇게 사회 사상과 밀접히 관련되어 발전해온 그의 사학 사상과 그에게서 성립된 근대 사학은 조선을 주체로 하고, 조선 민중 전체의 진화를 서술해야 하고, 당시 일제 관학자들의 식민주의 사학을 극복해야 하는, 자기 시대 역사학의 새 과제들을 수행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러한 필연론적 시대상황과 맞물려서 신채호의 고대사 인식은 여러 가지 면에서 종래의 이해와는 다르며, 후대에게 개척자적 의미를 부여한 점도 없지 않다. 그는 같은 사료들을 가지고서 그 이전의 유가적 사가들이 찾아내지 못한 사실들을 발견하였다. 이를 통해 중국과의 정치문화적 사대 문제를 고대사의 인식을 통해 극복하고, 당시 일제 관학자들의 식민주의사관은 물론 일제의 지배 자체를 철폐하기 위한 역사 인식의 근거를 고대사의 재인식을 통해 마련해보고자 하는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물론 신채호의 민족주의사관은 많은 면에서 우리의 고대사를 과대시키고 우리나라 중심의 민족주의적이고 영웅적인 면만을 많은 부분 강조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이번 보고서를 통해 단재 신채호에 대해서 조사를 하고 그의 사상을 알아봄으로 인해서 우리나라 독립노선의 한 방법이긴 하였지만 그의 진취적이고 역동적인 사상에 이끌리게 되었다. 그 당시 일제침략으로 인해 몸과 마음까지 피폐해지고 침체되어 가는 우리 역사 속에서 신채호는 당당히 우리나라의 구국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침체되어 가는 우리 역사를 다시 부활시키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당시 우리나라 많은 민중들에게 그의 사상에 드러난 진취적이고 역동적인 생각들이 긍정적이고 밝은 미래상을 제시해 주었다는 점만으로도 신채호 그는 추앙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민족의 기강과 힘을 세우기 위한 그만의 충실한 노력으로 인해 우리나라 근대사학과 민족사학이 일어날 수 있는 밑바탕을 제공해 주었다는 커다란 역사적 의의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 참고문헌
☞『신채호의 민족주의사상』, 1993, 최홍규 저, 단재 신채호선생 기념사업회
☞『단재 신채호의 역사학 연구』, 1990, 이만열 저, 문학과 지성사
☞『신채호』, 1981, 안병직 편, 한길사
신채호와 박은식의 역사학은 민족주의 사관에 입각하였다는 점, 근대적인 역사학방법론을 수용하여 한국 사학을 근대적인 학문으로 성립시키려 노력하였다는 점에서 공통되지만 양자간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단재가 특히 고대사에 더 관심을 쏟았다면, 박은식은 근대사에 더 관심을 쏟았다. 이는 박은식이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을 비판하고 민족운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반면, 신채호는 한국민족의 강국시대였던 고대사를 웅혼한 모습으로 복원하는 데 더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역사서술을 통하여 민족혼을 되살리고자 하였던 점은 양자에 공통된 것이었으며, 따라서 그들의 민족주의 사관이 모두 관념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었던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신채호와 박은식에 의해 성립된 민족주의 사학은 1930년대 정인보, 문일평, 안재홍 등에 의해 관념론적인 한계를 극복하면서 신민족주의 사학으로 비약하게 된다.
4. 맺음말
단재 신채호는 우리나라 근대사가 낳은 대표적 사상가 중의 한 사람이다. 현전되고 있는 그의 저술들을 살펴보아 그의 연구 과정은 단순히 역사 기술 자체의 발전만 기한 것이 아니고, 사회 사상과의 부단한 접촉을 통해서 발전심화된 것이다. 이렇게 사회 사상과 밀접히 관련되어 발전해온 그의 사학 사상과 그에게서 성립된 근대 사학은 조선을 주체로 하고, 조선 민중 전체의 진화를 서술해야 하고, 당시 일제 관학자들의 식민주의 사학을 극복해야 하는, 자기 시대 역사학의 새 과제들을 수행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러한 필연론적 시대상황과 맞물려서 신채호의 고대사 인식은 여러 가지 면에서 종래의 이해와는 다르며, 후대에게 개척자적 의미를 부여한 점도 없지 않다. 그는 같은 사료들을 가지고서 그 이전의 유가적 사가들이 찾아내지 못한 사실들을 발견하였다. 이를 통해 중국과의 정치문화적 사대 문제를 고대사의 인식을 통해 극복하고, 당시 일제 관학자들의 식민주의사관은 물론 일제의 지배 자체를 철폐하기 위한 역사 인식의 근거를 고대사의 재인식을 통해 마련해보고자 하는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물론 신채호의 민족주의사관은 많은 면에서 우리의 고대사를 과대시키고 우리나라 중심의 민족주의적이고 영웅적인 면만을 많은 부분 강조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이번 보고서를 통해 단재 신채호에 대해서 조사를 하고 그의 사상을 알아봄으로 인해서 우리나라 독립노선의 한 방법이긴 하였지만 그의 진취적이고 역동적인 사상에 이끌리게 되었다. 그 당시 일제침략으로 인해 몸과 마음까지 피폐해지고 침체되어 가는 우리 역사 속에서 신채호는 당당히 우리나라의 구국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침체되어 가는 우리 역사를 다시 부활시키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당시 우리나라 많은 민중들에게 그의 사상에 드러난 진취적이고 역동적인 생각들이 긍정적이고 밝은 미래상을 제시해 주었다는 점만으로도 신채호 그는 추앙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민족의 기강과 힘을 세우기 위한 그만의 충실한 노력으로 인해 우리나라 근대사학과 민족사학이 일어날 수 있는 밑바탕을 제공해 주었다는 커다란 역사적 의의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 참고문헌
☞『신채호의 민족주의사상』, 1993, 최홍규 저, 단재 신채호선생 기념사업회
☞『단재 신채호의 역사학 연구』, 1990, 이만열 저, 문학과 지성사
☞『신채호』, 1981, 안병직 편,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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