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이것은 송백이 사계절이 없이 시들지 않고 날씨가 차가워지기 전에도 송백이요, 차가워 진 후에도 송백이기 때문이다. 성인은 특히 날씨가 차가워진 후를 칭송하였다. 그대가 나와 함께 있을 적에 그대를 위해 잘해 준 것도 없고, 뒤(유배시)에도 덜 생각해 준 것도 없다. 그런 연유로 전(권세가 있을 때)에 그대를 칭찬한 적이 없는데, 그대는 훗날 성인의 칭찬을 받으려 한 것인가. 성인이 특히 칭송하기를 시들지 않는 정조와 굳은 절개뿐만 아니라 날씨가 추워진 때가 되어야 송백의 정조와 절개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오호라, 한나라 서경[洛陽]에 순박하고 후덕한 인심이 있었을 적엔 급암(汲 )과 정당시(鄭當時)같은 어진사람도 그 빈객과 더불어 성하고 쇠하였으며, 하비(下 )의 적공(翟公)이 대문에 방문(榜文)을 붙인 일은 세상인심이 때에 따라 박절하게 변함을 탓한 것이다. 슬프도다. 완당 노인 씀' http://www.land.go.kr/landlife/publiccolumn/geomancer/2003/06/25/127,1480,0,0,0.jsp
여러 장소 중에서 추사고택을 다녀왔다.
서울에 있던 집을 뜯어다가 만든 곳이라고 하여 규모가 작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크고 주위 경치가 정말 좋았다. 충청남도에서 문화재자료 43호로 지정된 곳이라서인지 관리도 잘되어 있었다. 조선시대의 집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깨끗하게 잘 보존 되어있었다.
사랑채와 안채를 지나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영정을 모신 사당채가 나오는데 방명록 같은 것도 적고 향도 올릴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향도 올리고 방명록에 이름도 남기고 왔다.
처음 가는 곳인데 조사를 제대로 하고 가지 않아서 천연기념물 106호인 백송을 보지 못하고 왔다. 안내도가 있었는데도 주의 깊게 보지 않았던 것이다.
백송은 우리나라에도 몇 그루 없는 희귀한 종인데 보지 못해서 안타까웠다.
추사 김정희 선생님의 묘소와 증조부이신 김한신과 부인인 화순옹주의 합장묘도 보았다. 처음에는 크기만 보고 합장묘가 김정희 선생님의 묘소인줄 알았다. 김한신과 화순옹주의 합장묘는 크고 비석 같은 것도 많았었는데, 그에 비해 김정희 선생님의 묘소는 작고 간소하였다.
가까운 곳에 이런 좋은 곳이 있을 줄은 몰랐다. 아쉬웠던 것이 있다면 조사가 미흡하여 제대로 보지 못한 것과 그곳에 설명하는 안내문이 적었다는 것이다. 다음에
답사를 갈 때에는 미리 철저하게 준비를 해야겠다.
여러 장소 중에서 추사고택을 다녀왔다.
서울에 있던 집을 뜯어다가 만든 곳이라고 하여 규모가 작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크고 주위 경치가 정말 좋았다. 충청남도에서 문화재자료 43호로 지정된 곳이라서인지 관리도 잘되어 있었다. 조선시대의 집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깨끗하게 잘 보존 되어있었다.
사랑채와 안채를 지나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영정을 모신 사당채가 나오는데 방명록 같은 것도 적고 향도 올릴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향도 올리고 방명록에 이름도 남기고 왔다.
처음 가는 곳인데 조사를 제대로 하고 가지 않아서 천연기념물 106호인 백송을 보지 못하고 왔다. 안내도가 있었는데도 주의 깊게 보지 않았던 것이다.
백송은 우리나라에도 몇 그루 없는 희귀한 종인데 보지 못해서 안타까웠다.
추사 김정희 선생님의 묘소와 증조부이신 김한신과 부인인 화순옹주의 합장묘도 보았다. 처음에는 크기만 보고 합장묘가 김정희 선생님의 묘소인줄 알았다. 김한신과 화순옹주의 합장묘는 크고 비석 같은 것도 많았었는데, 그에 비해 김정희 선생님의 묘소는 작고 간소하였다.
가까운 곳에 이런 좋은 곳이 있을 줄은 몰랐다. 아쉬웠던 것이 있다면 조사가 미흡하여 제대로 보지 못한 것과 그곳에 설명하는 안내문이 적었다는 것이다. 다음에
답사를 갈 때에는 미리 철저하게 준비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