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셀 호네트의 ‘인정으로서의 재분배’에 대한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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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악셀 호네트의 ‘인정으로서의 재분배’에 대한 논평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론

2. 낸시 프레이저에 대한 호네트의 반박과 ‘인정 투쟁’
1) 미시 영역에 대한 환기와 경험적 탐구
2) 세 가지 인정 영역
3) 자아 실현과 다원적 정의 개념

3. 호네트에 대한 비판적 고찰
1) 거시적 관점의 결여
2) 인정 이론적 환원
3) 변화의 추동력 문제

4. 결론: 사회 비판 이론의 과제

본문내용

론 사이에 간극을 벌리는 일 또한 용납될 수 없을 것이다. 호네트는 심지어 오늘날의 정치적 저항이 매스 미디어에 의해 ‘과대평가(overestimated)’됐다고까지 말하며 사회 운동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있다. N. Fraser/A. Honneth, 같은 책, p.161.
이처럼, 호네트는 아예 사회 운동을 이론적 고려에서 제외함으로써, 사회의 변화를 추동하기 위한 현실적 힘의 관계에 대해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있다.
이 점에서, 나는 고전적 맑스주의가 오늘날의 현실에서 적절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맑스주의가 노동자 계급을 유일주체로 거론한 것은, 호네트의 주장과는 날리 형이상학적 잔재가 아니다. 그것은 호네트가 수행하지 못한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거시적 분석과 이행의 전략에 비추어 도출한 결론이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유일주체란 표현 자체가 올바르지 않다. 맑스는 노동계급의 독특한 역할에 대해 강조했을 뿐, 사회 변혁의 주체를 노동자계급으로만 한정시킨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맑스는 아일랜드와 인도의 자결권을 지지하고, 다양한 피억압세력의 동맹을 추구했다. 다만 노동자계급이 다른 사회세력과 달리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구조적 능력에 주목한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설명이 유효하다. 캘리니코스는 기든스의 견해를 빌려 사회 구조를 ‘인간 행위의 인지되지 않은 조건과 기대되지 않은 결과’로 인식할 것을 주문한다. 이것은 구조가 행위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이자 동시에 행위를 강제하는 지배적 힘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기든스는 이를 ‘구조의 이중성(the duality of structure)’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사회체계의 구조적 속성은 그 체계를 구성하는 행위의 매개물인 동시에 그 결과’라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 해, 구조는 단지 인간의 행위를 강압하는 장벽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행위를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행위는 사건의 진행과정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인 ‘변형능력’을 가지고 있다. 구조는 규칙과 자원으로 구성되는데, 이를 통해 권력을 구체적인 형태로 행사할 수 있게 한다. 구조와 행위 사이의 이분법을 극복하기 위해 전개된 기든스의 논의를 빌려 캘리니코스는 ‘구조적 능력’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인간이 가진 자연적 능력은 종종 생산관계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동시에 행위자들은 그들이 생산관계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 능력을 도출한다. 전자는 자명한 것이라면, 후자는 구조적 능력의 설명방식이 된다. 구조적 능력의 예는 투자를 할 수 있는 능력이나 파업 투쟁을 진행할 수 있는 능력 같은 것들이 있다. 전자는 자본가의 것이고 후자는 노동자의 것이다. 후자에서 보듯, 구조적 능력은 많은 경우 개별적으로 행사할 수 없고 집합적으로만 행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일반적 특성의 결과는 집합적 행위주체의 형성을 낳는다. 캘리니코스, 『역사와 행위』, p.153~156.
여기서 보듯, 노동계급에 대한 맑스주의적 설명방식은 형이상학적 ‘유일주체의 신화’가 아니다. 오히려, 사회의 변화를 강제할 구조적 능력이 노동계급에게 있음을 강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4. 결론: 사회 비판 이론의 과제
21세기 벽두인 오늘날, 사회 운동은 파편화를 극복하고 점차 여러 쟁점들간의 통합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는 서두에서도 언급한 세계사회포럼(WSF)인데, 여기에서는 해마다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조합 활동가들 같은 전통적 좌파세력뿐 아니라 생태주의, 여성주의, 각종 제3세계 빈민 단체들, 동성애 단체들 등 여타의 진보적 사회 세력이 거대한 집결을 형성하고 있다. 사회 운동이 통합을 모색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현 시기의 가장 큰 화두인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단일 부문의 집단만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총체적 빈곤화와 파괴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미 FTA는 단지 쌀개방에 의해 피해를 입는 농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의약품 개방, 교육 개방, 공공 기업 민영화, 유연 노동 확대 등 모든 부분에서 자본의 이윤 극대화를 위해 노동자들과 빈민들의 생활수준을 하락시킬 우려가 있는 조치들을 이 땅에 도입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그러므로 한미 FTA 반대 운동에 농민, 영화인, 노동조합, 보건 단체들 등 다양한 사회 세력들이 결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1970년대와 80년대 서구의 사회 운동에 각종 분리주의와 파편화가 횡행했던 시대가 지나고 전 세계적으로 사회 운동이 통합을 추진하는 시기에, 사회 이론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낸시 프레이저와 악셀 호네트는 각각의 고유한 관점을 통해 이러한 현상에 대한 자신들의 안목을 제시했고 우리에게 귀감을 주고 있다.
양 저자의 시각은 놀라울 정도로 상이했다. 낸시 프레이저가 의무론적 정의론에 입각해, 분석적 이원론을 통해 실재 현상들을 살펴본 뒤 ‘참여 동등성’이라는 단일한 원칙을 발견해 냈다면, 호네트는 프레이저의 정의 개념을 반박하고, ‘인정’의 범주를 통해 현 사회에서 벌어지는 개인들의 갈등 유형을 정식화했다. 필자는 낸시 프레이저의 절차주의에 대한 호네트의 반박에 공감하면서도, 호네트의 이론에 내재한 문제들이 있음을 밝혀냈고, 이를 지적하는 가운데 조심스럽게, 특히 구조와 행위에 관한 맑스주의적 관점의 유효성에 대해 검진해 보았다.
그러나 필자는 맑스주의가 아무런 변형 내지 발전 없이 오늘날의 현실에 온전히 적용될 수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다만, 맑스주의에 대한 세심한 숙고 없이 스탈린 시대에 발전한 맑스주의의 일부분만을 그 전체로 확대해석하여, 맑스주의의 고유한 장점까지 내다버리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특히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물결 속에 사회에 대한 총체적 비판이 여러 저자에게서 수행되고 있고, 대안적 사회상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맑스주의는 여전히 훌륭한 지침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이 점에 대한 논의가 앞으로 활발해질 수 있도록 앞으로 많은 연구가 진행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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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1.13
  • 저작시기20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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