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개요
2. 안압지
3. 불국사
4. 석굴암(石窟庵)
5. 분황사
6. 칠불암
7. 양동 민속 마을
8. 부처바위
9. 용담정
2. 안압지
3. 불국사
4. 석굴암(石窟庵)
5. 분황사
6. 칠불암
7. 양동 민속 마을
8. 부처바위
9. 용담정
본문내용
사랑채의 이름을 따서 서백당 또는 송첨이라고 불리며, 중요민속자료 제3호이다.
*무첨당
물봉골 남향받이 언덕에 자리한 여강 이씨들의 대종가는 안채와 별당채, 사당채로 이루어지는데 무첨당은 바로 별당 건물이다. 보통 별당은 살림채 안쪽에 외부인의 눈에 잘 띄지 않고 접근이 어려운 곳에 두게 마련인데 무첨당은 살림채 입구에 있고 규모도 커서 별당이라기 보다는 큰 사랑채 격이다.
무첨당의 오른쪽 건물군이 안채이며, 뒤편 언덕 위에 있는 것이 사당이다. 무첨당은 16세기초에 건립되었으며, 회재의 본가였다. 보물 제411호이다.
*관가정
우재가 분가하여 살던 집이다. 마을 입새 첫 번째 산등성이에 자리했으면서도 같은 구릉에 있는 향단에 비해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마루에서 볼 수 있는 경관은 마을 안의 살림집 가운데 가장 멀리 트여 있다.
익공계 건물이면서 대들보를 자연스런 곡선재를 사용해 대공 없이 바로 종도리를 받는 이색적인 구조를 보인다. 소박한 인상의 건물이다. 집에는 역시 사람이 살아야 되는지 빈 채로 관리도 허술한 관가정을 돌아보면 윤기가 가신 얼굴을 대하듯 면구스럽다. 보물 제442호이다.
*향단
회재가 경산감사로 재직할 때 지은 건물이다. 그가 전임하면서 동생인 농재 이언괄에게 물려주어 농재의 후손들이 살게 됨으로써 여강 이씨 향단파의 파종가가 되었다.
일반 상류주택과는 많이 다른 특이한 평면구성을 하고 있다. 몸채를 月자형으로 하고 여기에 一자형 행랑채와 칸막이를 둠으로써 전체 평면은 用자형을 이룬다. 굳이 이렇게 복잡한 평면구조를 택하는 이유는 풍수사상 때문이다. 用자가 日자와 月자가 합쳐진 모양이기 때문에 하늘의 해와 달을 지상에 있게 함으로써 생기를 북돋워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부귀공명을 주리게 된다는 것이다.
집의 전체적 분위기가 사대부들이 지향하는 검박함과는 상당히 거리가 잇다. 마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과시적 입지, 정면에서 보나 측면에서 보나 3개의 박공면 혹은 합각면이 강하게 드러나는 특이하고 표현적인 외관, 주택의 일반적인 격식을 과감히 변형한 대담서, 행랑채까지도 두리기둥을 사용할 정도의 고급스러움 등등이 그런 느낌을 자아내는 요소들이다. 보물 제412호이다.
8. 부처바위
보리사를 나와 갯마을에서 경주 시내의 반월성 쪽으로 약 400m 떨어진 곳에 탑골이 있다. 탑골 마을에서 개울을 거슬러 약 300m들어가면 불무사가 있다. 이 일대는 통일신라시대에 신인사란 절이 있던 곳이다. 불무사 대웅전 뒤쪽 높이 9m, 둘레가 30m쯤 되는 큰 바위에 유례없이 다양한 조각들이 있다. 조각 가운데에는 탑이 있고 불상이 있고 승려가 있는가 하면 비천상, 사자상이 있다. 무려 30여점에 달하는 여러 형상이 한 바위에 새겨져 있어 무척 놀랍다.
이를 부처바위라 부르는데 바위 하나에 불교세계의 모든 형상, 곧 사방정토와 속인의 수양을 함께 새겨 놓았다. 뿐만 아니라 바위에 새겨진 조각의 모습은 신라 때 있었으나 지금은 알 길이 없는 것, 예컨데 목조 탑의 형태를 알 수 있는 근거도 제공하고 있다.
이 바위는 북면, 동면, 서면의 삼면을 이루고 있으며 남면은 언덕으로 되어 있다. 북면은 바위의 정면으로 가장 높은데 높이 9m, 폭은 5.7m이다. 동면은 가장 화려한 극락세계가 표현된 바위면으로 전체 폭이 13m 정도 되는데, 바위면이 세 면으로 갈라져 있어 편의상 북쪽부터 첫째면, 둘째면, 셋째면으로 부른다. 동면에서 가장 높은 첫째면은 높이가 약 10m 쯤 되는데, 언덕 위쪽인 셋째면은 4m 정도밖에 안 된다. 서면은 면적이 좁아 석불좌상과 비천상 하나만 조각돼 있다. 남면은 흙으로 덮인 언덕이라 언덕으로 솟은 부분만 2.7m 정도 된다.
전체적으로 보아 바위가 그늘진 곳에 있기 때문에 이끼가 끼어 있고 여름철이면 습기가 심해 형체를 파악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오랜 풍상으로 마멸이 더욱 심해지고 있어 무척 안타깝다. 보물 제201호로 지정돼 있다.
9. 용담정
*용담성지(龍潭聖地)
천도교의 성지.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의 탄생지로, 무극대도를 한울님으로부터 받아 포덕을 시작한 천도교의 발상지이며, 대구에서 처형당한 교조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현재 행정구역상으로는 경상북도 경주군 견곡면 가정리이다. 경주시에서 서쪽으로 약 12킬로미터에 가정리가 있고 그 앞산이 바로 구미산이며, 그 산 계곡에 용담정이 있다.
*용담정
용담정은 도학으로 이름 높았던 최제우의 아버지 최옥이 나이 60이 넘도록 자식이 없어 구미산 계곡에서 시를 읊조리며 소일하던 곳이다. 최옥은 나이 63세 되던 해 한씨를 세번째 부인으로 맞아 1824년 10월 28일 최제우를 낳았다. 태어나던 날 구미산이 3일간 크게 진동하였다고 한다. 용담에서 난 최제우는 장년이 되어 제세안민(濟世安民)의 도를 찾고자 10여년간 전국을 순회하다가 가산만 탕진하고 뜻을 이루지 못하자, 착잡한 심경으로 다시 용담정으로 돌아와 각도에 전념하였다. 그러던 중 1860년 4월 5일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이라는 한울님의 계시를 받아 무극대도를 이루었다. 그는 <용담가>를 지어 이 득도의 과정과 내용을 서술하였는데, <용담가>라는 가사의 명칭은 용담정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리고 포덕을 행한 곳곳에서 신도들이 용담정으로 모여들어 불과 1년이 되지 않아 수만의 신도가 운집하였다. 그러나 나라에서는 이를 ‘이단지도(異端之道)’라 하여 ‘좌도난정(左道難正)’이라는 죄명으로 그를 참형에 처하였다. 그 뒤 제자들이 그의 유해를 거두어 구미산 기슭에 안장하였으나 역적의 연고지로 지명된 이곳은 상당기간 황폐하게 방치되었다. 그러던 중 1968년 4월 현지에 있는 교인들의 성금으로 정화되기 시작한 이곳을 천도교 중앙 총부에서 직접 관할하게 되었고, 1974년 구미산 일대가 경주 국립 공원권에 편입됨에 따라 본격적인 성역화운동이 전개되었다. 1975년 2월 천도교는 구미 용단 성역화 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거교적인 사업으로 용담정, 포덕문, 용단 정사, 성화문 등을 건립하여 성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이에 따라 천도교에서는 가정리를 중심으로 한 일대에서 천도교의 지상천국을 의미하는 궁을촌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무첨당
물봉골 남향받이 언덕에 자리한 여강 이씨들의 대종가는 안채와 별당채, 사당채로 이루어지는데 무첨당은 바로 별당 건물이다. 보통 별당은 살림채 안쪽에 외부인의 눈에 잘 띄지 않고 접근이 어려운 곳에 두게 마련인데 무첨당은 살림채 입구에 있고 규모도 커서 별당이라기 보다는 큰 사랑채 격이다.
무첨당의 오른쪽 건물군이 안채이며, 뒤편 언덕 위에 있는 것이 사당이다. 무첨당은 16세기초에 건립되었으며, 회재의 본가였다. 보물 제411호이다.
*관가정
우재가 분가하여 살던 집이다. 마을 입새 첫 번째 산등성이에 자리했으면서도 같은 구릉에 있는 향단에 비해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마루에서 볼 수 있는 경관은 마을 안의 살림집 가운데 가장 멀리 트여 있다.
익공계 건물이면서 대들보를 자연스런 곡선재를 사용해 대공 없이 바로 종도리를 받는 이색적인 구조를 보인다. 소박한 인상의 건물이다. 집에는 역시 사람이 살아야 되는지 빈 채로 관리도 허술한 관가정을 돌아보면 윤기가 가신 얼굴을 대하듯 면구스럽다. 보물 제442호이다.
*향단
회재가 경산감사로 재직할 때 지은 건물이다. 그가 전임하면서 동생인 농재 이언괄에게 물려주어 농재의 후손들이 살게 됨으로써 여강 이씨 향단파의 파종가가 되었다.
일반 상류주택과는 많이 다른 특이한 평면구성을 하고 있다. 몸채를 月자형으로 하고 여기에 一자형 행랑채와 칸막이를 둠으로써 전체 평면은 用자형을 이룬다. 굳이 이렇게 복잡한 평면구조를 택하는 이유는 풍수사상 때문이다. 用자가 日자와 月자가 합쳐진 모양이기 때문에 하늘의 해와 달을 지상에 있게 함으로써 생기를 북돋워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부귀공명을 주리게 된다는 것이다.
집의 전체적 분위기가 사대부들이 지향하는 검박함과는 상당히 거리가 잇다. 마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과시적 입지, 정면에서 보나 측면에서 보나 3개의 박공면 혹은 합각면이 강하게 드러나는 특이하고 표현적인 외관, 주택의 일반적인 격식을 과감히 변형한 대담서, 행랑채까지도 두리기둥을 사용할 정도의 고급스러움 등등이 그런 느낌을 자아내는 요소들이다. 보물 제412호이다.
8. 부처바위
보리사를 나와 갯마을에서 경주 시내의 반월성 쪽으로 약 400m 떨어진 곳에 탑골이 있다. 탑골 마을에서 개울을 거슬러 약 300m들어가면 불무사가 있다. 이 일대는 통일신라시대에 신인사란 절이 있던 곳이다. 불무사 대웅전 뒤쪽 높이 9m, 둘레가 30m쯤 되는 큰 바위에 유례없이 다양한 조각들이 있다. 조각 가운데에는 탑이 있고 불상이 있고 승려가 있는가 하면 비천상, 사자상이 있다. 무려 30여점에 달하는 여러 형상이 한 바위에 새겨져 있어 무척 놀랍다.
이를 부처바위라 부르는데 바위 하나에 불교세계의 모든 형상, 곧 사방정토와 속인의 수양을 함께 새겨 놓았다. 뿐만 아니라 바위에 새겨진 조각의 모습은 신라 때 있었으나 지금은 알 길이 없는 것, 예컨데 목조 탑의 형태를 알 수 있는 근거도 제공하고 있다.
이 바위는 북면, 동면, 서면의 삼면을 이루고 있으며 남면은 언덕으로 되어 있다. 북면은 바위의 정면으로 가장 높은데 높이 9m, 폭은 5.7m이다. 동면은 가장 화려한 극락세계가 표현된 바위면으로 전체 폭이 13m 정도 되는데, 바위면이 세 면으로 갈라져 있어 편의상 북쪽부터 첫째면, 둘째면, 셋째면으로 부른다. 동면에서 가장 높은 첫째면은 높이가 약 10m 쯤 되는데, 언덕 위쪽인 셋째면은 4m 정도밖에 안 된다. 서면은 면적이 좁아 석불좌상과 비천상 하나만 조각돼 있다. 남면은 흙으로 덮인 언덕이라 언덕으로 솟은 부분만 2.7m 정도 된다.
전체적으로 보아 바위가 그늘진 곳에 있기 때문에 이끼가 끼어 있고 여름철이면 습기가 심해 형체를 파악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오랜 풍상으로 마멸이 더욱 심해지고 있어 무척 안타깝다. 보물 제201호로 지정돼 있다.
9. 용담정
*용담성지(龍潭聖地)
천도교의 성지.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의 탄생지로, 무극대도를 한울님으로부터 받아 포덕을 시작한 천도교의 발상지이며, 대구에서 처형당한 교조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현재 행정구역상으로는 경상북도 경주군 견곡면 가정리이다. 경주시에서 서쪽으로 약 12킬로미터에 가정리가 있고 그 앞산이 바로 구미산이며, 그 산 계곡에 용담정이 있다.
*용담정
용담정은 도학으로 이름 높았던 최제우의 아버지 최옥이 나이 60이 넘도록 자식이 없어 구미산 계곡에서 시를 읊조리며 소일하던 곳이다. 최옥은 나이 63세 되던 해 한씨를 세번째 부인으로 맞아 1824년 10월 28일 최제우를 낳았다. 태어나던 날 구미산이 3일간 크게 진동하였다고 한다. 용담에서 난 최제우는 장년이 되어 제세안민(濟世安民)의 도를 찾고자 10여년간 전국을 순회하다가 가산만 탕진하고 뜻을 이루지 못하자, 착잡한 심경으로 다시 용담정으로 돌아와 각도에 전념하였다. 그러던 중 1860년 4월 5일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이라는 한울님의 계시를 받아 무극대도를 이루었다. 그는 <용담가>를 지어 이 득도의 과정과 내용을 서술하였는데, <용담가>라는 가사의 명칭은 용담정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리고 포덕을 행한 곳곳에서 신도들이 용담정으로 모여들어 불과 1년이 되지 않아 수만의 신도가 운집하였다. 그러나 나라에서는 이를 ‘이단지도(異端之道)’라 하여 ‘좌도난정(左道難正)’이라는 죄명으로 그를 참형에 처하였다. 그 뒤 제자들이 그의 유해를 거두어 구미산 기슭에 안장하였으나 역적의 연고지로 지명된 이곳은 상당기간 황폐하게 방치되었다. 그러던 중 1968년 4월 현지에 있는 교인들의 성금으로 정화되기 시작한 이곳을 천도교 중앙 총부에서 직접 관할하게 되었고, 1974년 구미산 일대가 경주 국립 공원권에 편입됨에 따라 본격적인 성역화운동이 전개되었다. 1975년 2월 천도교는 구미 용단 성역화 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거교적인 사업으로 용담정, 포덕문, 용단 정사, 성화문 등을 건립하여 성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이에 따라 천도교에서는 가정리를 중심으로 한 일대에서 천도교의 지상천국을 의미하는 궁을촌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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