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학] 범선시대의 함선의 특성과 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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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범선의 정의와 특성
가. 범선시대
나. 범선이란?
다. 돛(sail)의 발전
라. 범선의 분류
마. 범선의 운용

2. 범선의 발달

3. 범선시대의 전술

4. 범선시대의 의의

본문내용

, 브리그, 스쿠너 등은 소규모 전투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범선시대의 기타 함형에는 화선과 폭탄선 또는 구포선 그리고 오늘날 지원함으로 불리는 함형의 선조 등이 있습니다. 목선에게 있어 해상에서의 화재는 항상 위험했는데 노선시대에 그리스 화약은 약 2세기 동안이나 두려운 무기였습니다. 범선시대의 화선은 많은 해군 무기계 중의 하나가 되었으며, 범선시대 초기에 일부 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화선은 낡은 상선이나 인화물질을 실은 소형군함으로 기간요원만을 이용하여 적선에 나란히 붙인 다음 불을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중요한 함형은 폭탄선 또는 구포선으로써 함포로 요새를 공격하려 할 때 고각을 올리기 어려운 점을 극복할 수 있도록 고안한 것입니다. 초기 폭탄선은 고정고각의 구포를 탑재하여 고각을 조정하기 위해 함선이 기동을 해야 했으나 18세기 초에는 구포를 회전판 위에 두고 고각을 조정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3. 범선시대의 전술
범선시대의 해전에서 전술은 함포의 개발과 관련이 깊습니다. 1520년경 전장식의 함포가 개발전후로 하여 해전술이 매우 달랐는데 전장식 함포가 개발되기전까지 해전에서 주요 전술은 백병전과 충각전술이었습니다. 백병전은 아함과 적함을 서로 맞붙여놓고 적선에 기어올라 해병이 육탄전으로 싸우는 전술을 의미하고 충각전술은 적함을 아함의 충각으로 들이받아 침몰시키는 전술을 의미합니다. 14세기 초부터 해상에서 함포를 사용하였지만 (이때 함포의 대부분은 소구경이었고 함의 상갑판과 탑에 설치되었으며 함수에 대구경포 1~2문을 두어 적선을 공격하고자 해병이 옮겨 탈 때 이를 돕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1520년경에 전장식의 함포가 개발후 비로소 함포가 주력무기가 되었고 해상의 전술도 백병전에서 함포전으로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기본적인 전술은 양측 함대가 수백 야드 거리를 두고 일렬로 나란히 항진(종렬진 - 종렬진에서는 적 함대가 함수 전방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측에 나란히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분명히 현측에 함포를 탑재한 함선에게 최상의 방식이었지만 중요한 단점 역시 있었으니 소형함이 적의 대형함과 마주보고 교전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투대열에 포함되는”함선은 충분한 전투능력을 갖춘 것이어야 했으며 소형함들은 “전투대열에서 제외”되었습니다)하며 현측포를 사용해 일제사격을 가하는 것이었습니다. 공격하는 함대가 풍상측으로부터 바람을 등지고 접근했는데, 이는 보다 선택의 여지가 많았기 때문에 통상 이점으로 인식되며 기다리기보다 공격한다는 군사적 이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풍하측의 함대는 접근하는 함대에 일제사격을 가하거나 도망하여 교전을 회피하는 두 가지 선택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전술을 사용할 때 불리한 측이 회피할 수 있었기 때문에 거의 결전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비해 공격함대가 2:1의 수적 우세를 점하기 위해서 상대 함대에 대해 집중이나 급회전 등의 다양한 기동을 시도하는 혼전전술이 있었습니다. 또 하나의 전술로는 한 함대가 상대의 전열사이를 뚫고 지나가는 전열돌파가 있었습니다. 이 전술은 ‘T자 전술’로 알려진 바 한 함대가 모든 포를 쏠수 있는데 반해 반대측은 제한된 삼수포만 사격이 가능한 전술로 발전되었습니다. 이는 전술의 명칭이 암시하듯이 혼전상황에서는 통제가 어려웠습니다.
함정운용 전술이외에도 함포운용에 따라서 해상에서 매우 다른 결과를 가져 오기도 하였습니다. 영국과 프랑스간의 해전중에 영국은 선체에 사격을 가하는 반면 프랑스는 돛 장치에 사격을 가했었는데 돛이 부서지면 바람으로 가는 범선은 꼼짝 못하게 되고 목재 범선의 경우 함포사격으로 침몰되는 일이 거의 없었으므로 프랑스가 매우 유리하게 전쟁을 이끌어 나갈수 있게 되었습니다.
4. 범선시대의 의의
범선시대는 군함의 설계 면에서나 세계사적인 측면에서나 중요한 시대였습니다. 1200년부터 1400년경까지 5천년 동안이나 지속되어온 선박건조 방식의 소위 목판이음식이 마침내 용골식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이로 인해 대형함 건조가 가능해졌으며, 한 학자에 따르면 인류 기술발달사 중 바퀴와 불의 발견에 비견되는바 전장범선이 개발되었다. 이러한 비유는 약간 과장되긴 했지만 대항해시대를 열고, 1850년까지 200년 동안이나 역사상 주류를 이루었던 대형 전열함의 개발로 이어지는 중요한 단계였다. 이 시대에 또 다른 중요한 함선 설계상의 변화가 있었다. 북부의 중첩식 클링커방식이 맞이음식 카라벨방식으로 변화한 것이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1400년경 키가 개발되었고, 이어서 1600년경 조타장치가 개발된 것이었다. 비교적 짧은 기간동안 선박건조 방식에 있어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던 것이다.
초기의 범선 군함은 상선을 개조한 것이었지만 1500년경 포문의 발명과 그 후 3층의 대형 위용함 개발로 전열함의 등장이 가까워졌다. 1650년경 70~100문의 함포를 탑재한 장대한 전열함의 건조가 시작되어 1850년까지 주력을 이루었다. 이들 전열함이 주요 해전을 치렀지만 이와 동등하게 중요했던 거은 소형 프리깃과 더욱 소형의 슬룹, 코르벳, 브리그 등이었다. 이들은 제국 전반에 거쳐 매일 매일의 작전을 수행했다.
비록 인사에 관한 깊이 있는 연구는 본서의 범주를 벗어나지만 몇 가지 사항은 언급할만하다 범선에서의 생활환경은 좁은 노선 보다는 나았지만 여전히 힘든 것이었다. 수백 명이 좁은 갑판에서 생활했으며 그물침대 위에서 잤다. 그러나 17세기나 18세기의 육상에서의 생활환경도 그다지 나은 편은 아니었다. 함선은 깡패들을 선원으로 사용하고 사회의 바닥인생들을 지휘하는 엄격하고 폭군적인 지휘관이 매질을 하는 지상에 널리 알려진 이미지와는 달리 대부분의 선원은 자원한 사람이었고 대부분의 장교들은 훈련뿐만 아니라 높은 사기도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는 또한 마한 제독이 적절하게 설명했듯이 해양력이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시대였다. 15세기 초 대항해시대 탐험으로부터 시작하여 유럽의 열강들은 해양력에 의해서만이 건설하고 유지할 수 있는 광범위한 제국과 식민지를 건설했다. 식민지는 대형 전장범선이 없었다면 발견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는 진정 해양력의 황금기였다.

키워드

범선,   시대,   함선,   특성,   전술,   해양,   이순신,   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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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3.24
  • 저작시기2007.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0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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