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사상] 단오의 현대적 의의와 발전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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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유학사상] 단오의 현대적 의의와 발전방향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序論
가. 歲時風俗
나. 歲時風俗의 形成要因
다. 歲時風俗의 重要性
라. 歲時風俗의 하나, 端午

Ⅱ. 本論
가. 端午의 起源
나. 端午의 風俗과 意味
1. 菖蒲
2. 益母草와 쑥
3. 天中符籍
4. 艾虎
5. 端午扇
6. 대추나무 시집보내기
7. 端午節 風俗의 意味
다. 端午의 놀이
1. 江陵端午祭
2. 탈춤
3. 그네뛰기
4. 씨름
라. 端午의 現代的 價値
마 西洋文化의 擴散
바. 端午의 世界化 摸索

Ⅲ. 結論

[참고문헌 및 Web Site]

본문내용

일으켜 공동사회의식을 고조시키게 된다.
그렇다면 단오굿은 단순히 귀신들을 불러 놓고 복을 비는 것에 불과한 것일까? 단결력과 공동체의식을 위한 것에 지나지 않았을까? 여기서, 귀신을 믿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러한 행위를 있게 만든 사상의 문제이다.
앞 절에서 살펴봤듯이 조상들은 하늘로부터 받은 본성을 좇아 성실함을 다하여 천인합일을 이루어 인간이 만물 변화의 중심이 되고자 하였다. 그런데 개인이 天命을 따라 살아가는 과정 속에는 무수한 욕망이 존재하며, 욕망(欲)은 仁의 실천을 방해한다. 다른 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흔들리게 되면 인간 사이의 관계가 어긋나게 되고 하늘로부터 내려 받은 성품이 흐려지게 되며 그것은 결국 순리에 어긋나는 것이므로 惡한 것이 된다. 따라서 자신의 욕망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해주는 수양의 과정과 상호간의 규율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禮이다.
禮는 인간 상호간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따라서 집단에 따라 그 형식을 달리한다. 서양에서는 악수를 하며 동양에서는 절을 하는 것과 같이 자연적역사적 배경에 따라 외견상 확연히 구별된다. 따라서 우리 조상이 갖춘 형식 속에는 그들만의 사상이 스며있다. 뒤집어 말하면, 농경문화를 배경으로한 집단 속에서, 상호 관계를 맺고 살아오며 이루어진 공통된 목표에 관한 공감대가 바로 儀式 속에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단오굿은 단순히 기복적인 행사가 아니라 궁극적인 天命을 따르는데 방해가 되는 욕망에 대한 공동적 규율의 한 형태였으며 그 행위를 통해 公共의 道德律을 공감한 것이다.
2. 탈춤
단오 때에 놀던 탈춤으로는 해서, 즉 황해도 일대에서 전해져 온 강령봉산은율탈춤이 있다. 우리 탈춤 속에서는 시민사회의 생활 속에 살아있는 사회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데, 조선조 후기의 판소리와 더불어 이룩된 오늘의 탈춤은 우리의 독특한 연극형태라 할 것이다.
① 鳳山탈춤 - 중요무형문화재 제 17호
황해도 전역에서 놀던 해서탈춤의 대표격으로, 5일장이 서던 거의 모든 장터에서 탈꾼 들을 초청하여 1년에 한 번씩은 놀았다고 하며, 조선 말 이래로 단오절 밤 모닥불을 피워 놓고 새벽까지 연희되었다고 한다.
단오는 중부 이북지방에서 남부의 추석과 맞먹는 명절로서 시계적으로 이때가 모내기 직전의 忙中閑의 시기이며, 단오의 명절놀이로서 邪와 祈年의 행사로서 또 夏至의 축제로서 민속적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② 康翎탈춤 - 중요무형문화재 제 34호
황해도 옹진군 부민면 강령리에서 전해오던 탈놀이로, 황해도 다른 지방의 탈놀이와 마찬가지로 5월 단오놀이로 놀아왔으며 1920년대에 이르러 점차 쇠퇴일로를 걷다가 중 단되고 말았다. 1938년 10월에 上京하여 부민관에서 공연한 바 있으나 호응을 얻지 못 하고, 광복 후 1948년과 1950년에도 공연을 가졌으나 본고장에서의 전승은 끊기고 말 았다.
지금의 강령탈춤은 옛놀이꾼으로 625이후 월남한 오인관(1901~1971)이 중심이 되어 1969년에 복원된 것이다.
춤은 느린 춤사위로, 긴 장삼소매를 고개 너머로 휘두르는 동작의 춤을 추는데 이것을 ‘장삼춤’이라 부르며, 탈춤은 모두 8과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③ 殷栗탈춤 - 중요무형문화재 제 61호
단오 때 2~3일 계속해서 놀았고 4월 초파일이나 7월 백중놀이로도 놀았다. 은율군수 나 유지들의 초청으로 놀기도 하였으나 단오놀이가 중심이었으며, 낮에는 씨름과 그네 뛰기 대회가 열리고 밤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탈놀이를 하였다. 이 탈춤의 유래는 지금으로부터 약 2~300년 전 난리를 피해 섬으로 갔던 사람들이 섬에서 나오면서 얼굴을가리기 위해 탈을 쓴데서 비롯되었다는 막연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은율탈춤은 놀이과정의 순서나 내용에 있어 봉산탈춤보다는 강령탈춤에 가깝고 모두 6 과장으로 되어있다.
3. 그네뛰기
단오절의 놀이로는 그네뛰기와 씨름이 있다. 그네뛰기가 여자들만의 놀이라면 씨름은 남자들의 놀이로서 단오절에 쌍벽을 이루는 대표적인 민속놀이이다.
그네뛰기 그네는 짚을 굵고 단단하게 꼰 동아줄이나 밧줄을 고목의 가로로 뻗은 큰 나뭇가지에 매거나 또는 두 개의 기둥을 높이 세우고 그 위에 가로로 댄 나무에 줄의 양끝을 매어 그네를 만든다. 부녀들의 외출이 억제되었던 옛날에도 이 날만은 부녀자들끼리 모여 그네 뛰는 것이 허용되었으니, 일년 내내 억눌렸던 몸과 마음을 활짝 펴 볼 수 있는 즐거운 놀이가 아닐 수 없다.
부녀자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길게 매어 놓은 그네에 올라 옷고름과 치마폭을 바람에 날리며 하늘로 치솟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기도 하며 여자로서는 대단한 스릴을 느낄 수 있는 행동적인 놀이이다.
그네뛰기는 그네가 높이 올라갈수록 잘 뛰는 것이 된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이 등뒤에서 밀어주기도 하지만 다음에는 그네를 뛰는 본인이 내려올 때 무릎을 굽혀 두 발로 발판을 힘껏 밀어내듯 구르며 오르는데, 이는 무릎 힘과 허리힘이 좋아야 한다.
그네는 차츰차츰 높이 올라가다가 나중에는 고목의 나뭇잎에 치맛자락이 닿으면 밑에서는 환성을 지르며 흥이 절정에 이른다. 이럴 때에 그 마을 총각들은 멀리서 숲 사이로 오르내리는 처녀들의 그네 타는 모습을 보고 마음 조리며 경우에 따라서는 남녀가 만나게 되는 동기가 되기도 한다. 옛 소설 ‘춘향전’에서도 남원 부사 아들 이도령이 그네 타던 춘향이와 만나 사랑을 하게 되었으니, 규방처녀를 함부로 볼 수 없었던 옛날이야 그네뛰기는 더욱 사랑의 낭만과 직결되는 매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 그네뛰기는 남쪽보다 북쪽으로 갈수록 성행했다고 하는데 지금도 단오절이 되면 강릉으로 넘어가는 강원도의 산골 마을마다 큰 고목에 그네 줄을 매고 여자들이 나와 그네 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네뛰기에 대해서는 우리의 민요에도 나오고 춘향전에도 그 구절이 나오는데,
송백수야 푸른가지
높드란케 추천매고
임이타면 내가 밀고
내가타면 임이 밀고
어화청춘 벗님네야
삼진벽해를 웃지마소
연지가락이 뉘없을 손가
서산에 지는 해는
양고사로 잡아먹고
동영에 걸린 달은
계수에서 머물러라
아니놀고 무엇을 할거나
한없이 거드렁거리고
놀아보세
-민요집 中
한번굴러 힘을주며
두 번굴러 힘을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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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3.29
  • 저작시기20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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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0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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