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2. 성균관의 역사
3. 성균관의 풍수적 특징
4. 성균관 주변 지형
5. 결론
※참고문헌
2. 성균관의 역사
3. 성균관의 풍수적 특징
4. 성균관 주변 지형
5.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니다.
4. 성균관 주변 지형
성균관의 위치는 서울에서 보면 좌청룡에 해당하는 위치이지만 성균관 자체에서 살펴보면 성균관의 좌청룡은 낙산, 우백호는 창경궁이 됩니다. 주산은 저의 짧은 지식으로는 정확히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뒤편 북악산의 맥 중 하나가 아닌가 합니다.
성균관의 뒤편에는 서울의 주산인 북악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풍수에서의 주산은 혈처의 바람을 막아주고 혈을 맺게되는 중출룡(中出龍)을 내보냅니다. 주산은 중출룡을 내보내면서 양쪽으로 팔을벌리듯 개장하여 방룡에 해당하는 청룡(靑龍)과 백호(白虎)를 만들어냅니다. 따라서 주산(主山)은 청룡, 백호, 안산의 주인격이고, 안산 뒤의 조산에 대해서도 군신(君臣)과 주객(主客)의 관계가 되어 서로 균형과 조화를 이뤄야 혈의 생기를 순화시켜 진혈처(眞穴處)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북한산에서 출발하는 주룡을 북악스카이웨이쪽을 따라 진행하다가 북악산 직전에서 동쪽으로 방룡(傍龍) 한 가지를 분지하는데, 이 것이 바로 한양의 청룡지세이며 성균관의 지세를 이루는 응봉과 낙산 지맥입니다.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 뒷산에 있는 응봉(鷹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말로 매봉이라 하는 응봉은 사나운 매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그 기상에는 난폭한 기가 흐르고 있기 때문에 육식을 하는 매를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짐승잡는 것을 주업으로 하는 백정(白丁)을 옮겨 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백정들을 이 곳 성 밖으로 강제 이주시켜 난폭한 기를 압승(壓勝)케 함으로써 왕궁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백정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공자(孔子)를 모시는 성균관 가까운 곳에 백정이 많이 모이게 하는 것은 옳은 일이 되지 못한다 하여 백정을 다른 곳으로 옮기게 하였으며, 대신 육고기를 산제(山祭)에 올려 매를 달랬다고 합니다.
<좌청룡인 낙산에서 찍은 사진. 정면에 보이는 산이 북한산>
지금 성균관 뒤편에 있는 산은 와룡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성균관 대학교 인문사회학부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와룡은 한자로 臥龍이라고 쓰는데 이는 용이 누웠다는 뜻입니다. 성균관의 뒤편에 있는 산은 북한산으로 그 형상이 용이 누워있는 것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와룡공원 자락은 풍수지리 상 용의 꼬리에 해당하는 곳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왕이 거주했던 경복궁은 용의 머리에 해당하고 이에 대비되는 신권의 상징인 성균관을 용의 꼬리에 해당하는 이 근처에 위치시켜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이루게 했다는 것입니다.
5. 결론
풍수적으로 보면 성균관이 위치한 곳은 사대문안에서 가장 아늑한 느낌을 주는 곳으로 북악산의 맥이 동쪽으로 휘감아 동대문으로 떨어지는 길목에 위치해 있습니다. 주산은 북악산의 일맥인데, 북악산이 살기(殺氣)가 강한 반면 이 곳은 부드러운 기운을 띠고 있다고 합니다. 또 산중턱이나 품이 넓고 양명(陽明)한 기운이 가득 차 공부하기에 좋은 풍수상의 길지(吉地)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성균관은 태조 이성계가 한양 천도후 '산이 그치고 땅이 넓어 물이 둘러 흐르는 남향의 자리'인 수도의 동북쪽 언덕에 학교부지를 골라 정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현재 서쪽에는 성균관대학교가 자리잡고 있고 주변은 주택과 빌딩으로 둘러싸여 옛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없는 것은 아쉬움을 남게 합니다.
※참고문헌
이규경 “오주연문장전산고” 2005, 民族文化推進會
장영훈 “서울 풍수” 2004, 담디
이지호 “성균관과 문묘” 2001, 두레
종교신문 “明人倫-成人才의 최고관학 조선조 500년 통치이념 창출” -2002/08/29
Google Earth veta 4
4. 성균관 주변 지형
성균관의 위치는 서울에서 보면 좌청룡에 해당하는 위치이지만 성균관 자체에서 살펴보면 성균관의 좌청룡은 낙산, 우백호는 창경궁이 됩니다. 주산은 저의 짧은 지식으로는 정확히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뒤편 북악산의 맥 중 하나가 아닌가 합니다.
성균관의 뒤편에는 서울의 주산인 북악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풍수에서의 주산은 혈처의 바람을 막아주고 혈을 맺게되는 중출룡(中出龍)을 내보냅니다. 주산은 중출룡을 내보내면서 양쪽으로 팔을벌리듯 개장하여 방룡에 해당하는 청룡(靑龍)과 백호(白虎)를 만들어냅니다. 따라서 주산(主山)은 청룡, 백호, 안산의 주인격이고, 안산 뒤의 조산에 대해서도 군신(君臣)과 주객(主客)의 관계가 되어 서로 균형과 조화를 이뤄야 혈의 생기를 순화시켜 진혈처(眞穴處)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북한산에서 출발하는 주룡을 북악스카이웨이쪽을 따라 진행하다가 북악산 직전에서 동쪽으로 방룡(傍龍) 한 가지를 분지하는데, 이 것이 바로 한양의 청룡지세이며 성균관의 지세를 이루는 응봉과 낙산 지맥입니다.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 뒷산에 있는 응봉(鷹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말로 매봉이라 하는 응봉은 사나운 매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그 기상에는 난폭한 기가 흐르고 있기 때문에 육식을 하는 매를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짐승잡는 것을 주업으로 하는 백정(白丁)을 옮겨 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백정들을 이 곳 성 밖으로 강제 이주시켜 난폭한 기를 압승(壓勝)케 함으로써 왕궁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백정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공자(孔子)를 모시는 성균관 가까운 곳에 백정이 많이 모이게 하는 것은 옳은 일이 되지 못한다 하여 백정을 다른 곳으로 옮기게 하였으며, 대신 육고기를 산제(山祭)에 올려 매를 달랬다고 합니다.
<좌청룡인 낙산에서 찍은 사진. 정면에 보이는 산이 북한산>
지금 성균관 뒤편에 있는 산은 와룡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성균관 대학교 인문사회학부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와룡은 한자로 臥龍이라고 쓰는데 이는 용이 누웠다는 뜻입니다. 성균관의 뒤편에 있는 산은 북한산으로 그 형상이 용이 누워있는 것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와룡공원 자락은 풍수지리 상 용의 꼬리에 해당하는 곳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왕이 거주했던 경복궁은 용의 머리에 해당하고 이에 대비되는 신권의 상징인 성균관을 용의 꼬리에 해당하는 이 근처에 위치시켜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이루게 했다는 것입니다.
5. 결론
풍수적으로 보면 성균관이 위치한 곳은 사대문안에서 가장 아늑한 느낌을 주는 곳으로 북악산의 맥이 동쪽으로 휘감아 동대문으로 떨어지는 길목에 위치해 있습니다. 주산은 북악산의 일맥인데, 북악산이 살기(殺氣)가 강한 반면 이 곳은 부드러운 기운을 띠고 있다고 합니다. 또 산중턱이나 품이 넓고 양명(陽明)한 기운이 가득 차 공부하기에 좋은 풍수상의 길지(吉地)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성균관은 태조 이성계가 한양 천도후 '산이 그치고 땅이 넓어 물이 둘러 흐르는 남향의 자리'인 수도의 동북쪽 언덕에 학교부지를 골라 정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현재 서쪽에는 성균관대학교가 자리잡고 있고 주변은 주택과 빌딩으로 둘러싸여 옛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없는 것은 아쉬움을 남게 합니다.
※참고문헌
이규경 “오주연문장전산고” 2005, 民族文化推進會
장영훈 “서울 풍수” 2004, 담디
이지호 “성균관과 문묘” 2001, 두레
종교신문 “明人倫-成人才의 최고관학 조선조 500년 통치이념 창출” -2002/08/29
Google Earth veta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