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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는 가톨릭교회에 대한 두려움과 세상의 비웃음을 겁내 발표를 미뤘고, 이 원고는 여러 사람을 거쳐 그가 죽어가고 있을 무렵 Andreas Hosemann. 독일의 신학자로서 1543년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의 저서 〈행성들의 회전들에 관한 책 6권 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 libri Ⅵ〉에 순전히 가설임을 전제로 코페르니쿠스의 이론들을 소개하는 서론을 써서 펴냄
안드레아스 오지안더를 통해 빛을 보았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는 스스로 돌면서 태양 주위를 1년에 한번 도는 한 행성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고, 지구의 움직임에 대하여 대기권 안의 모든 것은 지구와 함께 돈다고 주장했다. 프톨레마이오스에 비해 코페르니쿠스는 행성이론들의 공통점을 알았고, 이것을 하나의 체계로 만들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의 몇 가지 주장들은 비판을 받고 있다. 그는 프톨레마이오스를 따라 행성의 불규칙한 운동을 여러 원들의 결합에 의해 설명하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지구와 태양의 몫을 바꾼 것을 빼놓고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과 프톨레마이오스의 수학을 그대로 썼다. 또한 그는 모든 천체가 원운동 한다는 플라톤 이래의 원칙에 집착했고, 우주가 천체들이 붙어 있는 투명한 수정구들로 겹겹이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더욱이 그는 원운동에 매달렸다. 이러한 점은 그를 보수주의자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코페르니쿠스의 영향은 천문학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중세의 우주관과 그것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을 밑둥부터 무너지게 하였다.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고, 인간은 그 위에 사는 가장 존엄한 존재였는데, 이제 인간은 여러 행성들 가운데서도 비교적 작은 별에 거꾸로 매달려 돌아가는 존재임이 드러났다. 인간은 우주 안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다시 생각해야 했으며, 부질없는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 이렇게 해서 중세 체제는 차츰 깨어지고 근대로 넘어오게 되었으니, 코페르니쿠스야말로 이 변화의 첫 신호를 울린 사람이었던 것이다.
티코 브라헤는 코페르니쿠스체계의 수학적인 간결성에 호감을 가졌으나, 그것이 물리학적으로 불합리하고 성서와 맞지 않는다고 해서 거부했다. 그렇다고 그가 프톨레마이오스체계에 만족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제3의 체계를 만들었다. 티코체계에 따르면, 행성들은 태양의 주의를 돌고, 다시 태양은 행성들을 거느리고 지구의 주위를 돈다. 이것은 코페르니쿠스와 프톨레마이오스의 절충체계였는데 이것이 결국 프톨레마이오스에서 코페르니쿠스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구실을 함으로써 천문학혁명에 이바지했다.
<참고 문헌>
존 허드슨 타이너. {어둠과 무지를 몰아낸 백명의 과학자}. 미토, 2003
손영운. {청소년을 위한 서양과학사}. 두리미디어, 2004
<참고 사이트>
http://blog.naver.com/idiotprayer?Redirect=Log&logNo=10007082026
http://kin.naver.com/db/detail.php?d1id=11&dir_id=110107&eid=EbZQ7GUDmNpc29gTLpnkyVjxP0M2lUx1&qb=udm6p8W+IMD8vLM=
http://krdic.naver.com/search.nhn?dic_where=krdic&kind=all&query=%ED%82%A4%EB%8B%88%EC%BD%94%EC%8A%A4%ED%95%99%ED%8C%8C&query_euckr=&query_utf=
http://cafe.naver.com/skjapan.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23
http://tong.nate.com/kimbkimb/36644371
안드레아스 오지안더를 통해 빛을 보았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는 스스로 돌면서 태양 주위를 1년에 한번 도는 한 행성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고, 지구의 움직임에 대하여 대기권 안의 모든 것은 지구와 함께 돈다고 주장했다. 프톨레마이오스에 비해 코페르니쿠스는 행성이론들의 공통점을 알았고, 이것을 하나의 체계로 만들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의 몇 가지 주장들은 비판을 받고 있다. 그는 프톨레마이오스를 따라 행성의 불규칙한 운동을 여러 원들의 결합에 의해 설명하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지구와 태양의 몫을 바꾼 것을 빼놓고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과 프톨레마이오스의 수학을 그대로 썼다. 또한 그는 모든 천체가 원운동 한다는 플라톤 이래의 원칙에 집착했고, 우주가 천체들이 붙어 있는 투명한 수정구들로 겹겹이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더욱이 그는 원운동에 매달렸다. 이러한 점은 그를 보수주의자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코페르니쿠스의 영향은 천문학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중세의 우주관과 그것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을 밑둥부터 무너지게 하였다.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고, 인간은 그 위에 사는 가장 존엄한 존재였는데, 이제 인간은 여러 행성들 가운데서도 비교적 작은 별에 거꾸로 매달려 돌아가는 존재임이 드러났다. 인간은 우주 안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다시 생각해야 했으며, 부질없는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 이렇게 해서 중세 체제는 차츰 깨어지고 근대로 넘어오게 되었으니, 코페르니쿠스야말로 이 변화의 첫 신호를 울린 사람이었던 것이다.
티코 브라헤는 코페르니쿠스체계의 수학적인 간결성에 호감을 가졌으나, 그것이 물리학적으로 불합리하고 성서와 맞지 않는다고 해서 거부했다. 그렇다고 그가 프톨레마이오스체계에 만족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제3의 체계를 만들었다. 티코체계에 따르면, 행성들은 태양의 주의를 돌고, 다시 태양은 행성들을 거느리고 지구의 주위를 돈다. 이것은 코페르니쿠스와 프톨레마이오스의 절충체계였는데 이것이 결국 프톨레마이오스에서 코페르니쿠스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구실을 함으로써 천문학혁명에 이바지했다.
<참고 문헌>
존 허드슨 타이너. {어둠과 무지를 몰아낸 백명의 과학자}. 미토, 2003
손영운. {청소년을 위한 서양과학사}. 두리미디어, 2004
<참고 사이트>
http://blog.naver.com/idiotprayer?Redirect=Log&logNo=10007082026
http://kin.naver.com/db/detail.php?d1id=11&dir_id=110107&eid=EbZQ7GUDmNpc29gTLpnkyVjxP0M2lUx1&qb=udm6p8W+IMD8vLM=
http://krdic.naver.com/search.nhn?dic_where=krdic&kind=all&query=%ED%82%A4%EB%8B%88%EC%BD%94%EC%8A%A4%ED%95%99%ED%8C%8C&query_euckr=&query_ut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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