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지역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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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 관

2. 연 혁

3. 답사일정

4. 답사 내용

5. 답사후기

본문내용

나 바람이 불 때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기능이 보강되었다.
그런데 1877년(고종 14) 광한루 본관이 차츰 북쪽으로 기울어지자 부사 이용준이 건물 보수에 고심할 때 수지면 고평리에 사는 추대목이 북쪽에 누각을 오르는 계단을 만들되 본관과 같이 크고 아름답게 설치하여 오히려 화려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현관은 우연하게도 우리나라 누각에 최초의 현관이 되었는데, 이전까지는 누각의 높이에 따라 오르내리는 사다리만 설치하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인 1910년부터 18년 동안 일본인들이 문화말살 정책에 따라 누각 마루 위는 재판소로, 누각 마루 밑은 감옥으로 사용되었으며, 이때 재판소와 감옥을 만들었던 아픈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재판소가 지금의 자리로 옮긴 후 강대형, 이하덕 등 지역 유지들의 주도하에 대대적인 보수작업이 이루어 졌다.
누각 정면의 현판은 동양위 신익성의 글씨이며, 신익성은 선조임금의 사위이자 상촌 신흠의 아들이며 신감부사의 조카이기도 하다.
광한루의 전, 후면에는 [호남제일루], [계관],[광한루]란 현액이 걸려 있는데. 호남제일루는 말 그대로 호남에서 제일 가는 루각이라는 뜻이며 광한과 청허부는 하늘나라 월궁의 궁전 이름이며 광한 청허지부란 신화적 전설을 상징하고 계관은 달나라의 계수나무 신궁을 상징한다.
월랑은 상하 2층으로 되어 있는데 하층은 5단, 상층 5단의 층층 계단이 있고 양측 난간에는 칸살을 설치하였으며 현관 옥상의 자그마한 지붕은 본관의 높고 큰 지붕과 조화를 이루어 누각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해준다.
기단은 막돌바른층 쌓기의 낮은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그 위에 원형의 돌기둥을 세우고 2층 나루부분에는 나무기둥을 세웠으며 2층 누마루 주위에는 계자난간을 둘렀고 기둥 사이에는 모두 분합문의 들창을 달아 사방이 모두 개방되게 하여 북쪽으로 교룡산, 남쪽으로 금암봉이, 멀리는 지리산 노고단과 반야봉이 보인다.
기둥 위에는 주두를 얹고 기둥머리부터 소혀바닥 모양을 하나 내고 위에 행공첨차를 놓아 외 출목을 구성하고 다시 위에 우설을 내어 이익공과 비슷한 주심포 건물을 만들었으며 창방과 주심도리 사이에는 화반을 끼웠다.
가구는 칠량으로 대들보를 전면의 평주와 내진의 평주위에 걸고 보위에 동자 주를 세워 종량을 받치며 종량위에 조각된 일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천장은 연등천장으로 연목 및 부연이 있는 겹처마이고 건물 네귀의 춘설에는 활주를 받쳤다.
누의 뒷쪽에는 익랑식으로 월랑이라는 누에 오르는 층계를 만들었고 그 구조는 익공식으로 창방위에 코끼리와 자라 등에 탄 토끼 등 동물모양의 화반을 놓았고 누의 동쪽으로 연달아 낸 익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루로 1795년에 마련되엇다고 하는데 3면에는 퇴로를 둘러 개방하였고 그 안쪽으로 정면 2칸, 측면 1칸의 온돌방을 두었고 마루 밑에는 온돌방용 아궁이와 굴뚝이 사방으로 쌓은 고막이 벽체에 나있다. 남원지 및 증보 남원지 등에는 1925년 보수공사때 만들어진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판단하기가 어렵다.
5. 답사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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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5.15
  • 저작시기2004.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09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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