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타-죽음의 초월과 완벽한 결합
본 자료는 2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해당 자료는 2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2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본문내용

는 어머니의 모습을 탈피한 것만으로도 엄청난 혁명이었을 것이나, 그렇게 ‘죽은 예수’ 를 무릎 위에 눕혀놓은 모습에서 벗어나 예수의 어깨 사이로 팔을 넣고 일으키기 시작한다. 허벅지를 맞대고, 뺨을 맞대고, 그를 품에 끌어안는다.
‘부활한 예수’와 ‘성모’의, ‘성스럽고도 완벽한 결합’으로 인해 ‘모든 ‘모든’ 이라는 말을 쓰기는 했으나 그 구체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설명할 자신이 수강자에게는 없다. 다만 ‘모든’ 이라는 말의 의미는 ‘전체’ 가 아닌 ‘ 총체’ 의 느낌을 지니고 사용했다는 정도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것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미켈란젤로의 작품에서는 예수와 성모가 서먹한 사이로, 그들이 친근감 있게 표현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 점에서 미켈란젤로가 예수와 성모의 성스러운 결합과 같은 신비주의 사상에 심취했다고 해석했다고 보는 것은 확실히 위험한 일이다.
이것이 미켈란젤로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의 인생을 설명할 - 혹은 그의 모든 작품세계를 설명할 무엇인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 점에서 미완성으로 남은 론다니니의 피에타는 미켈란젤로가 몇 번이나 만들었던 피에타의 완성이자, 미켈란젤로 작품세계의 완성 - 더 나아가 미켈란젤로 그토록 갈망했던, 인생의 완성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론다니니의 피에타를 보며 예수와 성모의 결합을 떠올린 것은 워낙 완성의 이미지가 강해서였다. 권능으로 사람들을 벌하는 예수와 자비로 사람들을 구원하는 성모의 이미지는 어울리기 힘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피에타에서는 그 대조감이 크지 않았다. 미켈란젤로의 대표작 중 하나인 최후의 심판을 보면 성모는 예수 뒤에서 움츠리고 있는 것에 비하면 이 역시 큰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는 어떤 면에서는 당연한데, 아무리 자비와 보호의 상징으로 사람들을 구원하는 성모라고는 하나 심판의 날에 다가와서는 그 어떤 능력도 행사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로 나타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론다니니의 피에타에서는 모든 이야기가 달라진 것 같다. 아름다운 균형과 완전한 기법은 모두 사라지고 절절한 간구만이 남아 있다. 분명히 이 피에타는 무르익던 르네상스 시대가 가고, 종교개혁과 반 종교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생을 마감하던 미켈란젤로가 구원을 갈구하던 참 모습일 것이다. 권능의 상징인 부활한 예수와 자비의 상징인 성모의 결합은 그가 꿈꾸던 구원, 바로 그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키워드

  • 가격800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7.07.02
  • 저작시기2007.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18427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