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개 론
Ⅰ. 주거의 의미와 기능
1. 주거의 의미
2. “주거”의 언어적 해석
주거의 역사
Ⅰ. 원시주거 (原始住居)
1) 구석기 시대
2) 신석기 시대
3) 청동기 시대
4) 철 기 시 대
5) 원시시대 한국의 주거 유형
Ⅱ. 삼국시대 (三國時代) : 고대 국가의 형성
1) 고구려 시대
2) 백 제 시 대
3) 고신라(古新羅) 시대
Ⅲ. 통일신라시대 (統一新羅時代)
1) 시대적 특성
2) 주 거 《삼국사기(三國史記)》옥사조(屋舍條) - 권(券) 제33 잡지(雜志) 제2
Ⅳ. 발해시대 (渤海時代)
Ⅴ. 고려시대 (高麗時代)
1. 귀족주거의 발달
2. 고려시대 주택의 형태와 공간
3. 온돌과 마루의 결합
4. 풍수사상의 전래와 적용
Ⅵ. 조선시대 (朝鮮時代)
1.민가의 형식구분
◎ 조선전기(14세기-16세기)의 주거문화
1.주거계층의 재편성
2.성리학적 생활문화와 사대부 주거
◎ 조선중기(16세기-18세기) 이후의 주거문화 / 씨족마을의 번성
1. 씨족마을의 형성과 입지환경
2. 씨족마을의 공간구성
3. 사대부 주거의 개별적 전개
Ⅰ. 주거의 의미와 기능
1. 주거의 의미
2. “주거”의 언어적 해석
주거의 역사
Ⅰ. 원시주거 (原始住居)
1) 구석기 시대
2) 신석기 시대
3) 청동기 시대
4) 철 기 시 대
5) 원시시대 한국의 주거 유형
Ⅱ. 삼국시대 (三國時代) : 고대 국가의 형성
1) 고구려 시대
2) 백 제 시 대
3) 고신라(古新羅) 시대
Ⅲ. 통일신라시대 (統一新羅時代)
1) 시대적 특성
2) 주 거 《삼국사기(三國史記)》옥사조(屋舍條) - 권(券) 제33 잡지(雜志) 제2
Ⅳ. 발해시대 (渤海時代)
Ⅴ. 고려시대 (高麗時代)
1. 귀족주거의 발달
2. 고려시대 주택의 형태와 공간
3. 온돌과 마루의 결합
4. 풍수사상의 전래와 적용
Ⅵ. 조선시대 (朝鮮時代)
1.민가의 형식구분
◎ 조선전기(14세기-16세기)의 주거문화
1.주거계층의 재편성
2.성리학적 생활문화와 사대부 주거
◎ 조선중기(16세기-18세기) 이후의 주거문화 / 씨족마을의 번성
1. 씨족마을의 형성과 입지환경
2. 씨족마을의 공간구성
3. 사대부 주거의 개별적 전개
본문내용
을의 예
/ 직계손에 의한 가계 + 제사의 계승 + 적장자를 우대하는 상속제도가 일반화
→ 씨족마을이 형성되기 시작
2. 씨족마을의 공간구성
1) 씨족마을에서의 분파과정
씨족마을은 마을을 개창한 입향조로부터 시작된다.
종법제가 확립된 이후, 가계는 적장자(嫡長子)로 계승 → 집 또한 적장자의 후손으로 승계
딸 - 시집으로 출가하여 출가외인(出嫁外人)
차남 이하의 아들 - 분가(分家)하여 독립된 주거 / 거처할 가옥과 토지를 부모로부터 물려받음 → ∴ 대개 같은 마을에 입지 → 동성동본의 씨족마을 형성
근촌분파(近村分派) - 마을터의 한계로 자손들을 수용하기 어려운 경우 가까운 곳에 거처를
정하여 새로운 마을을 만듦 → 기존 마을과의 연대감 유지
같은 마을이라는 인식 - 마을 이름, 도로 구조, 마을 내부의 주택배치에도 균형
주거의 독립이 가족의 분리를 의미하지는 않음.
분가보다는 ‘세간낸다’ 또는 ‘살림낸다’의 표현이 더 흔하게 사용
분가 이후에도 본가(本家)와 분파가, 각 분파가 사이에는 가족관계 또는 친족관계가 유지 -
협력적 생산, 자녀교육, 공동조상의 제사, 제실의 건립, 문회의 개최, 족보의 간행 등 / 친족간의
혈연적 유대를 유지함으로써 생활공동체를 이룸
2) 씨족마을의 주거배치
친족간의 위계(位階) - 종가와 파가의 배치관계에 투영
대종가는 마을입구에서 가장 안쪽에 있는 주산에 가깝게 위치
- 풍수적 위계 : 조산(朝山)-안산(案山)-혈(穴)-명당(明堂)-진산(鎭山) 등
지형상으로도 가장 높은 곳 or 지형에 따라서는 마을의 중심과 주변의 위계관계 (지손(支孫)들의 주거는 종가보다 바깥쪽으로, 보다 낮은 쪽으로, 보다 주변으로 확산)
씨족마을 - 동성동본의 친족들 + 외거노비의 주거(가랍집, 호지집) + 소작인들의 주거(마을의
입구 근처 or 마을 중심에서 먼 외주(外周)부에 집단적인 영을 차지 / ‘아랫마을’ 혹은 ‘바깥마을’
등의 용어를 사용)
조선시대 씨족마을의 공간구성 - 성리학적 사회질서와 생활문화를 반영
조상숭배와 가례를 중시하는 생활규범 + 사대부들의 농민지배 + 부계친 중심의 친족체계와 위계
+ 친족의 혈연적, 지연적 유대와 결속 + 유교적 교육과 생활문화 등
3. 사대부 주거의 개별적 전개
조선중기 이후 / 사대부들의 주거 - 규범적 형식에서 벗어나 개성을 추구
지역과 계층의 규범적 형식을 골간 + 개인적 취향이나 요구를 반영 (개별적 변형)
주로 사랑채에서 나타남 - 16세기 이후 / 종법질서의 확립 & 성리학적 생활문화의 정착 →
가장권(家長權) 강화 & 주거 내에서 가장(家長)의 역할 증대 → 사랑채 영역의 확대 & 기능 분화
1) 사랑채의 확대
조선 전기 까지 / 사랑채 - 손님 접대하는 작은 부속건물에 불과
ex) 양동의 손동만 가옥(서백당) -사랑은 본채의 모퉁이, 1칸의 방과 마루(小)
내외법(內外法)의 정착 → 안채와 격리된 가장(家長)의 공간 필요
조선 중기 이후 / 士大夫家 / 사랑채 안에 넓은 사랑대청이 수용
사랑대청 : 가장의 여름철 기거공간 + 접객 & 제사를 치루는 의례공간 (공공적 성격)
家廟 건립의 일반화 이후 -사랑 / 제례의 중심장소로서 많은 사람을 수용할 필요 발생
사랑채의 확대 ← 사랑공간의 기능 분화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작은 사랑방 - 결혼한 아들이 있을 경우 거처하는 공간
감실 or 빈소방 등 - 제례와 관련된 공간이 수용
시중드는 하인을 위해 수청방( or 복직이방, 청지기방)이 설치
규모가 클 경우, 겹집화 되기도 함
겹집 : 칸의 배열을 두 줄로 만든 것 /같은 건물길이에서 홑집보다 두 배의 공간 수용
건물의 규모 확대 + 마당을 포함한 사랑채 영역이 독립화해 가는 경향도 볼 수 있음
2) 권위적 장식성의 추구
사랑채의 형태적 차별화
① 건물고 - 건물고를 높이기 위해(장중한 모습)서는 기단을 보다 높게 쌓고,
누하주를 두어 바닥을 들어 올리기도 한다.
② 지붕 - 보통 팔작지붕으로 하여 독립된 건물처럼 보이게 하는 수법을 사용
사랑채에 누정(樓亭)을 둠 - 일반적 경향
장중한 외관의 표현 + 넓은 시야를 제공
하인의 행위를 감독 + 마당에서 올려다 보는 시각적 효과 (우러러 봄)
누정과 더불어 조원수법 발달 - 근경이나 원경을 넓게 조망하기 위해
사랑채의 장식성 - 가장의 권위와 품격을 표현하는 수단
사랑채의 기둥 - 대부분 두리기둥(圓柱) /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원리
- 남자의 상징인 양(陽), 양의 상징인 하늘의 상을 취함
기둥머리 - 익공장식, 화반대공, 충량, 외기반자, 계자난간 등을 가설(내부장식)
대청과 방 사이 - 불발기 창 + 겹창(밖여닫이-세살창/소박함, 안미닫이-고급문양의
살창/아름다움을 표현)
대청 - 사분합의 들어열기창 / 사대부가의 품격
3) 별당형 사랑채의 발달
별당형 사랑채 발달 - 조선중기 이후 사대부가의 개별적 성격을 보여주는 시대적 특징
사랑채의 기능 분화 & 확대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임
제사, 학문, 접객, 수양 등의 복합적 기능을 수용하게 되자 → 공간상의 한계 → 수용
하기 어렵거나 보다 독립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기존의 사랑채와는 별도의 별당의 건립
별당의 기능을 분류 - 제실형, 서재형, 누정형으로 분류 가능
조선후기 / 조원 + 정자의 형태 → 더욱 자유분방
참 고 문 헌
- 박언곤. 『한국건축사강론』 문운당, 1998
- 이왕기, 『고대 한국, 중국 건축관계사 연구(Ⅰ)』, 건축역사연구 4, 한국건축역사학회, 1993
- 이왕기, 『고대 한국, 중국 건축관계사 연구(Ⅱ)』, 건축역사연구 5, 한국건축역사학회, 1994
- 고고학연구소. 『조선의 구석기 시대』 1977
- 대한건축학회, 『한국 건축사』, 1996, pp36-38.
- 장경호, 『우리나라의 난방시설인 온돌(구들) 형성에 대한 연구』, 고고미술 165호, 1958,
한국미술사학회
- 이기백, 『한국사 신론(개정판)』, 일조각, 1985.
- 송기호. 『발해를 찾아서』, 솔 출판사, 1993.
- 김동현. 『한국목조건축의 기법』. 발언. 1995.
- 장경호. 『한국의 전통건축』. 문예출판사. 1994.
- 이화선, 『조선 건축사』, 발언, 1993.
/ 직계손에 의한 가계 + 제사의 계승 + 적장자를 우대하는 상속제도가 일반화
→ 씨족마을이 형성되기 시작
2. 씨족마을의 공간구성
1) 씨족마을에서의 분파과정
씨족마을은 마을을 개창한 입향조로부터 시작된다.
종법제가 확립된 이후, 가계는 적장자(嫡長子)로 계승 → 집 또한 적장자의 후손으로 승계
딸 - 시집으로 출가하여 출가외인(出嫁外人)
차남 이하의 아들 - 분가(分家)하여 독립된 주거 / 거처할 가옥과 토지를 부모로부터 물려받음 → ∴ 대개 같은 마을에 입지 → 동성동본의 씨족마을 형성
근촌분파(近村分派) - 마을터의 한계로 자손들을 수용하기 어려운 경우 가까운 곳에 거처를
정하여 새로운 마을을 만듦 → 기존 마을과의 연대감 유지
같은 마을이라는 인식 - 마을 이름, 도로 구조, 마을 내부의 주택배치에도 균형
주거의 독립이 가족의 분리를 의미하지는 않음.
분가보다는 ‘세간낸다’ 또는 ‘살림낸다’의 표현이 더 흔하게 사용
분가 이후에도 본가(本家)와 분파가, 각 분파가 사이에는 가족관계 또는 친족관계가 유지 -
협력적 생산, 자녀교육, 공동조상의 제사, 제실의 건립, 문회의 개최, 족보의 간행 등 / 친족간의
혈연적 유대를 유지함으로써 생활공동체를 이룸
2) 씨족마을의 주거배치
친족간의 위계(位階) - 종가와 파가의 배치관계에 투영
대종가는 마을입구에서 가장 안쪽에 있는 주산에 가깝게 위치
- 풍수적 위계 : 조산(朝山)-안산(案山)-혈(穴)-명당(明堂)-진산(鎭山) 등
지형상으로도 가장 높은 곳 or 지형에 따라서는 마을의 중심과 주변의 위계관계 (지손(支孫)들의 주거는 종가보다 바깥쪽으로, 보다 낮은 쪽으로, 보다 주변으로 확산)
씨족마을 - 동성동본의 친족들 + 외거노비의 주거(가랍집, 호지집) + 소작인들의 주거(마을의
입구 근처 or 마을 중심에서 먼 외주(外周)부에 집단적인 영을 차지 / ‘아랫마을’ 혹은 ‘바깥마을’
등의 용어를 사용)
조선시대 씨족마을의 공간구성 - 성리학적 사회질서와 생활문화를 반영
조상숭배와 가례를 중시하는 생활규범 + 사대부들의 농민지배 + 부계친 중심의 친족체계와 위계
+ 친족의 혈연적, 지연적 유대와 결속 + 유교적 교육과 생활문화 등
3. 사대부 주거의 개별적 전개
조선중기 이후 / 사대부들의 주거 - 규범적 형식에서 벗어나 개성을 추구
지역과 계층의 규범적 형식을 골간 + 개인적 취향이나 요구를 반영 (개별적 변형)
주로 사랑채에서 나타남 - 16세기 이후 / 종법질서의 확립 & 성리학적 생활문화의 정착 →
가장권(家長權) 강화 & 주거 내에서 가장(家長)의 역할 증대 → 사랑채 영역의 확대 & 기능 분화
1) 사랑채의 확대
조선 전기 까지 / 사랑채 - 손님 접대하는 작은 부속건물에 불과
ex) 양동의 손동만 가옥(서백당) -사랑은 본채의 모퉁이, 1칸의 방과 마루(小)
내외법(內外法)의 정착 → 안채와 격리된 가장(家長)의 공간 필요
조선 중기 이후 / 士大夫家 / 사랑채 안에 넓은 사랑대청이 수용
사랑대청 : 가장의 여름철 기거공간 + 접객 & 제사를 치루는 의례공간 (공공적 성격)
家廟 건립의 일반화 이후 -사랑 / 제례의 중심장소로서 많은 사람을 수용할 필요 발생
사랑채의 확대 ← 사랑공간의 기능 분화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작은 사랑방 - 결혼한 아들이 있을 경우 거처하는 공간
감실 or 빈소방 등 - 제례와 관련된 공간이 수용
시중드는 하인을 위해 수청방( or 복직이방, 청지기방)이 설치
규모가 클 경우, 겹집화 되기도 함
겹집 : 칸의 배열을 두 줄로 만든 것 /같은 건물길이에서 홑집보다 두 배의 공간 수용
건물의 규모 확대 + 마당을 포함한 사랑채 영역이 독립화해 가는 경향도 볼 수 있음
2) 권위적 장식성의 추구
사랑채의 형태적 차별화
① 건물고 - 건물고를 높이기 위해(장중한 모습)서는 기단을 보다 높게 쌓고,
누하주를 두어 바닥을 들어 올리기도 한다.
② 지붕 - 보통 팔작지붕으로 하여 독립된 건물처럼 보이게 하는 수법을 사용
사랑채에 누정(樓亭)을 둠 - 일반적 경향
장중한 외관의 표현 + 넓은 시야를 제공
하인의 행위를 감독 + 마당에서 올려다 보는 시각적 효과 (우러러 봄)
누정과 더불어 조원수법 발달 - 근경이나 원경을 넓게 조망하기 위해
사랑채의 장식성 - 가장의 권위와 품격을 표현하는 수단
사랑채의 기둥 - 대부분 두리기둥(圓柱) /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원리
- 남자의 상징인 양(陽), 양의 상징인 하늘의 상을 취함
기둥머리 - 익공장식, 화반대공, 충량, 외기반자, 계자난간 등을 가설(내부장식)
대청과 방 사이 - 불발기 창 + 겹창(밖여닫이-세살창/소박함, 안미닫이-고급문양의
살창/아름다움을 표현)
대청 - 사분합의 들어열기창 / 사대부가의 품격
3) 별당형 사랑채의 발달
별당형 사랑채 발달 - 조선중기 이후 사대부가의 개별적 성격을 보여주는 시대적 특징
사랑채의 기능 분화 & 확대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임
제사, 학문, 접객, 수양 등의 복합적 기능을 수용하게 되자 → 공간상의 한계 → 수용
하기 어렵거나 보다 독립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기존의 사랑채와는 별도의 별당의 건립
별당의 기능을 분류 - 제실형, 서재형, 누정형으로 분류 가능
조선후기 / 조원 + 정자의 형태 → 더욱 자유분방
참 고 문 헌
- 박언곤. 『한국건축사강론』 문운당, 1998
- 이왕기, 『고대 한국, 중국 건축관계사 연구(Ⅰ)』, 건축역사연구 4, 한국건축역사학회, 1993
- 이왕기, 『고대 한국, 중국 건축관계사 연구(Ⅱ)』, 건축역사연구 5, 한국건축역사학회, 1994
- 고고학연구소. 『조선의 구석기 시대』 1977
- 대한건축학회, 『한국 건축사』, 1996, pp36-38.
- 장경호, 『우리나라의 난방시설인 온돌(구들) 형성에 대한 연구』, 고고미술 165호, 1958,
한국미술사학회
- 이기백, 『한국사 신론(개정판)』, 일조각, 1985.
- 송기호. 『발해를 찾아서』, 솔 출판사, 1993.
- 김동현. 『한국목조건축의 기법』. 발언. 1995.
- 장경호. 『한국의 전통건축』. 문예출판사. 1994.
- 이화선, 『조선 건축사』, 발언,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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