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걸어라(유인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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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쉬게 하지 않았다. 어차피 죽으면 썩어 없어질 몸이라고 생각해 천하게 다루었다. 상처가 나면 ‘에이, 그냥 피 나다 말겠지. 내 몸아, 스스로 견뎌내라’ 며 그냥 방치했고, 내 입에 비싼 음식이 들어갈 때는 왠지 모를 죄의식을 가졌다. 이처럼 항상 ‘가난한 마음’을 가지고 살면서 몸이 힘들어하는 것을 애써 무시했다. 그렇게 50년 넘게 구박과 천대를 받으면서 꿋꿋하게 나와 함께 이 험한 세상을 헤치고 살아온 내 몸, 이제 고마워하고 사랑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하루의 걷기를 마치고 목욕탕에서 나는 내 몸을 진정으로 살펴보게 되었다. 지금껏 묵묵히 견뎌온 내 몸에게 감사하고 진짜 아끼며 사랑해야 할 주체는 바로 나 자신이었다. 사실 다른 운동을 하면서는 내 몸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 적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걷는 동안 순수한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어떤 때는 내 심장이 뜨거운 삶을 갈망하듯 힘차게 뛰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다. 나는 걷고 또 걸으면서 내 몸과 대화를 나눈 것이다.
워크홀릭 여섯, 끝까지 걷는다 해남에서 광화문까지
한 걸음 한 걸음 밟으며 보는 모습
일본대 객원연구원으로 일본에 머무는 8개월 동안 나는 걷는 동안 생활 곳곳에서 발견되는 일본 문화의 속살을 또렷한 이성의 눈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일본은 가끔 여행하면서 마주치는 모습과 살면서 알게 되는 모습이 달랐다. 또 스쳐 지나가며 보는 모습과 한 걸음 한 걸음 밟으며 보는 모습이 완전히 달랐다. 걸어서 일본을 보기 전에는 나는 물 위에 떠 있는 기름처럼 겉도는 존재에 불과했다. 그러나 날마다 걸어다니며 그들 삶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자 날것 그대로의 속살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일본 사람들의 정체성을 선뜻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여러 곳의 마쯔리(축제)를 보고 일본 사람들의 정체성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마쯔리는 동네 사람들이 모두 참여해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며 정리까지 한다. 그리고 마쯔리에는 동네 사람 누구나 예외 없이 참가해야 한다. 똑같은 구호를 외치면서 협동심을 고취시키고 공동체 의식을 키운다. 마쯔리를 보자 내 몸에 전율이 일었다.평상시에는 모래알처럼 흩어진 철저한 개인주의자들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을 묶는 것은 마쯔리에서 본 것과 같은 단합된 공동체 의식이다. 나는 도쿄를 비롯한 시내 곳곳을 걸으며 일본 문화를 바라보았지만 머릿속에는 항상 우리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단순한 비교가 아니라 우리의 문화를 발전시키는 방법과 방향을 찾기 위해 일본의 문화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나의 걷기, 샘솟는 아이디어
내가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정말 놀란 것은 일본 사회 전체가 철저한 계획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다. 나는 그 계획형 체제 때문에 좌절을 겪은 일이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겨울 스포츠는 스키다. 일본의 설 질은 정말 좋다. 그래서 일본에 올 때 주말이면 마음껏 스키를 탈 수 있겠다며 즐거워했다. 1월 중순 즈음, 일본 생활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 주말에 스키를 타러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모든 스키장마다 3월까지 예약이 끝나 있었다. 일본 사람들은 최소한 3개월 전에 예약을 하고, 예약 취소도 거의 없다고 했다. 사람 사는 세상이 어떻게 그렇게 계획에 따라서만 움직일 수 있는가 하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정말 한국적인 생각이었을 뿐이었다.
사실 우리 사회는 ‘빨리빨리’와 ‘즉흥성’이 특징이다. 나는 우리나라에 있을 때 이런 것들을 수없이 비판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걸어서 어학원에 가는데 문득 역발상이 떠올랐다. 우리의 ‘빨리빨리’와 ‘즉흥성’을 일본 사람들은 역동적이라는 측면에서 오히려 긍정적으로 보고 있지 않은가. 우리의 ‘빨리빨리’를 고칠 필요는 없다. ‘빨리빨리’에 숨어 있는 긍정적인 힘을 이끌어내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우리 스스로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뒤집어 장점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더 현명하고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이제 일본에서 걷기를 즐기는 것도 거의 끝나간다. 내가 끊임없이 걸었던 길의 끝에는 일본의 문화가 있었다. 일본 문화보다 발전시켜야 할 우리 문화를 만난 셈이다. 이제는 우리 땅에서 걸어야겠다.
끝까지 걷는다 해남에서 광화문까지
일본을 걸으면 걸을수록, 일본을 새롭게 보면 볼수록 우리 땅에 대한 그리움이 점점 깊어졌다. 내가 태어난 땅을 구석구석 밟으며 우리의 정체성이 과연 무엇인지 진하게 느끼고 싶었다. 걸어서 우리나라를 종단해보고 싶었다.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지도를 보면서 최남단 해남에서부터 최북단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걷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해남에서 고성까지는 어림잡아 600킬로미터. 굽이굽이 돌아가면 800킬로미터는 족히 될 것이다. 과연 날마다 40~50킬로미터를 걸으며 20일 이상 갈 수 있을까. 괜히 중도에 포기해 웃음거리가 되는 건 아닐까. 마음은 간절했지만 두려움이 앞서 일단 서울의 곳곳을 걷는 것으로 생각을 바꿀 즈음, 한 후배가 도쿄를 방문했다. 그에게 우리 땅을 걷고 싶다는 희망을 이야기하자 그는 바로 함께 하겠다고 했다.
나는 우리 땅을 걸으며 우리 문화의 뿌리,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조금이나마 느껴보고 싶어서 해남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해남이 우리나라 땅끝마을이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욕심 같아서는 문학의 배경이 되었던 곳, 드라마 촬영지, 문화예술인이 살았던 곳 등 빠짐없이 다 들러보고 싶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찍으니 걸어가야 할 길이 대충은 나왔다. 해남~강진~장흥~보성~벌교~순천~승주~괴목~구례~남원~함양~거창~무주~영동 … 서울 광화문.
코스를 결정하고 나자 하루하루 마음이 설렌다.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큰 순례에서 나는 발길 닿는 것 모두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마음을 열고 우리 문화를 느끼고 싶다. 걷다 보니 ‘보는 것만큼 알게 된다’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걸으면서 보는 일은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온몸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하찮은 것이라도 또 다른 의미를 생각하게 되고 비록 알고 있는 것일지라도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 길에서 과연 무엇과 마주하고 무엇을 느낄지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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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9.15
  • 저작시기2007.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28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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