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서 론
Ⅱ본 론
1.연개소문의 출생과 성장
2.구테타 그리고 정권 장악
3.연개소문의 대당정책 그리고 당과의 전쟁
4.연개소문의 죽음과 고구려 멸망
Ⅲ결 론
Ⅳ참고자료
Ⅱ본 론
1.연개소문의 출생과 성장
2.구테타 그리고 정권 장악
3.연개소문의 대당정책 그리고 당과의 전쟁
4.연개소문의 죽음과 고구려 멸망
Ⅲ결 론
Ⅳ참고자료
본문내용
번째로 손꼽히는 당 태종을 패배시키고 또한 그의 아들인 고종 역시 패배시키는 전과를 이루어 냈다. 이것은 대국에게 승리했다는 민족적 자긍심과도 연관된다. 그런데 여-당 전쟁의 승리는 ― 당시 연개소문이 전쟁을 총괄적으로 지휘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 단지 연개소문의 탁월한 전술력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연개소문이 고구려 민들은 하나로 결집시키는 능력이 있었고, 이는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커다란 역할을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의 사후 얼마 후 고구려가 멸망한 것은 그의 이러한 능력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대당전쟁의 승리 그 속에는 당과 맞서 싸운 용감한 고구려 민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적의 침략에 대한 그들의 피와 땀의 투쟁은 연개소문이라는 훌륭한 지도자의 그늘에 가려져 간과되고 있는 듯하여 안타깝다.
마지막으로 고구려의 멸망의 원인을 이야기 할 때에 이것이 연개소문의 책임과 관련이 있는가라는 문제에서 그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의 사후 이후에도 고구려가 지속되지 못한 것을 그의 책임으로 전가하려는 것은 연개소문에 대한 지나친 바람이 아니었을까. 분명 고구려는 당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였으나 전쟁을 수행하면서 국토가 황폐해졌고 따라서 민들의 생활 또한 피폐해졌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그의 죽음은 고구려의 구심점을 상실케 함으로써, 고구려사회를 동요시킬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의 자리를 맏아들 남생에게 계승토록 하였는데, 당의 첩자들로 추측되는 자들이 형제들을 이간질 시켜 결국 그들을 분열시켰다. 이러한 사회상황과 당의 계책으로 인한 아들간의 분열, 불신은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국내적인 상황 때문만이 아니라 국외적인 상황의 결합으로 이루어 진 것으로, 단순히 국내적인 분열 즉 형제간의 분열로만 해석함으로써 그 비난의 화살이 연개소문에게 까지 미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연개소문이 당과 전쟁을 수행함으로써 고구려의 멸망을 막아왔고 앞으로도 그래줄 것이라는 기대심리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적어도 그는 생존할 당시 대외적인 전쟁을 훌륭히 수행한 지도자였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거기에서 그의 역할을 끝내야한다. 그래도 세 아들의 분열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면 만약 그에게 아들이 하나밖에 없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나 이것도 그의 사후에 어떤 변수가 작용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세 아들의 분열 또한 그러한 변수- 당의 이간질 - 가 작용한 것이다.
그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이렇게 관점이 엇갈리고 있는 것은 그에 대한 사료나 기록들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것은 또한 그에 대한 관심의 반영으로 그는 매력적인 연구대상임에는 틀림없다. 지금의 한정된 기록과 사료를 가지고 그의 성격을 규정짓기에는 한계가 있다. 보다 사료가 풍부해지는 그 언젠가는 연개소문에 대한 성격의 비밀들이 베일 속에서 벗겨지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 본다.
Ⅳ. 참고자료
박운규 『우리 역사를 움직인 20인의 재상』 미래 M&B 1999
김용만 ,『새로 쓰는 연개소문전』 바다출판사 2003
마지막으로 고구려의 멸망의 원인을 이야기 할 때에 이것이 연개소문의 책임과 관련이 있는가라는 문제에서 그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의 사후 이후에도 고구려가 지속되지 못한 것을 그의 책임으로 전가하려는 것은 연개소문에 대한 지나친 바람이 아니었을까. 분명 고구려는 당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였으나 전쟁을 수행하면서 국토가 황폐해졌고 따라서 민들의 생활 또한 피폐해졌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그의 죽음은 고구려의 구심점을 상실케 함으로써, 고구려사회를 동요시킬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의 자리를 맏아들 남생에게 계승토록 하였는데, 당의 첩자들로 추측되는 자들이 형제들을 이간질 시켜 결국 그들을 분열시켰다. 이러한 사회상황과 당의 계책으로 인한 아들간의 분열, 불신은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국내적인 상황 때문만이 아니라 국외적인 상황의 결합으로 이루어 진 것으로, 단순히 국내적인 분열 즉 형제간의 분열로만 해석함으로써 그 비난의 화살이 연개소문에게 까지 미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연개소문이 당과 전쟁을 수행함으로써 고구려의 멸망을 막아왔고 앞으로도 그래줄 것이라는 기대심리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적어도 그는 생존할 당시 대외적인 전쟁을 훌륭히 수행한 지도자였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거기에서 그의 역할을 끝내야한다. 그래도 세 아들의 분열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면 만약 그에게 아들이 하나밖에 없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나 이것도 그의 사후에 어떤 변수가 작용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세 아들의 분열 또한 그러한 변수- 당의 이간질 - 가 작용한 것이다.
그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이렇게 관점이 엇갈리고 있는 것은 그에 대한 사료나 기록들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것은 또한 그에 대한 관심의 반영으로 그는 매력적인 연구대상임에는 틀림없다. 지금의 한정된 기록과 사료를 가지고 그의 성격을 규정짓기에는 한계가 있다. 보다 사료가 풍부해지는 그 언젠가는 연개소문에 대한 성격의 비밀들이 베일 속에서 벗겨지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 본다.
Ⅳ. 참고자료
박운규 『우리 역사를 움직인 20인의 재상』 미래 M&B 1999
김용만 ,『새로 쓰는 연개소문전』 바다출판사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