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일본서기』의 기사
(2) 『송서』의 기록
(3) 백제 칠지도
(4) 광개토왕 비문
(5) 분국론
(6) 가야의 왜인설
(7) 백제군사령부설
(8) 외교사절설
Ⅲ. 결론
Ⅱ. 본론
(1) 『일본서기』의 기사
(2) 『송서』의 기록
(3) 백제 칠지도
(4) 광개토왕 비문
(5) 분국론
(6) 가야의 왜인설
(7) 백제군사령부설
(8) 외교사절설
Ⅲ. 결론
본문내용
일본부로 표기된 6세기 중엽 야마토의 미코토모치는 왜의 사신이었으며, 임나일본부란 왜에서 가야에 파견된 사신이 그 실체였다. 이제 출선기관설은 일본에서도 더 이상 통설적 위치를 고수할 수 없게 되었다. 중등학교 일본사 교과서나 최근에 검정을 통과한 우익적 일본사 교과서의 기술은 별도로 하더라도, 현재 이러한 학설을 주장하거나 여기에 근거하는 전문연구자는 거의 없다. 임나일본부의 실체에 관해서는 외교사절설을 중심으로 한일 고대사학계의 공통된 견해가 탄생할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강만길 외, 『우리 역사를 의심한다』, (서해문집, 2002), p.40~42
이밖에도 임나일본부설에는 여러 가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첫째, 약 200년간 왜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면 한국측 기록에 조그만 단서라도 남겨져 있을 터인데 그러한 기록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둘째, 왜왕이 가야 지배를 입증 할 만한 유물이나 유적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셋째, 당시 일본열도는 통일정권이 형성되지 못한 채 여러 소국의 분립상태에 놓여 있었으므로 바다를 건너 식민지를 경영할 수 있었겠느냐 하는 의문이며, 고고학적 연구 성과에 따르면 가야는 왜보다 약 반세기 앞선 선진문화를 구축하고 있었는데 왜의 가야지배가 가능하겠는가 하는 의문이다. 한국역사연구회(편), 『보설:임나일본부설 비판』, <한국사 강의>, (한울아카데미, 1994), p,112~113
또한 임나일본부를 유지하려면 대병력의 동원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나룻배를 타고 어찌 수만 명의 군대를 조선으로 실어 나를 수 있겠는가도 의문으로 제기되고 있다. 박성수(편), 『일본교과서의 한국사 왜곡』, (민지사, 1982), p.16
Ⅲ. 결론
이상에서 우리가 도출해낼 수 있는 결론은, 임나설은 결국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들보다 오히려 강력한 군사력과 문화 수준을 지니고 있었던 가야 제국을 기술 노예{로 삼아 철기문화를 도입하여 통일의 전열을 가다듬었다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변설과 함께, 몇 가지 왜곡된 사료들을 편취, 때로는 조작하는 범죄적 무리를 가해 가면서까지 입증해 보이려 했던 한반도에서의 임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홍진희, 『일본은 한국역사를 왜 비뚜로 가르칠까』, (소나무, 1992), p.49~50
그러나 임나에 대한 『일본서기』를 비롯한 많은 기록들은 모두 허구란 말인가? 그것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일본서기』에도 분명 사실의 기록도 담겨 있을 것이다. 문제는 과장과 허구를 약용하는 데 있다. 과장과 허구의 진위를 올바로 가려내서 사실 접근을 위해 노력한다면, 잘못 만들어진 기록조차도 역사의 진실을 가려내는 데 한 몫을 할 것이다.
《참고 문헌》
강만길 외, 『우리 역사를 의심한다』. 서해문집, 2002
김은숙, 『「일본서기」임나기사의 기초적 검토』, 한국사 시민강좌, 11, 1992
김현국, 『임나일본부 연구의 현황과 문제점』, 한국사 시민강좌, 11, 1991
박성수(편), 『일본교과서의 한국사 왜곡』, 민지사, 1982
신형식, 이배용, 『한국사의 새로운 이해』,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97
한국역사연구회(편), 『보설:임나일본부설 비판』, <한국사 강의>, 한울아카데미, 1994
홍진희, 『일본은 학국역사를 왜 비뚜로 가르칠까』, 소나무, 1992
내용출처 : http://www.edunet4u.net
<한국사학입문>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고찰
임나일본부에 대한 고찰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일본서기』의 기사
(2) 『송서』의 기록
(3) 백제 칠지도
(4) 광개토왕 비문
(5) 분국론
(6) 가야의 왜인설
(7) 백제군사령부설
(8) 외교사절설
Ⅲ. 결론
이밖에도 임나일본부설에는 여러 가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첫째, 약 200년간 왜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면 한국측 기록에 조그만 단서라도 남겨져 있을 터인데 그러한 기록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둘째, 왜왕이 가야 지배를 입증 할 만한 유물이나 유적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셋째, 당시 일본열도는 통일정권이 형성되지 못한 채 여러 소국의 분립상태에 놓여 있었으므로 바다를 건너 식민지를 경영할 수 있었겠느냐 하는 의문이며, 고고학적 연구 성과에 따르면 가야는 왜보다 약 반세기 앞선 선진문화를 구축하고 있었는데 왜의 가야지배가 가능하겠는가 하는 의문이다. 한국역사연구회(편), 『보설:임나일본부설 비판』, <한국사 강의>, (한울아카데미, 1994), p,112~113
또한 임나일본부를 유지하려면 대병력의 동원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나룻배를 타고 어찌 수만 명의 군대를 조선으로 실어 나를 수 있겠는가도 의문으로 제기되고 있다. 박성수(편), 『일본교과서의 한국사 왜곡』, (민지사, 1982), p.16
Ⅲ. 결론
이상에서 우리가 도출해낼 수 있는 결론은, 임나설은 결국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들보다 오히려 강력한 군사력과 문화 수준을 지니고 있었던 가야 제국을 기술 노예{로 삼아 철기문화를 도입하여 통일의 전열을 가다듬었다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변설과 함께, 몇 가지 왜곡된 사료들을 편취, 때로는 조작하는 범죄적 무리를 가해 가면서까지 입증해 보이려 했던 한반도에서의 임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홍진희, 『일본은 한국역사를 왜 비뚜로 가르칠까』, (소나무, 1992), p.49~50
그러나 임나에 대한 『일본서기』를 비롯한 많은 기록들은 모두 허구란 말인가? 그것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일본서기』에도 분명 사실의 기록도 담겨 있을 것이다. 문제는 과장과 허구를 약용하는 데 있다. 과장과 허구의 진위를 올바로 가려내서 사실 접근을 위해 노력한다면, 잘못 만들어진 기록조차도 역사의 진실을 가려내는 데 한 몫을 할 것이다.
《참고 문헌》
강만길 외, 『우리 역사를 의심한다』. 서해문집, 2002
김은숙, 『「일본서기」임나기사의 기초적 검토』, 한국사 시민강좌, 11, 1992
김현국, 『임나일본부 연구의 현황과 문제점』, 한국사 시민강좌, 11, 1991
박성수(편), 『일본교과서의 한국사 왜곡』, 민지사, 1982
신형식, 이배용, 『한국사의 새로운 이해』,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97
한국역사연구회(편), 『보설:임나일본부설 비판』, <한국사 강의>, 한울아카데미, 1994
홍진희, 『일본은 학국역사를 왜 비뚜로 가르칠까』, 소나무, 1992
내용출처 : http://www.edunet4u.net
<한국사학입문>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고찰
임나일본부에 대한 고찰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일본서기』의 기사
(2) 『송서』의 기록
(3) 백제 칠지도
(4) 광개토왕 비문
(5) 분국론
(6) 가야의 왜인설
(7) 백제군사령부설
(8) 외교사절설
Ⅲ.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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