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머리말
Ⅱ. 빈야드 운동의 기원
Ⅲ. 빈야드 운동의 특성
Ⅳ. 빈야드 운동의 특징과 교리
Ⅴ. 빈야드 운동에 대한 일반적 평가
Ⅵ. 맺음말
Ⅱ. 빈야드 운동의 기원
Ⅲ. 빈야드 운동의 특성
Ⅳ. 빈야드 운동의 특징과 교리
Ⅴ. 빈야드 운동에 대한 일반적 평가
Ⅵ. 맺음말
본문내용
참여하여 찬양하고 경배하는 시간이 많지가 않다. 그러므로 회중은 점차 예배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빈야드 교회의 경우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회중이 예배에 참여하게 된다. 함께 찬양하고 경배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찬양대의 찬양과 회중의 몇 번의 찬양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회중 전체가 단순하지만 깊은 뜻을 가진 가사로 찬양할 기회를 갖는 것
이다.
3)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경험의 시간
전통적인 교회의 경우 이 부분이 매우 약하다고 생각된다. 정해진 시간과 일정한 패턴을 따라 드려지는 예배이기에 시간의 제약을 받게 되고 자유함과 기쁨으로 예배를 드리기 힘든다. 또한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확신이 없이 무미건조한 시간을 보내게 될 경우가 많다. 감격적인 예배를 잃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평가에 대하여 빈야드 교회의 경우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나름대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기쁨과 자유함을 누리며 살아간다. 김현석 “현장에서 본 빈야드 운동,” 목회와 신학, 1995년 6월, 110.
4)그리스도인의 정서를 잘 표현함.
빈야드 교회의 신앙생활은 신앙의 감정적인 면을 풍부하게 표현하게 한다. 정서적인 생활이 부족하고 여러 가지 스트레스 속에서 사는 현대인들의 생각과 감정을 꾸밈없이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빈야드 운동은 인도한다. 정서적인 면이 신앙생활의 전부는 아니지만 이것은 신앙생활의 중요한 부분인 것이다. 조대준, “빈야드 운동”, 392.
B. 전도와 선교에 대한 이해
빈야드 운동에서 중심되는 표어는 “능력 전도”(Power Evangelism)이다. 이것은 John Wimber의 책 제목이기도 하다. 이 용어의 이해를 위해서는 먼저 ‘능력 대결’에 대해 알아야 한다. Wimber는 하나님의 나라와 사탄의 나라의 세력이 서로 충돌하는 것을 ‘능력 대결’이라고 불렀다. 김대관, “존 윔버의 ‘능력전도’에 나타난 치유사역 비판에 대한 고찰”, 고려신학대학원 논문, 1996, 10.
Wimber는 그리스도인들이 전도 현장에서 당면하는 현실을 ‘능력 대결’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능력 대결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냄으로 전도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것을 ‘능력 전도’라고 불렀던 것이다.
물론 예수님과 사도 시대의 이적에 대한 지나친 모방과 모델화는 문제가 있지만, 이 능력전도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 동안 습관적으로 해 왔던 너무 인위적이고 사람의 지혜대로 하는 프로그램 전도에 치중한 사실에 대해 일침을 놓는다. 즉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 사람의 말이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도하고 선교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C. 그리스도 몸 안에서 각 지체의 사역 강조
빈야드 교회는 모든 성도들이 은사를 받았고 또 이 은사를 사용하여 서로를 위하여 사역을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교역자들로부터 일방적으로 받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서로 주고받는 사역을 하도록 강조한다. 교회가 능력 있는 사역을 할 수 있는 것도 교회의 각 지체가 자신들이 받은 은사로 생동력있는 사역을 하기 때문이다. 조대준, “빈야드 운동”, 393.
2. 부정적 평가
A. 직통주의
예언을 통해 계시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빈야드 교회는 직통주의로 흐르기 쉽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는 비성서적인 주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빈야드 운동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데 성경에서 사용하는 모든 수단들을 사용해서 인도하신다고 한다. 환상을 볼 수도 있고 귀로 분명히 들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천사나 예언자의 이야기도 한다. 성경의 예언자처럼 환상을 통해서도 오늘날도 예언을 한다고 주장한다. “빈야드 운동에 대한 분석과 비판,” 월간목회, 1998년 1월, 통권 257호, 5.
빈야드 교회의 직통주의는 나쁜 목적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불의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B. 기사와 이적에 대한 치중
존 맥아더는 빈야드 운동이 지나치게 기사와 이적에 모든 가치를 두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제 3의 물결을 신봉하는 자들은 놀라운 기사와 이적이야말로 자기들이 참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기적적인 현상이 바로 제3의 물결의 핵심적인 신앙이다. 제 3의 물결을 믿는 사람들은 기적, 환상, 방언, 예언 그리고 신유 등이 복음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이런 것들이 없는 기독교는 서구인들을 무기력하고 약하게 타락시킨 물질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이다 John F. McArthur, 「은사(Ⅰ): 예언자인가, 광신자인가, 아니면 이단인가?」생명의 샘 편집위 역(서울: 생명의 샘, 1994), 205.
”라고 하였다.
또한 맥아더는 제 3의 물결의 방법론이 복음의 권능을 왜곡하고 있으며 구원의 메시지를 삭제하거나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비록 그들이 어떻게 온전히 복음화 할 것인가를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구원론과 복음의 정확한 메시지는 그들에게 중요한 관심사가 아니라 단지 기사와 이적의 소란 속에서 복음의 내용은 그들의 관심 밖의 것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도전략은 복음의 메시지를 훼손시키고 있으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에 중점을 두지 않고 기사와 이적에 치중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Ibid., 212-13.
C. 사도적 사역에 대한 모델화와 모방화
빈야드 운동이 표방하는 것은 바로 신약성경에 나타난 이적을 현재에도 그대로 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행한 이적들을 이 시대에도 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난 문제가 되는 것은 그러한 이적들이 지나치게 모델화되고 모방화하려고 하는 데 있다. 이상규, “빈야드 운동,” 17.
우리가 빈야드 교회의 공식적인 신조나 신앙 고백문, 선교 목적 등을 읽어보면 이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의 모토는 ‘예수님과 사도들의 사역을 이 시대에도 재현하자’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사역이 예수님의 사역이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 운동’ 즉 ‘사탄의 세력에 매여 있는 자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가르치고 그들의 병을 고쳐주고 그들을 사로 잡고 있는 귀신들을
그러나 빈야드 교회의 경우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회중이 예배에 참여하게 된다. 함께 찬양하고 경배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찬양대의 찬양과 회중의 몇 번의 찬양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회중 전체가 단순하지만 깊은 뜻을 가진 가사로 찬양할 기회를 갖는 것
이다.
3)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경험의 시간
전통적인 교회의 경우 이 부분이 매우 약하다고 생각된다. 정해진 시간과 일정한 패턴을 따라 드려지는 예배이기에 시간의 제약을 받게 되고 자유함과 기쁨으로 예배를 드리기 힘든다. 또한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확신이 없이 무미건조한 시간을 보내게 될 경우가 많다. 감격적인 예배를 잃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평가에 대하여 빈야드 교회의 경우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나름대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기쁨과 자유함을 누리며 살아간다. 김현석 “현장에서 본 빈야드 운동,” 목회와 신학, 1995년 6월, 110.
4)그리스도인의 정서를 잘 표현함.
빈야드 교회의 신앙생활은 신앙의 감정적인 면을 풍부하게 표현하게 한다. 정서적인 생활이 부족하고 여러 가지 스트레스 속에서 사는 현대인들의 생각과 감정을 꾸밈없이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빈야드 운동은 인도한다. 정서적인 면이 신앙생활의 전부는 아니지만 이것은 신앙생활의 중요한 부분인 것이다. 조대준, “빈야드 운동”, 392.
B. 전도와 선교에 대한 이해
빈야드 운동에서 중심되는 표어는 “능력 전도”(Power Evangelism)이다. 이것은 John Wimber의 책 제목이기도 하다. 이 용어의 이해를 위해서는 먼저 ‘능력 대결’에 대해 알아야 한다. Wimber는 하나님의 나라와 사탄의 나라의 세력이 서로 충돌하는 것을 ‘능력 대결’이라고 불렀다. 김대관, “존 윔버의 ‘능력전도’에 나타난 치유사역 비판에 대한 고찰”, 고려신학대학원 논문, 1996, 10.
Wimber는 그리스도인들이 전도 현장에서 당면하는 현실을 ‘능력 대결’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능력 대결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냄으로 전도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것을 ‘능력 전도’라고 불렀던 것이다.
물론 예수님과 사도 시대의 이적에 대한 지나친 모방과 모델화는 문제가 있지만, 이 능력전도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 동안 습관적으로 해 왔던 너무 인위적이고 사람의 지혜대로 하는 프로그램 전도에 치중한 사실에 대해 일침을 놓는다. 즉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 사람의 말이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도하고 선교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C. 그리스도 몸 안에서 각 지체의 사역 강조
빈야드 교회는 모든 성도들이 은사를 받았고 또 이 은사를 사용하여 서로를 위하여 사역을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교역자들로부터 일방적으로 받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서로 주고받는 사역을 하도록 강조한다. 교회가 능력 있는 사역을 할 수 있는 것도 교회의 각 지체가 자신들이 받은 은사로 생동력있는 사역을 하기 때문이다. 조대준, “빈야드 운동”, 393.
2. 부정적 평가
A. 직통주의
예언을 통해 계시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빈야드 교회는 직통주의로 흐르기 쉽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는 비성서적인 주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빈야드 운동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데 성경에서 사용하는 모든 수단들을 사용해서 인도하신다고 한다. 환상을 볼 수도 있고 귀로 분명히 들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천사나 예언자의 이야기도 한다. 성경의 예언자처럼 환상을 통해서도 오늘날도 예언을 한다고 주장한다. “빈야드 운동에 대한 분석과 비판,” 월간목회, 1998년 1월, 통권 257호, 5.
빈야드 교회의 직통주의는 나쁜 목적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불의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B. 기사와 이적에 대한 치중
존 맥아더는 빈야드 운동이 지나치게 기사와 이적에 모든 가치를 두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제 3의 물결을 신봉하는 자들은 놀라운 기사와 이적이야말로 자기들이 참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기적적인 현상이 바로 제3의 물결의 핵심적인 신앙이다. 제 3의 물결을 믿는 사람들은 기적, 환상, 방언, 예언 그리고 신유 등이 복음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이런 것들이 없는 기독교는 서구인들을 무기력하고 약하게 타락시킨 물질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이다 John F. McArthur, 「은사(Ⅰ): 예언자인가, 광신자인가, 아니면 이단인가?」생명의 샘 편집위 역(서울: 생명의 샘, 1994), 205.
”라고 하였다.
또한 맥아더는 제 3의 물결의 방법론이 복음의 권능을 왜곡하고 있으며 구원의 메시지를 삭제하거나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비록 그들이 어떻게 온전히 복음화 할 것인가를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구원론과 복음의 정확한 메시지는 그들에게 중요한 관심사가 아니라 단지 기사와 이적의 소란 속에서 복음의 내용은 그들의 관심 밖의 것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도전략은 복음의 메시지를 훼손시키고 있으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에 중점을 두지 않고 기사와 이적에 치중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Ibid., 212-13.
C. 사도적 사역에 대한 모델화와 모방화
빈야드 운동이 표방하는 것은 바로 신약성경에 나타난 이적을 현재에도 그대로 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행한 이적들을 이 시대에도 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난 문제가 되는 것은 그러한 이적들이 지나치게 모델화되고 모방화하려고 하는 데 있다. 이상규, “빈야드 운동,” 17.
우리가 빈야드 교회의 공식적인 신조나 신앙 고백문, 선교 목적 등을 읽어보면 이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의 모토는 ‘예수님과 사도들의 사역을 이 시대에도 재현하자’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사역이 예수님의 사역이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 운동’ 즉 ‘사탄의 세력에 매여 있는 자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가르치고 그들의 병을 고쳐주고 그들을 사로 잡고 있는 귀신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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