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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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서론

II. 본론
1. 삼국사기의 편찬동기 및 사관
2. 불신론
3. 긍정론
4. 고고학적 검토
5. 삼국사기 초기기록에 대한 사료 비판

III. 결론

본문내용

유리왕 9년에 사로국의 통치 조직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관제가 만들어졌고, 그러한 제도가 후일 17등 관제로 발전하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신라의 17등 관등이 처음부터 모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17관등 중 이찬 등의 관등이 먼저 설치되는데, 그것이 처음부터 관등이었던 것도 아니다. 처음에 관직으로서 기능하다가 후일 관직이 새로이 편제되며 관등으로 기능이 바뀐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삼국사기 초기기록에 대한 사료 비판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맹목적으로 삼국사기 전체를 불신하여 한국 초기 고대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합리적인 안목으로 삼국사기 초기기사를 비판해야한다. 그래야만 진정 고대사를 연구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III. 결론
지금까지 삼국사기 초기기록에 대한 여러 견해들 및 몇 가지 문제에 대해 살펴보았다. <삼국사기>는 민족주의 사학자들로부터 한국 고대사를 너무 소략하게 서술했다고 비난받아 왔었다. 하지만 식민학자들은 이를 거꾸로 삼국사기 초기기사를 불신하는 근거로 활용함으로써 삼국사기를 부인하게 만드는 고도의 책략을 사용했다. 이렇듯 삼국사기는 유교적, 합리주의 사관에 의하여 서술됨으로서 혹 개필 윤색되어진 부분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우리나라 最古의 사서로서 삼국사기의 기사는 어떠한 형태이든 간에 그들이 참고한 사료의 줄기는 건드리지 않은 채 앞선 사료에 바탕을 두고 기술되어졌다는 사실과 저자인 김부식이 述而不作의 대원칙을 나름대로 고수하였다는 점에서 일단은 긍정적인 자세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기년을 포함한 기사의 내용 전체를 그대로 전면 긍정하는 데는 신중성이 요구되는 바이다.
또한, 최근에는 풍납토성의 발굴로 인해 그 가치가 더욱 높게 평가되고 있는데, 우리는 삼국사기 초기기록에 대해 기본적으로는 긍정적인 자세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단, 取信하기에 앞서 제기될 수 있는 모든 불확실성에 대한 문헌 고증학적 방법에서 고고학적 자료의 이용, 사료비판에 의한 분해론 등 다각도의 검토가 반드시 따라야겠다. 따라서 불신론, 긍정론 견해 모두 일리가 있는 말이기는 하나, 나는 개인적으로 이 두 가지를 절충시킨 절충론을 주장하고 싶다.
☆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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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01.22
  • 저작시기2005.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48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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