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초기 불교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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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초기 불교정책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결도 이어졌다. 1441년 의정부에서 금은불사를 문제로 삼았다.
세종은 금을 무척 아꼈기 때문에 이 문제에서만은 한발 물러나 금불사와 단청을 한때 금지시켰다. 하지만 세종은 나이가 들수록 신앙심이 두터워져가, 수양대군에게 정음으로 ‘월인천강지곡’을 짓도록 하였다.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는 태종이 철거하였던 내불당을 경복궁 안에 다시 짓게 하여 비빈과 궁녀들의 신앙터전으로 삼게 하였다. 더욱이 함허의 제자인 홍준(弘俊)을 불러 내불당에서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에게 불경을 강의하게 하였다. 성균관 유생들이 다시 동맹휴학을 하고 집현전 학사들이 집으로 돌아갔다. 이에 황희가 일일이 학사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설득을 했다. 그래도 두 대군이 불경 강의를 계속 듣자 재상 이순업이 논박하고 나섰고 세종은 ‘문사들이 부처는 배격하는 것은 마땅하다 할 수 있으나 재상들이 어찌 부처가 옳고 그름을 안다고 논박하오’라고 타매 唾罵. 아주 더럽게 생각하고 경멸히 여겨 욕함.
하였다.
세종의 이런 불교관 또는 불교정책을 보면, 그것이 단순한 수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신앙심과 깊이 결부되어 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 참고도서 : 이이화, 역사속의 한국불교, 역사비평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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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4페이지
  • 등록일2008.03.17
  • 저작시기2008.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55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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