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본론
ⅰ. 佛塔이란 무엇인가
ⅱ. 부도와 중국 탑
ⅲ.각양각색의 불탑
ⅳ.산하의 탑영
ⅴ.불탑의 확장
Ⅲ. 결론
Ⅳ. 참고자료
Ⅱ. 본론
ⅰ. 佛塔이란 무엇인가
ⅱ. 부도와 중국 탑
ⅲ.각양각색의 불탑
ⅳ.산하의 탑영
ⅴ.불탑의 확장
Ⅲ. 결론
Ⅳ. 참고자료
본문내용
그것이 자리잡은 환경이 얼마나 아름다웠느지를 짐작할 수 있다. 명대 가정嘉靖 연간(16세기)에 항주에 침입한 일본군이 뇌봉탑이 속한 사찰에 불을 지르는 바람에, 절 자체는 잿더미로 변해버리고 탑조차 처마가 불타 벽돌로 세운 중심부만 남게 되었다. 명대의 장대張岱는 이를 보고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타고 남은 탑은 호숫가를 굽어보니, 술 취한 늙은이 몸을 가누지 못하네. 기와와 조약돌에 정을 맡기니, 어찌 사람의 힘을 빌릴 필요가 있으랴?”
그런가 하면 청대의 거인 여악은 이렇게 읊었다.
“뇌봉탑은 술 취한 늙은이처럼 비틀거리는데, 석양빛 깃들이기에 참 좋아라.”
명 말의 왕영王瀛 역시 이렇게 노래했다.
“저녁 빛 흐릿하게 먼 숨속에 스며들어, 어지러운 산 에워싸니 호수의 반은 어둠에 잠기네. 불탑은 나그네의 뜻을 아는지, 지는 해의 한 줄기 금빛을 붙잡아두네.”
사찰은 불에 타 사라지고 불탑 또한 화상이 깊었지만, 그을린 전탑조차 시인의 눈에는 여전히 매력적이었던 모양이다. 뇌봉탑을 등지고 뉘엿뉘엿 저무는 저녁 해가 뿌리는 애잔한 빛, 사람들은 그 아름다운 석양 놀에 ‘뇌봉석조雷峰夕照’라는 이름을 붙여 일찍부터 ‘서호십경西湖十景 서호 안의 풍광이 뛰어난 10곳의 경점으로, 평호추월소제춘효단교잔설뇌봉석조남병만종곡원하풍화항관어유랑문앵상담인월양봉삽운 등이다.
’ 중 하나로 쳤다. 그러나 지난 세기 20년대에 쓸쓸한 늙은이 같던 탑신마저 끝내 무너져내려, 뇌봉탑의 그림자는 이후 서로 가에서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산마루나 호숫가에 우뚝 선 불탑은 불교를 상징하는 외에도 환경을 아름답게 하고 멋진 경관을 만들며, 적병 정찰의 장소를 제공하고, 뱃길을 밝히는 등 다양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들은 자연산수와 어울려 특색 있는 경관을 이루며 고대인문 문화의 내용을 간직한 채 대지를 꾸미고 있다.
ⅴ) 불탑의 확장
진강 금산사의 자수탑과 항주 남병산 위의 뇌봉탑은 경관 뿐만 아니라 인문 문화의내용 또한 풍부한 불탑이다. 『백사전白蛇傳 백사전은 백사가 변한 백낭자와 허선의 비극적 사랑을담고 있는 민간 전설이다. 청명절을 맞아 항주 서호에 놀러갔던백낭자는 허선과 사랑에 빠져 진강에 약방을 열고서 꿈 같은 세월을 보낸다. 그러나 금산사의 법해 스님은 허선에게 백낭자의 정체를 알려주고 허선을 구해낸다. 백낭자는 도술을 부려 허선을 되찾아오지만, 끝내 법해에게 붙잡혀 뇌봉탑 아래에 갇히고 만다.
』이라는 권선징악의 스토리를 지닌 신화 이야기는 강남의 이 두 사원을 배경으로 전개되는데, 감산사의 자수탑과 뇌봉탑은 이 가운데에서 중요한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는 아마 서호와 금산의 아름다운 경치가 문학 작품에 나타난 것처럼 선량한 인성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그러나 어쨌든 불교를 상징하는 탑이 인강의 마음 속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의 가치가 이미 단순한 종교 신앙을 뛰어넘어 보다 광활한 영역으로 뻗어나갔음을 잘 보여준다.
섬서성 서안의 대안탑은 널리 알려진 불탑이자, 옛 장안 시민에게는 높다란 위치에서 사방 경관을 구경할 수 있는 일종의 ‘전망대’이기도 했다. 당대에 장안에 모여 과거를 치른 각 성의 거인擧人 가운데, 진사에 합격한 이들은 너나없이 이곳에 올라 탑 위에 자신의 이름을 씀으로써 호연지기를 나타내곤 했다. ‘안탑제명雁塔題名’이라는 말을 낳은 이 같은 풍속은 이후 문인들의 고아한 흥취로 자리잡아, 숱한 문인학사가 탑을 오르내리며 저마다의 정감을 펼침으로써 다양하고도 귀중한 문학적 성과를 남겼다.
불탑의 기능과 가치가 확장되면서 각지에 단순한 풍경탑, 풍수탑, 명인의 기념탑 등이 나타났다. 절강성 건덕健德 신엽촌新葉村 동남쪽에는 박운탑博雲塔이 서있다. 높이 30여 m에 7층 6각탑인 박운탑은 불탑이 아니라, 마을의 풍수탑이다. 풍수학 서적인 『상택경찬相宅經讚』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도성주현향촌이 문인에게 불리해 과거에 합격하는 자가 없다면, 갑손병정 4자가 가리키는 방위에 길한 터를 골라 붓끝처럼 생긴 봉우리를 세운다. 단, 이 봉우리의 높이가 다른 산보다 높아야 과거에 합격할 수 있다. 산 위에 봉우리를 세우든 평지에 높은 탑을 세우든, 다같이 문필봉이다.”
신엽촌의 선조들은 마을의 문운文運이 좋지 않다고 여겼던지 손의 방위인 동남쪽웅덩이진 곳에 박운탑을 세우고, 이를 ‘문봉탑文峰塔’이라고도 불렀다. 탑을 세움으로써 그들은 천우신조로 마을의 엽씨 가문에 과거에 합격해 벼슬길에 오르는자손이 많이 나오길 기원했던 것이다. 절강성 무의武義의 곽동촌郭洞村, 강서성 무원源의 봉산촌鳳山村에도 이와 비슷한 풍수탑이 있다. 이들 탑은 실생활에서는 그다지 큰 역할을 못하지만, 환경을 아름답게 꾸밈으로써 마을의 중요한 경관이 되곤 한다.
Ⅲ.결론
불탑은 불교를 따라 중국에 전해진 이후중국 전통의 누각과 결합해 누각식 탑을 낳았고, 이어 누각식 탑은 밀첨식 탑을 낳았다. 불교 교파의 차이와 유래한 지역의 특성은 여기에 라마탑금강보좌탑미얀마 식 탑 등을 보탰다. 이들 각종 탑은 다시 받아들인 지역과 민족 등의 요소에 따라 서로 다른 양식과 풍취를 지닌 탑형으로 빚어졌고, 풍수탑기념탑 등의 등장은 중국의 탑을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들었다.
엄청난 수효와 다양한 형식, 그리고 풍부한 풍취를 지닌다는 점에서 중국의 탑은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예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중국에 전해진 특정 형식의 불탑은 곧바로 융화개조됨으로써 각양각색의 불탑을 파생시키고 탑의 내용도 확장돼 훨씬 넓은 의미를 지녔다. 만약 이를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본다면, 외래 문화가 본토 문화에 흡수개조융화되는 일은 중국만의 특유한 현상이 아닐까? 외래 문화와 본토 문화가 결합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 이러한 기초 위에서 발전을 거듭해 문화는 더욱풍부하고 다채로워진다. 이 같은 현상은 세계 문화의 전체적인 발전에 얼마나 이바지할까? 진지하게 곱씹어보아야 할 문제이다.
Ⅳ. 참고자료
-도서) 중국 고건축 기행1. 러우칭시 글.
-도서) 중국 문화의 이해. 변성규.
-도서) 양자강을 가로질러 중국을 보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
-네이버 백과사전
-그 밖에 네이버 여러 블로그 내용도 참조되어 있습니다.
“타고 남은 탑은 호숫가를 굽어보니, 술 취한 늙은이 몸을 가누지 못하네. 기와와 조약돌에 정을 맡기니, 어찌 사람의 힘을 빌릴 필요가 있으랴?”
그런가 하면 청대의 거인 여악은 이렇게 읊었다.
“뇌봉탑은 술 취한 늙은이처럼 비틀거리는데, 석양빛 깃들이기에 참 좋아라.”
명 말의 왕영王瀛 역시 이렇게 노래했다.
“저녁 빛 흐릿하게 먼 숨속에 스며들어, 어지러운 산 에워싸니 호수의 반은 어둠에 잠기네. 불탑은 나그네의 뜻을 아는지, 지는 해의 한 줄기 금빛을 붙잡아두네.”
사찰은 불에 타 사라지고 불탑 또한 화상이 깊었지만, 그을린 전탑조차 시인의 눈에는 여전히 매력적이었던 모양이다. 뇌봉탑을 등지고 뉘엿뉘엿 저무는 저녁 해가 뿌리는 애잔한 빛, 사람들은 그 아름다운 석양 놀에 ‘뇌봉석조雷峰夕照’라는 이름을 붙여 일찍부터 ‘서호십경西湖十景 서호 안의 풍광이 뛰어난 10곳의 경점으로, 평호추월소제춘효단교잔설뇌봉석조남병만종곡원하풍화항관어유랑문앵상담인월양봉삽운 등이다.
’ 중 하나로 쳤다. 그러나 지난 세기 20년대에 쓸쓸한 늙은이 같던 탑신마저 끝내 무너져내려, 뇌봉탑의 그림자는 이후 서로 가에서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산마루나 호숫가에 우뚝 선 불탑은 불교를 상징하는 외에도 환경을 아름답게 하고 멋진 경관을 만들며, 적병 정찰의 장소를 제공하고, 뱃길을 밝히는 등 다양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들은 자연산수와 어울려 특색 있는 경관을 이루며 고대인문 문화의 내용을 간직한 채 대지를 꾸미고 있다.
ⅴ) 불탑의 확장
진강 금산사의 자수탑과 항주 남병산 위의 뇌봉탑은 경관 뿐만 아니라 인문 문화의내용 또한 풍부한 불탑이다. 『백사전白蛇傳 백사전은 백사가 변한 백낭자와 허선의 비극적 사랑을담고 있는 민간 전설이다. 청명절을 맞아 항주 서호에 놀러갔던백낭자는 허선과 사랑에 빠져 진강에 약방을 열고서 꿈 같은 세월을 보낸다. 그러나 금산사의 법해 스님은 허선에게 백낭자의 정체를 알려주고 허선을 구해낸다. 백낭자는 도술을 부려 허선을 되찾아오지만, 끝내 법해에게 붙잡혀 뇌봉탑 아래에 갇히고 만다.
』이라는 권선징악의 스토리를 지닌 신화 이야기는 강남의 이 두 사원을 배경으로 전개되는데, 감산사의 자수탑과 뇌봉탑은 이 가운데에서 중요한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는 아마 서호와 금산의 아름다운 경치가 문학 작품에 나타난 것처럼 선량한 인성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그러나 어쨌든 불교를 상징하는 탑이 인강의 마음 속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의 가치가 이미 단순한 종교 신앙을 뛰어넘어 보다 광활한 영역으로 뻗어나갔음을 잘 보여준다.
섬서성 서안의 대안탑은 널리 알려진 불탑이자, 옛 장안 시민에게는 높다란 위치에서 사방 경관을 구경할 수 있는 일종의 ‘전망대’이기도 했다. 당대에 장안에 모여 과거를 치른 각 성의 거인擧人 가운데, 진사에 합격한 이들은 너나없이 이곳에 올라 탑 위에 자신의 이름을 씀으로써 호연지기를 나타내곤 했다. ‘안탑제명雁塔題名’이라는 말을 낳은 이 같은 풍속은 이후 문인들의 고아한 흥취로 자리잡아, 숱한 문인학사가 탑을 오르내리며 저마다의 정감을 펼침으로써 다양하고도 귀중한 문학적 성과를 남겼다.
불탑의 기능과 가치가 확장되면서 각지에 단순한 풍경탑, 풍수탑, 명인의 기념탑 등이 나타났다. 절강성 건덕健德 신엽촌新葉村 동남쪽에는 박운탑博雲塔이 서있다. 높이 30여 m에 7층 6각탑인 박운탑은 불탑이 아니라, 마을의 풍수탑이다. 풍수학 서적인 『상택경찬相宅經讚』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도성주현향촌이 문인에게 불리해 과거에 합격하는 자가 없다면, 갑손병정 4자가 가리키는 방위에 길한 터를 골라 붓끝처럼 생긴 봉우리를 세운다. 단, 이 봉우리의 높이가 다른 산보다 높아야 과거에 합격할 수 있다. 산 위에 봉우리를 세우든 평지에 높은 탑을 세우든, 다같이 문필봉이다.”
신엽촌의 선조들은 마을의 문운文運이 좋지 않다고 여겼던지 손의 방위인 동남쪽웅덩이진 곳에 박운탑을 세우고, 이를 ‘문봉탑文峰塔’이라고도 불렀다. 탑을 세움으로써 그들은 천우신조로 마을의 엽씨 가문에 과거에 합격해 벼슬길에 오르는자손이 많이 나오길 기원했던 것이다. 절강성 무의武義의 곽동촌郭洞村, 강서성 무원源의 봉산촌鳳山村에도 이와 비슷한 풍수탑이 있다. 이들 탑은 실생활에서는 그다지 큰 역할을 못하지만, 환경을 아름답게 꾸밈으로써 마을의 중요한 경관이 되곤 한다.
Ⅲ.결론
불탑은 불교를 따라 중국에 전해진 이후중국 전통의 누각과 결합해 누각식 탑을 낳았고, 이어 누각식 탑은 밀첨식 탑을 낳았다. 불교 교파의 차이와 유래한 지역의 특성은 여기에 라마탑금강보좌탑미얀마 식 탑 등을 보탰다. 이들 각종 탑은 다시 받아들인 지역과 민족 등의 요소에 따라 서로 다른 양식과 풍취를 지닌 탑형으로 빚어졌고, 풍수탑기념탑 등의 등장은 중국의 탑을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들었다.
엄청난 수효와 다양한 형식, 그리고 풍부한 풍취를 지닌다는 점에서 중국의 탑은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예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중국에 전해진 특정 형식의 불탑은 곧바로 융화개조됨으로써 각양각색의 불탑을 파생시키고 탑의 내용도 확장돼 훨씬 넓은 의미를 지녔다. 만약 이를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본다면, 외래 문화가 본토 문화에 흡수개조융화되는 일은 중국만의 특유한 현상이 아닐까? 외래 문화와 본토 문화가 결합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 이러한 기초 위에서 발전을 거듭해 문화는 더욱풍부하고 다채로워진다. 이 같은 현상은 세계 문화의 전체적인 발전에 얼마나 이바지할까? 진지하게 곱씹어보아야 할 문제이다.
Ⅳ. 참고자료
-도서) 중국 고건축 기행1. 러우칭시 글.
-도서) 중국 문화의 이해. 변성규.
-도서) 양자강을 가로질러 중국을 보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
-네이버 백과사전
-그 밖에 네이버 여러 블로그 내용도 참조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