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의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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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있습니다."
"그것이 무슨 어려움이 되겠습니까? 재물 좋아하는 것을 백성과 함께 하십시오. 떠나는 사람이 언제나 임금 창고의 곡식을 가지고 떠날 수 있고, 그대로 머물러 사는 사람들이 언제나 임금 창고의 곡식을 먹을 수 있으면 됩니다."
"아, 그렇겠군요. 그런데 제게는 또 못된 버릇이 있습니다. 제가 여자를 좋아합니다."
"그게 무슨 흠이 되겠습니까? 여자 좋아하는 것을 백성과 함께 하십시오. 그래서 시집 못 간 처녀와 장가 못 간 총각이 없게 하시면 됩니다."
며칠 뒤 제선왕이 맹자를 보고서는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투덜대면서 물었다.
"문왕의 사냥터가 사방 70리였다는 말이 정말입니까?"
"예,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 사냥터는 사방 40리밖에 안 되는데도 백성들이 넓다고 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문왕은 사냥터가 사방 70리나 되었지만 그 사냥터를 백성과 함께 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백성들은 오히려 좁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왕께서는 사방 40리의 사냥터를 혼자서만 쓰면서 그 안에 들어와 사냥을 하거나 나무를 베면 벌을 줍니다. 이것은 나라 안에 사방 40리짜리 함정을 파 놓은 것과 같으니, 어찌 넓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맹자의 왕도 정치는 현대 민주주의에서 보면, '민중에 의한' 정치나 '민중의' 정치는 아니었고 단지 '민중을 위한' 정치였습니다. 하지만 2000여 년 전의 절대 군주들에게 백성들에 대한 양보를 요구한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맹자는 군주들을 향해 민중을 위하라고 했을 뿐만 아니라, 가장 귀한 것이 백성이고 그 다음이 국가이며 가장 가벼운 것이 임금이라고까지 하였습니다. 그래서 백성의 마음을 잃으면 천하를 잃는 것이라고 하였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덕이 없는 임금, 즉 백성들이 따르지 않는 임금은 갈아엎어야 한다고까지 했습니다.
백성이 따르지 않는 임금
맹자는 하늘로부터 천명을 받는 사람이 왕이 될 수 있으며, 그 천명은 덕 있는 사람에게 주어진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천명을 받았는가, 그렇지 못한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맹자는 민중이 따르는가, 그렇지 않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예전에 요임금이 순에게 왕위를 주었다. 그러자 순은 요의 아들이 있는데 자신이 어떻게 왕이 될 수 있느냐고 하면서 숨어 버렸다. 백성들이 모두 순을 쫓아갔다. 순은 신하인 우에게 왕위를 주었다. 우도 순의 아들이 있기 때문에 왕이 될 수 없다고 하면 숨어 버렸다. 역시 백성들이 우를 쫓아갔다. 우도 신하인 익에게 왕위를 주었다. 익 또한 우의 아들이 있기 때문에 왕이 될 수 없다고 하며 숨어 버렸다. 그러나 백성들은 익을 쫓아가지 않았다.
맹자는 백성이 따르지 않는 임금은 이미 천명이 떠난 임금이며 따라서 혁명이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맹자는 그런 점에서 하나라를 무너뜨리고 은나라를 세운 탕임금의 혁명이나 은나라를 무너뜨리고 주나라를 세운 무왕의 혁명을 긍정했습니다. 그는 탕왕이 하나라의 폭군 걸을 죽인 것이나 무왕이 은나라의 폭군 주를 죽인 것은 못된 사나이 하나를 죽인 것일 뿐, 신하가 임금을 죽인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맹자는 또 이 혁명전쟁이 아주 치열해서 피가 강물처럼 흘러 쇠절구공이가 둥둥 떠내려갔다는 옛 기록을 부정합니다. 백성들이 따르는 임금이 백성들이 따르지 않는 한 사나이를 치는데 전쟁이 심했을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맹자의 혁명론에는 한 가지 필수 전체가 있습니다. 그것은 혁명 주체에게 민주의 뜻에 근거한 도덕성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과거 붕건 왕조의 교체는 언제나 혁명이냐 아니냐의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5·16,과 12·12,의 주체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혁명이라고 강변하지만, 역사가 준엄하게 군사 쿠데타로 규정한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맹자의 혁명론은 지배 집단에게는 반갑지 않은 것이었지만, 임금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꼭 필요한 주장이었습니다.
꿋꿋함은 어디서 오는가?
"맹자"에 나타난 맹자의 모습은 당당합니다. 그런 꿋꿋함은 어디서 왔을까요?
맹자는 제자 공손추와의 대화에서 용기 있는 옛 사람으로 복궁유와 맹시사, 그리고 증자를 듭니다. 북궁유는 바늘로 눈을 찔리면서도 깜박거리지 않고, 모욕을 당하면 상대가 누구든 가리지 않고 반드시 보복을 하는 사람입니다. 맹시사는 이기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이길 것처럼 대드는 사람입니다. 증자는 스스로 자신을 돌이켜보아 거리낌이 없으면 천만 명과도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의 용기를 평가하고 나서 맹자는 자기가 호연지기를 잘 기른다고 덧붙였습니다. 맹자의 꿋꿋함은 바로 호연지기에서 온 것입니다.
호연지기가 무엇이냐는 공손추의 질문에 대한 맹자의 첫 마디는 "설명하기 어렵구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호연지기가 온 세상을 꽉 채울 수 있는 도덕 기운임을 밝힙니다. 호연지기는 밖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실천을 통해 쌓은 정당함에서 나오는 기운입니다. 사실 맹자 이전의 기에 대한 이해는 대자연의 기운이나 인간의 혈기와 같이 자연적인, 또는 생리적인 것이었습니다. 맹자는 호연지기를 도덕적 실천을 통해 길러진 도덕 기운으로 파악함으로써 기 개념을 확대 발전시켰습니다.
호연지기를 가진 사람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일까요? 맹자는 세상에 살면서 올바른 자리에 서서 도를 실천해 가는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이런 사람은 부귀로 유혹해도 마음을 바꾸지 않고, 위협이나 무력에 굴복하지 않으며, 가난 같은 어려운 상황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맹자는 이런 사람을 대장부라고 하였습니다.
맹자는 강한 자기 확신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인간의 본질은 선이며 그 근거는 하늘이라고 하면서, 왕도 정치를 통해 인간의 선한 본성을 사회에 실현해 보려고 했습니다. 맹자는 자기 마음을 다함으로써 사람의 본성이 어떠한 것인가를 제대로 깨달은 사람을 하늘의 백성이라고 하였습니다. 맹자가 바라본 사람은 사화를 떠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은 사회 속에서 실천하는 존재이며, 그 경우 강한 힘은 인간 본질에 대한 신뢰에서 출발한다고 본 것입니다. 맹자의 사상은 후대 유학자들의 참된 표본이 되었으며, 지배 계급에게는 항상 경종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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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08.07.23
  • 저작시기2008.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7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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