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도 하고, 군사를 훈련해서 후일 스페인에 복수하기 위해 건설한 비밀도시라고도 한다. 또한 자연재해, 특히 홍수를 피해 고지대에 만든 피난용 도시라고도 한다. 도시의 총면적은 5㎢, 그 절반에 해당하는 비탈면은 계단식 밭이다. 서쪽의 시가지에는 신전과 궁전, 주민 거 주지 구역이고 주위를 성벽으로 둘러쌌다. 16세기 후반, 잉카인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이곳 마추피추를 버리고 더 깊숙한 오지로 떠났다. 그 뒤 약 400년 동안 사람 눈에 띄지 않다가 1911년 미국의 역사학자 하이람 빙엄이 발견했다. 마추피추의 시공간은 수수께끼로 가득하다. 그 유적에는 3대의 시간이 흐른다. 200톤이 넘는 거석, 정교한 다면체로 쌓아올린 ‘태양의 신전’, 주신전 등은 건축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선사시대 사람들의 작품이다. 후대의 잉카인들도 고대인들만은 못하지만 나름대로의 기술로 고유의 건조물을 세웠고, 유적 붕괴 후에는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조잡하게나마 유적을 재건하고자 석축을 쌓았다. 이 3대에 걸친 건조물을 보노라면 문명의 영고성쇠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유적 꼭대기에 ‘인티파타나’라고 하는 제례용 석조물이 있다. 인티파타나는 ‘태양을 잇는 기둥’이라는 뜻이다. 이 석조물 위에 높이 1.8m, 너비 36cm의 돌기둥이 솟아 있다. 잉카인들은 천체의 궤도가 바뀌면 커다란 재앙이 생긴다고 믿고, 매년 동지 때 이 돌기둥 바로 위에 뜬 태양을 붙잡아 매려고 돌기둥에 끈을 매는 의식을 치렀다고 한다. 그러나 이 기둥을 해시계의 일부로 보는 학자들도 많다. 즉 이 기둥이 만드는 그림자가 시각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당시 기술력을 감안해 볼 때 너무 단순한 추측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유적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암반을 깎아 만들었으니 그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사진 출처>
http://cafe.naver.com/copemissionary.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35
잉카시대 마추피추에 있는 주택은 직사 각형에 마름돌로 지어졌고, '파칠라'라고 부르는 조그만 돌들이 쐐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주거형태는 지금도 페루원 주민 케추아인들이 이용하고 있다.
2. 현대주거
인구의 32.3%가 해안지역에 거주하며, 산악지역에는 35.7% 정도의 인디오가 살고, 밀림지대에도 12.1%가 산다. 백인이 서구적 주거 생활을 영위하는 반면, 산악 및 밀림지대에서는 대부분이 토막집에서 어렵게 생활한다.
▣ 리마
고대의 수준 높은 문명을 일으켰던 남미 최대의 잉카 제국의 숨결이 살아 있는 페루는 중부 태평양 연안의 고원에 있는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다. 1535년 에스파냐의 피사로가 잉카제국을 멸망시키고 건설된 곳으로 남아메리카에 있어서 에스파냐의 식민지 경영의 중심도시로 성장하였다. 그 후 1821년 페루의 독립과 함께 수도가 되었다.
리마에는 식민지 시대의 문화와 근대 문화가 서로 섞이지 않은 채로 공존하고 있다. 전통을 계속 지키려는 마음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활력 있는 시가지들이 남미 특유의 향기를 느끼게 해 준다.
페루의 수도인 리마는 삐사로에 의해 1535년 1월 18일에 건설된 도시이다. 페루 전체인구의 30% 정도가 거주하고 있으며, 급격한 이촌향도로 여러 도시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4월부터 12월까지는 한류의 영향으로 안개가 많이 끼며, 1821년 4월부터 282년 동안 페루 부왕청이 존재했고 1821년 7월 28일 산마르띤에 의해 페루의 독립이 선언된 역사적인 곳이다.
리마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풍부한 문화유산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으로 일년에 수천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이 페루의 문화와 경제의 중심지인 리마를 찾아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http://www.auctiontour.com/region/Central_south_america/peru/lima/lima.htm)
교회가 많음, 도시 쪽에 현대식 주거가 많음
12각의 돌
면도날 하나도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축성한 돌벽이다. 먼 곳에서 돌을 날라와 성을 쌓으면서 12각의 기하학적인 방법을 동원했다는 점에서 잉카제국의 과학적 기술력을 확인할 수 있다. 굳이 12각으로 돌을 잘라 벽을 쌓아올린 이유는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미라플로레스 광장
사진출처 :
http://blog.naver.com/littlebati.do?Redirect=Log&logNo=40007649402
센트로에서 아레키파 거리를 남쪽으로 내려 간 곳에 있는 고급 주택가로, 리마 제2의 번화가가 이곳 미라플로레스에 있다. 미라플로레스의 번화가 중심인 라르코 거리에는 현대적인 빌딩들이 즐비하고, 호화로운 부티크와 레스토랑, 간이식당 등이 잇달아 있는 풍경은 산 마르틴 광장 일대와는 또 다른 번화가의 모습이다.
현대주거 모습
Ⅴ 결론 및 요약
페루의 주거생활에 영향을 끼친 사회문화적 요인으로는 고대 잉카문명과 스페인 식민지의 역사로부터 흡수된 스페인 문화이다. 그래서 페루는 고대 잉카 원주민의 문화와 스페인의 카톨릭 문화가 융합되어있다. 고대 잉카 문명은 안데스 산지와 밀림지역, 티티카카 호수의 여러 섬들에서 원주민의 생활속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스페인의 카톨릭 문화는 잉카의 석재문화와 융합된 교회의 석재건축물이나 도시에 있는 수많은 교회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물리적 요인으로는 기후와 건축재료등을 살펴볼 수 있는데 티티카카호수의 섬들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토토라 갈대로 만들고 흙벽돌(아도베)이나 돌로 집을 지었다. 석조기술은 고대 잉카 문명의 큰 특징으로 석조기술이 매우 발달되어 있었다.
Ⅵ 참고문헌
1. 네이버 테마백과사전 http://100.naver.com/travelworld/theme/006_Machupichu/ .
2. 아미고 투어 www.amigotour.com .
3. 비바라틴 www.vivalatin.com .
4. 정경원 외(2000). 라틴 아메리카 문화의 이해. 서울: 학문사.
5. 강태진(1998). 라틴아메리카 문화. 대구효성카톨릭대학교.
사진 출처>
http://cafe.naver.com/copemissionary.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35
잉카시대 마추피추에 있는 주택은 직사 각형에 마름돌로 지어졌고, '파칠라'라고 부르는 조그만 돌들이 쐐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주거형태는 지금도 페루원 주민 케추아인들이 이용하고 있다.
2. 현대주거
인구의 32.3%가 해안지역에 거주하며, 산악지역에는 35.7% 정도의 인디오가 살고, 밀림지대에도 12.1%가 산다. 백인이 서구적 주거 생활을 영위하는 반면, 산악 및 밀림지대에서는 대부분이 토막집에서 어렵게 생활한다.
▣ 리마
고대의 수준 높은 문명을 일으켰던 남미 최대의 잉카 제국의 숨결이 살아 있는 페루는 중부 태평양 연안의 고원에 있는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다. 1535년 에스파냐의 피사로가 잉카제국을 멸망시키고 건설된 곳으로 남아메리카에 있어서 에스파냐의 식민지 경영의 중심도시로 성장하였다. 그 후 1821년 페루의 독립과 함께 수도가 되었다.
리마에는 식민지 시대의 문화와 근대 문화가 서로 섞이지 않은 채로 공존하고 있다. 전통을 계속 지키려는 마음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활력 있는 시가지들이 남미 특유의 향기를 느끼게 해 준다.
페루의 수도인 리마는 삐사로에 의해 1535년 1월 18일에 건설된 도시이다. 페루 전체인구의 30% 정도가 거주하고 있으며, 급격한 이촌향도로 여러 도시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4월부터 12월까지는 한류의 영향으로 안개가 많이 끼며, 1821년 4월부터 282년 동안 페루 부왕청이 존재했고 1821년 7월 28일 산마르띤에 의해 페루의 독립이 선언된 역사적인 곳이다.
리마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풍부한 문화유산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으로 일년에 수천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이 페루의 문화와 경제의 중심지인 리마를 찾아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http://www.auctiontour.com/region/Central_south_america/peru/lima/lima.htm)
교회가 많음, 도시 쪽에 현대식 주거가 많음
12각의 돌
면도날 하나도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축성한 돌벽이다. 먼 곳에서 돌을 날라와 성을 쌓으면서 12각의 기하학적인 방법을 동원했다는 점에서 잉카제국의 과학적 기술력을 확인할 수 있다. 굳이 12각으로 돌을 잘라 벽을 쌓아올린 이유는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미라플로레스 광장
사진출처 :
http://blog.naver.com/littlebati.do?Redirect=Log&logNo=40007649402
센트로에서 아레키파 거리를 남쪽으로 내려 간 곳에 있는 고급 주택가로, 리마 제2의 번화가가 이곳 미라플로레스에 있다. 미라플로레스의 번화가 중심인 라르코 거리에는 현대적인 빌딩들이 즐비하고, 호화로운 부티크와 레스토랑, 간이식당 등이 잇달아 있는 풍경은 산 마르틴 광장 일대와는 또 다른 번화가의 모습이다.
현대주거 모습
Ⅴ 결론 및 요약
페루의 주거생활에 영향을 끼친 사회문화적 요인으로는 고대 잉카문명과 스페인 식민지의 역사로부터 흡수된 스페인 문화이다. 그래서 페루는 고대 잉카 원주민의 문화와 스페인의 카톨릭 문화가 융합되어있다. 고대 잉카 문명은 안데스 산지와 밀림지역, 티티카카 호수의 여러 섬들에서 원주민의 생활속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스페인의 카톨릭 문화는 잉카의 석재문화와 융합된 교회의 석재건축물이나 도시에 있는 수많은 교회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물리적 요인으로는 기후와 건축재료등을 살펴볼 수 있는데 티티카카호수의 섬들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토토라 갈대로 만들고 흙벽돌(아도베)이나 돌로 집을 지었다. 석조기술은 고대 잉카 문명의 큰 특징으로 석조기술이 매우 발달되어 있었다.
Ⅵ 참고문헌
1. 네이버 테마백과사전 http://100.naver.com/travelworld/theme/006_Machupichu/ .
2. 아미고 투어 www.amigotour.com .
3. 비바라틴 www.vivalatin.com .
4. 정경원 외(2000). 라틴 아메리카 문화의 이해. 서울: 학문사.
5. 강태진(1998). 라틴아메리카 문화. 대구효성카톨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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