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도스토예프스키의 삶과 작품세계
2. 작품줄거리
3. 인간사회에서의 죄의 진정한 의미
4. 죄와 벌, 그리고 양심과의 상관관계
5. 작품 속에 등장하는 상징적 이미지 분석
6. 맺음말
2. 작품줄거리
3. 인간사회에서의 죄의 진정한 의미
4. 죄와 벌, 그리고 양심과의 상관관계
5. 작품 속에 등장하는 상징적 이미지 분석
6. 맺음말
본문내용
프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동시에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조금 만 더 유심히 살펴보면, 벌이라고 생각하는 바로 이 순간이 실제로는 그의 벌이 끝나는 순간이라는 것을 쉽사리 눈치챌 수 있다. .
한 인간이 범죄로 인한 정신적 파멸과 부활의 과정을 살펴보면서 나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죄와 벌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 작품에서 표현하고 있는 벌은 법적 제한으로 인한 육체적 제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신이 인간에게 내린 프로그램 중에서는, 그런 외면적인 규제가 아닌 가장 효과적인 내면적인 규제, 바로‘양심’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 양심은 우리 마음 속에서 스스로 집행관이 되어 죄책감이라는 형벌로 우리의 잘못을 묶는다. 죄책감은 도둑이 제 발을 저리게끔 하여, 종내에는 죄를 저지른 그 사실로 인해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벌하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우리에게 가해지는 벌은, 바로 이런 사실에서 그 본질을 찾을 수 있다. 이런 벌의 특징은, 그 벌의 집행 기간을 우리 스스로의 마음가짐이 짧게 할 수도 있고, 길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인데, 이 작품이 중핵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바로 그런 사실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살인이라는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를 용서했으며 결국은 자기 자신을 용서했다. 자신의 죄의식을 떨쳐버리며 정신적으로 부활한 것이다. 만약 그가 자신의 범죄에 대하여 아무런 죄의식을 가지지 못했더라면 그는 평생 이 사실을 숨기고 두려움에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의 마지막과 같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수 없었을 것이다.
5. 작품 속에 등장하는 상징적 이미지 분석
꿈은 무의식의 세계이다. 유명한 심리학자 프로이드는 인간의 정신세계를 의식세계와 무의식의 세계로 구분하였다. 프로이드는 여기서 의식세계의 사고가 꿈과 같은 무의식 의 세계를 통해 드러난다고 하였다. 즉 라스콜리니코프의 꿈은 그의 의식 세계의 표출이라고 하겠다. 그러한 그의 꿈이 이 작품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알아보겠다.
늙은 말을 죽이는 꿈
여기서 늙은 암말이 죽임을 당하는데 이것은 노파가 살해될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라스콜리니코프의 의식세계가 너무나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꿈과 같은 무의식 세계로의 표출이 더욱 쉽게 나타난 것이다.
오아시스 꿈
오아시스는 사막을 힘들게 걸어가는 사람들에게는 유일한 희망이다. 이 꿈에서 그는 오아시스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물을 마신다. 그리고 난 뒤 그는 상쾌함을 느낀다. 이것은 라스콜리니코프의 노파 살인 계획에 의해 갈등하는 그의 심리를 보여준다. 그의 불안한 심리가 사막에 비유되었으며 이러한 갈등과 고통속에서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버려야만 자유로워 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노파를 살해하는 꿈
그에게 맞아 죽은 노파가 그를 보며 웃고 있다. 그래서 라스콜리니코프는 그 노파를 계속 때리게 되는데 때리며 때릴수록 주의사람들의 웃음과 소리들이 커져만 간다. 그러면서 많은 군중들이 그를 보게 된다. 이것은 살인이 폭로될 전조이다. 즉, 그가 전당 포 노파를 죽인 것에 대해 사람들이 알게 될 것을 암시한다. 이 작품에서 꿈은 라스콜리니코프의 심리상태를 표출하는 점과 뒤에 일어날 사건에 대한 복선이라는데서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물이 가지는 의미
보통 '물'의 문학적 이미지는 시간의 경과, 갱생, 치유 깨끗함 등으로 나타난다. 그러한 '물'이라는 단어가 이 작품에서도 동일한 이미지로 적용되는가? 그렇지 않다. 이 작품에서 전반적인 물의 이미지는 죽음이다. 그러나 스비드리가일로프의 물의 이미지와 라스콜리니코프의 물의 이미지는 차이가 있다. 스비드리가일로프의 물의 이미지는 마치 폭우가 쏟아진 이후의 강물처럼 지저분하고 컴컴하고 어두운 죽음을 상징한다. 그러나 라스콜리니코프의 물의 이미지는 이것과는 다르다. 그것을 그의 오아시스 꿈에서 알 수 있다. 그의 물의 이미지는 갱생 혹은 부활이다. 이렇게 물에 대한 이미지가 차이가 나는 것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드러낸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이 작품 의 초반에 한 여자가 다리에서 강물로 투신자살을 하며 작품의 끝부분에서 라스콜리니코프가 자살을 위해 강을 찾아가는 것 등을 비추어 볼 때 물이 가지는 의미를 죽음이 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성서적 모티브
이 작품에서 나오는 성경내용은 요한 복음에 나오는 것을 인용한 것이다. 그 내용은 예수그리스도가 마리아 집에 가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것이다. 이 성경내용을 라스콜리니코프가 소냐에게 읽어주기를 요청한다. 이것은 그가 자신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신으로 태어나길 무의식적으로 갈망해오던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소냐를 라스콜리니코프가 만나게 됨으로서 라스콜리니코프가 믿음을 통해서 구원받을 것임을 보여준다. 즉 도스토예프스키는 믿음 을 통해서만이 구원이 가능함을 불러일으키려고 한다.
6. 맺음말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나에게 또 다른 자극을 주었다. 언젠가 힘들어하며 깨달았던, "강해져야 한다"는 마음이 더욱 깊어졌지만, 양심대로 정당하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세상의 악한이를 처단하는 것은 단순히 법집행인들의 일은 아니다. 가난하고 핍박받으며, 빈곤의 악순환 속에서 벗어나는 것은, 적어도 자본주의, 민주주의인 우리나라에서는 자기의 환경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역경의 수렁 속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들지만, 거기를 빠져나와서 부터는 그 아래를 내려다 볼 수가 있다. 완성이란 무엇인가, 세상에 도덕적이나 어느 한쪽으로 완전해 질 수 있을까. 아니다. 절대 그럴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 완전에 도전하고 있다. 나도 그들 중 하나로서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만족을 느낄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이 책을 읽고 나에게는 오히려 잘못된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급하게 읽은 이 책을 완전히 소화했다고 장담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부유하고 못된 자의 처단은, 자기 자신이 그보다 더 위에 올라가서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
한 인간이 범죄로 인한 정신적 파멸과 부활의 과정을 살펴보면서 나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죄와 벌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 작품에서 표현하고 있는 벌은 법적 제한으로 인한 육체적 제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신이 인간에게 내린 프로그램 중에서는, 그런 외면적인 규제가 아닌 가장 효과적인 내면적인 규제, 바로‘양심’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 양심은 우리 마음 속에서 스스로 집행관이 되어 죄책감이라는 형벌로 우리의 잘못을 묶는다. 죄책감은 도둑이 제 발을 저리게끔 하여, 종내에는 죄를 저지른 그 사실로 인해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벌하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우리에게 가해지는 벌은, 바로 이런 사실에서 그 본질을 찾을 수 있다. 이런 벌의 특징은, 그 벌의 집행 기간을 우리 스스로의 마음가짐이 짧게 할 수도 있고, 길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인데, 이 작품이 중핵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바로 그런 사실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살인이라는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를 용서했으며 결국은 자기 자신을 용서했다. 자신의 죄의식을 떨쳐버리며 정신적으로 부활한 것이다. 만약 그가 자신의 범죄에 대하여 아무런 죄의식을 가지지 못했더라면 그는 평생 이 사실을 숨기고 두려움에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의 마지막과 같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수 없었을 것이다.
5. 작품 속에 등장하는 상징적 이미지 분석
꿈은 무의식의 세계이다. 유명한 심리학자 프로이드는 인간의 정신세계를 의식세계와 무의식의 세계로 구분하였다. 프로이드는 여기서 의식세계의 사고가 꿈과 같은 무의식 의 세계를 통해 드러난다고 하였다. 즉 라스콜리니코프의 꿈은 그의 의식 세계의 표출이라고 하겠다. 그러한 그의 꿈이 이 작품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알아보겠다.
늙은 말을 죽이는 꿈
여기서 늙은 암말이 죽임을 당하는데 이것은 노파가 살해될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라스콜리니코프의 의식세계가 너무나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꿈과 같은 무의식 세계로의 표출이 더욱 쉽게 나타난 것이다.
오아시스 꿈
오아시스는 사막을 힘들게 걸어가는 사람들에게는 유일한 희망이다. 이 꿈에서 그는 오아시스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물을 마신다. 그리고 난 뒤 그는 상쾌함을 느낀다. 이것은 라스콜리니코프의 노파 살인 계획에 의해 갈등하는 그의 심리를 보여준다. 그의 불안한 심리가 사막에 비유되었으며 이러한 갈등과 고통속에서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버려야만 자유로워 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노파를 살해하는 꿈
그에게 맞아 죽은 노파가 그를 보며 웃고 있다. 그래서 라스콜리니코프는 그 노파를 계속 때리게 되는데 때리며 때릴수록 주의사람들의 웃음과 소리들이 커져만 간다. 그러면서 많은 군중들이 그를 보게 된다. 이것은 살인이 폭로될 전조이다. 즉, 그가 전당 포 노파를 죽인 것에 대해 사람들이 알게 될 것을 암시한다. 이 작품에서 꿈은 라스콜리니코프의 심리상태를 표출하는 점과 뒤에 일어날 사건에 대한 복선이라는데서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물이 가지는 의미
보통 '물'의 문학적 이미지는 시간의 경과, 갱생, 치유 깨끗함 등으로 나타난다. 그러한 '물'이라는 단어가 이 작품에서도 동일한 이미지로 적용되는가? 그렇지 않다. 이 작품에서 전반적인 물의 이미지는 죽음이다. 그러나 스비드리가일로프의 물의 이미지와 라스콜리니코프의 물의 이미지는 차이가 있다. 스비드리가일로프의 물의 이미지는 마치 폭우가 쏟아진 이후의 강물처럼 지저분하고 컴컴하고 어두운 죽음을 상징한다. 그러나 라스콜리니코프의 물의 이미지는 이것과는 다르다. 그것을 그의 오아시스 꿈에서 알 수 있다. 그의 물의 이미지는 갱생 혹은 부활이다. 이렇게 물에 대한 이미지가 차이가 나는 것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드러낸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이 작품 의 초반에 한 여자가 다리에서 강물로 투신자살을 하며 작품의 끝부분에서 라스콜리니코프가 자살을 위해 강을 찾아가는 것 등을 비추어 볼 때 물이 가지는 의미를 죽음이 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성서적 모티브
이 작품에서 나오는 성경내용은 요한 복음에 나오는 것을 인용한 것이다. 그 내용은 예수그리스도가 마리아 집에 가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것이다. 이 성경내용을 라스콜리니코프가 소냐에게 읽어주기를 요청한다. 이것은 그가 자신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신으로 태어나길 무의식적으로 갈망해오던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소냐를 라스콜리니코프가 만나게 됨으로서 라스콜리니코프가 믿음을 통해서 구원받을 것임을 보여준다. 즉 도스토예프스키는 믿음 을 통해서만이 구원이 가능함을 불러일으키려고 한다.
6. 맺음말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나에게 또 다른 자극을 주었다. 언젠가 힘들어하며 깨달았던, "강해져야 한다"는 마음이 더욱 깊어졌지만, 양심대로 정당하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세상의 악한이를 처단하는 것은 단순히 법집행인들의 일은 아니다. 가난하고 핍박받으며, 빈곤의 악순환 속에서 벗어나는 것은, 적어도 자본주의, 민주주의인 우리나라에서는 자기의 환경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역경의 수렁 속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들지만, 거기를 빠져나와서 부터는 그 아래를 내려다 볼 수가 있다. 완성이란 무엇인가, 세상에 도덕적이나 어느 한쪽으로 완전해 질 수 있을까. 아니다. 절대 그럴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 완전에 도전하고 있다. 나도 그들 중 하나로서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만족을 느낄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이 책을 읽고 나에게는 오히려 잘못된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급하게 읽은 이 책을 완전히 소화했다고 장담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부유하고 못된 자의 처단은, 자기 자신이 그보다 더 위에 올라가서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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