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전후의 우리 문단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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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 광복 직전의 우리 문단

2. 순수와 신세대 문제

3. 광복 직후의 우리 문단

본문내용

생활 문화사에 얼굴을 나타낸 사람은 김동리를 비롯해서 서정주(徐庭柱), 조지훈(趙芝薰), 박두진(朴斗鎭), 홍구범(洪九範), 이정호(李正浩), 김광주(金光州), 박목월(朴木月) 등등이었다. 전국 문학자 대회가 소비된 약 한 달 뒤, 중앙 문화 협회의 박종화(朴鐘和), 김광섭, 이헌구(李軒求), 오종식(吳宗植), 이하윤(異河潤)과 생활 문화사의 젊은 문인들이 협력하여 ‘전국 문필가 협회’를 결성했다. 1946년 3월 13일 동로 YMCA에서 전국 문필가 협회는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 건설에 공헌하자, 민족 자결과 국제 공약에 준거하여 즉시 완전 자주 독립을 촉성하자, 세계 문화와 인류 평화의 이념을 구명하여 이의 일환으로 조선 문화를 발전시키자, 인류의 복지와 국제평화를 빙자하여 세계 제패를 기하는 모든 비인도적 경향을 배격하자는 강령을 확정했다.
그러나, 엄밀한 뜻에 있어서, 문필가 협회는 문학 단체가 아니었다. 비록 거기에 ‘문학부’라는 것이 있긴 했지만, 생활 문화사를 중심으로 모였던 젊은 문인들과 소장 현역 작가들이 결합해서 청년 문학가 협회 결성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생활 문화사 회의실에 모여 문학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토요회’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 모임은 정태용(鄭泰鎔)과 조연현(趙演鉉)의 발의로 시작된 것으로, 여기에 모인 20여 명이 모태가 되어 청년 문학가 협회가 발족하게 된 것이다. 때는 1946년 4월 4일이었다. 역시 YMCA에서 열린 전국 청년 문학자 대회는 자주 독립 촉성에 문화적 헌신을 기함, 민족 문학의 세계사적 사명의 완수를 기함, 일체의 공식적 예속적 경향을 배격하고 진정한 문학정신을 옹호함이라는 삼대 강령을 가진 ‘조선 청년 문학가 협회’를 탄생시켰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 무렵의 청년 문학가 협회쪽은 발표 기관을 문학가 동맹쪽에 거의 다 뺏기다시피 하고 있을 때였다. 청년 문학가 협회가 발족한 한 달이 조금 지나 이헌구, 김광섭, 오종식, 안석주(전국 문필가 협회쪽)와 김동리, 김광주, 홍구범, 서정태(조선 청년 문학가 협회쪽)들로 편집국이 짜여진 민주일보(民主日報)를 창간하였지만, 문학가 동맹의 주동으로 새로이 ‘전국 문화 단체 총연맹’이 결성될 무렵, 그 신문에 종사했던 사람들이 모두 파면당했다. 그 뒤에 민족 진영의 문단인은 ‘전국 문화 단체 총연합회’를 결성하고 민중일보(民衆日報)가 창간될 때까지,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는 침묵의 시간 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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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10.30
  • 저작시기2008.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87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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