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트로트의 성립과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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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일제 강점기 트로트의 보급, 확산 배경
(1) 트로트 보급 이전의 대중가요
(2) 트로트의 보급과 대중가요의 전성기

3. 일제강점기 대중문화로서의 트로트

4. 일제 강점기 트로트의 한계

5.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급했듯이 일제의 검열과 통제로 인한 표현의 한계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개인적인 정서의 표출에 불과한 가사에서조차 비극적인 정서를 드러내는 것은 이 시기 대중음악인이 가지는 한계였다. 즉, 스스로 자기 검열화를 통해 일제의 통치 체제에 항거하지 못했거나 순응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한계점은 40년대에 나타난 친일가요 등장을 가져오게 하였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4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일제의 군국주의적인 침략 행위가 두드러지면서 나타나는 전시체제는 대중문화에 대한 통제를 더욱 심화시켰다. 이에 따라 대중문화의 변질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대중가요의 친일가요 등장이 바로 그것이다. 대중문화의 변질은 권력에 의해 쉽게 움직여지는 대중문화가 지니는 상업적인 속성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트로트의 변질은 대중가요가 자생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닌 근대화 이식의 과정을 통해 주입된 것이라는 태생적인 한계에 기인하는 것이다. 일본을 통한 근대화 속에서 더군다나 일본의 전통 음계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트로트의 경우 일제에 의한 변질이 이미 예고된 것인지도 모른다.
39년경부터 「상해 뿌루스」,「광동 아가씨」,「안개 낀 상해」,「황하 다방」등 중국이나 만주를 배경으로 한 노래가 눈에 띄게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영미, 1993, 위의 책, 375쪽.
이는 일제의 중국침략이 진행되는 시기에 중국 침략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만주로의 진출을 장려하는 분위기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일제에 의해 진행된 만주로의 강제 이주에 대한 아픔을 노래한 것이란 해석도 가능하기도 하지만, 이전 시기의 트로트에서 느낄 수 있는 비가적 분위기는 사라진 채 경쾌한 분위기가 보여 진다는 점에서 친일적 경향의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이영미, 1998, 위의 책, 89쪽.
또한 「감격시대」 「감격시대」의 경우 청춘의 박동과 기백을 담은 노래라는 주장이 있다.(최창호, 2000) 단조의 비가 일색인 가요계에서 장조의 경쾌한 분위기의 곡이 나온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긴 하나, 당시 시대상을 봤을 때, 문제의식 없는 행진곡풍의 경쾌한 노래는 일제의 침략 행위를 찬양하는 성향이 강하다는 것으로밖에는 볼 수 없다.
,「동트는 대지」등의 건전가요, 행진곡풍의 가요의 등장은 이후 노골적인 친일가요를 예고하고 있다.
서서히 진행되던 트로트의 변질은 41년 「복지만리」에서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1. 달 실은 마차다 해 실은 마차다/ 청대콩 벌판 우에 휘파람을 불며 불며/
저 언덕을 넘어스면 새 세상의 문이 있다/ 황색기층 대륙길에 빨리 가자/
방울소리 울리며
2. 백마를 달리든 고구려 쌈터다/ 파묻힌 성터우에 청노새는 간다간다/
저 고개를 넘어스면 새 천지에 종이 운다/ 다함 없는 대륙길에 빨리 가자/
방울소리 울리며
-「복지만리」(1941, 김영수 작사, 이재호 작곡, 백년설 노래)
특별한 설명이 없이도 일제의 중국침략을 찬양하고 있음이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청나라를 청대콩, 청노새 등으로 비하하면서 만주가 옛 고구려의 땅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는 부분에서는 한일민족동조론, 더 나아가 대동아 공영론을 떠오르게 한다.
43년이 되면서 조선어 사용자체가 금지되면서 더 이상 한국말로 된 가요를 들을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갑작스런 해방을 맞게 되지만, 40년대 등장했던 친일가요들은 해방이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즐겨 불리게 되었다. 이는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위정자들의 한계이다.
5. 맺음말
지금까지 일제 강점기의 대중가요로서 트로트의 보급, 확산 과정과 트로트가 가지는 성격과 한계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트로트는 서양 7음계의 일본식 변형인 요나누끼 단음계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음악 형식으로 일제 치하 속에서 일본 문화의 유입을 통해 전파되었다. 창가라는 중간적인 단계를 거쳐 3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전형적인 트로트의 양식이 완성되었고, 대중가요의 주류로 성장하였다.
트로트가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 것은 일제 치하라는 특수적인 상황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트로트가 당시 민중들의 삶을 일정부분 대변하고 있었지 때문이다. 일제에 의한 검열과 통제 때문에 가사로 표현할 수 있는 한계가 있었지만, 민중들이 겪는 고통과 슬픔을 사적인 고통과 슬픔으로 형상화하여 표현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고통과 슬픔을 발전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채 패배주의적 체념으로 그쳐버리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체제 순응적 성향이 강한 대중음악의 본질적인 한계일 뿐 아니라 대중가요가 일본의 근대화 이식을 통해 생겨난 것이었다는 태생적인 한계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트로트가 이러한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식민체제 속에서 고통 받는 민중들의 정서를 대변하였다는 점에서 나름대로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판단된다.
본고를 진행하는데 있어 1차 사료인 음반을 구할 수 없어 기존의 연구 성과에 많은 의존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점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또한 다양한 곡 가사분석을 못한 채 일제강점기 트로트의 성격을 규정짓는 것은 추후에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많은 연구 성과를 참조하고자 했으나 자료수집의 한계로 한정된 연구 성과만을 참고한 점 또한 연구의 아쉬움으로 생각하면서 본고를 마친다.
<참고문헌>
금수현, 1985, 「왜색과 대중가요」,『현대음악』85, 1월호.
이영미, 1993, 「식민지 대중문화와 대중: 대중가요」,『역사비평』20호.
1998, 『한국대중가요사』, 시공사.
2002, 『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 황금가지
이우용, 1996, 『PD 이우용의 우리 대중문화읽기』, 창공사.
최창호, 2000, 『민족수난기의 대중가요사』,일월서각.
한국대중예술문화연구원, 2003, 『한국대중가요사』.
황병기, 1984, 「누가 뽕짝을 우리 것이라 우기느냐」,『음악동아』84, 11월호.
황문평, 1984, 「눌러앉으면 다 우리 것이냐」,『음악동아』84, 12월호.
*목차
1. 머리말
2. 일제 강점기 트로트의 보급, 확산 배경
(1) 트로트 보급 이전의 대중가요
(2) 트로트의 보급과 대중가요의 전성기
3. 일제강점기 대중문화로서의 트로트
4. 일제 강점기 트로트의 한계
5.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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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11.14
  • 저작시기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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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92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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