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J.F.K
2.꽃잎
3.Time To Kill
2.꽃잎
3.Time To Kill
본문내용
에서 만들어진다. 유럽이나 동구권, 아시아 쪽에서는 그 풍토상 이러한 가상적 사회물이 만들어지기 어렵다고 한다.(필자 자신도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따라서, 가상적 사회물은 대부분이 미국적인 정서를 담고 있다. 이러한 주류에서 미국적인 정서라 함은 당연히 ‘1인 영웅에 의한 권선징악’이라는 측면일 것이다. 비록 사회물의 특성상 상당히 주인공의 역할이 절제되어 있다고는 해도 일단 주인공이 설정된 이상 최대한 그는 ‘영웅화’될 소지가 있다. 이번에 우리가 조사한 ‘타임 투 킬’에서는 그러한 소지가 더욱 강하게 드러난다.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원칙적으로 행동해서 일단 영화 속에서의 악의 무리를 멋지게 응징한다. 이러한 전개는 ‘슈퍼맨’이래 계속 쓰여진 미국식의 전형적인 결말이다. 정선영 씨(ID : HOW30)와 같은 경우에는 ‘5분만 보고 나면 결말을 알 수 있다.’라고까지 표현하고 있다. 미국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가상적 사회물이 대부분 이러한 결말 양식을 띠다 보니, 이 부류의 영화는 그 자체가 현실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가져다줄 수 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할 수 있겠다.
한 가지 문제를 더 제시한다면 이것도 앞에서 언급한 내용이지만, 작가가 자기 나름대로 생각이 정리된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과정에서 특정한 역사적사회적 사실들은 제외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그 대부분이 작가의 이야기 전개에 장애가 되는 사항들이다.) J.F.K의 경우에서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각종 사실들 중 작가의 주장에 상충되는 것은 제시하지 않았고, 꽃잎의 경우도 오히려 중요한 면은 빠졌으며(정치적 요인이 다분하다.) 타임 투 킬의 경우에도 흑인과 백인의 일반적인 관계는 무시하고(아니, 어쩌면 이 부분은 무시의 범주를 넘어섰다고도 볼 수 있다.) 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각 사항에 대한 별다른 지식이 없는 관객들로 하여금 사실에 대한 부분적인 이해와 그로 인해 빚어지는 현상에 대한 잘못된 판단을 유발하게 된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사회물이 가지고 있는 한계는 무엇일까? 앞의 두 영화가 그렇지만 두 영화는 모두 아직 사회적으로 깨끗이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사실, 역사적으로 완전히 해결이 된 문제라면 사회물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완전한 결말의 추구에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것 같다.
J.F.K의 죽음은 아직까지도 미국에서 밝혀지지 않은 수수께끼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작가 또한 자기 수준에서 그 문제의 해결을 시도하지는 않고 있다. 작가가 시도했던 J.F.K의 죽음의 실마리는 결국 클레이 표의 무죄 판결과 함께 다시 미궁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주인공은 자신의 힘으로 국가의 거대한 힘에 맞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깨달으면서 끝날 뿐이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부분에서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라는 말을 남긴다. 작가는 이 문제에 대해서 완전한 해석과 결론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아니 못한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이러한 면은 우리 영화 ‘꽃잎’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도 장선우 감독은 ‘정의의 원칙’에 관한 결론은 유보하고 있다. 말하자면, 누가 잘못을 했고 어느 쪽이 정의의 편이며 그 속에 나오는 사람들(결국은 우리들이며 우리의 어른들이다.)이 왜 그렇게 항쟁을 벌여야 했는가에 대한 결론은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회물이 다루는 내용은 사실상 정치적인 면과 상당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앞의 J.F.K의 경우나 이 경우 모두 아무리 작가 나름이라고는 해도 확실한 결론을 제시하기에는 외부의 압력이 너무나 크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러한 한계 때문에 사회물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비록 J.F.K나 꽃잎이 완전한 결말을 제시하지는 못한다고 해도 작가는 그 나름대로의 결말을 통해서 우리에게 그러한 과거의 일련의 사실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지게 해 준다. J.F.K에서는 재판에서 패하고 나오는 개리슨 검사가 기자들의 요청에 ‘비록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진실은 밝혀진다.’라는 말을 하게 된다. 작가는 이 말을 통해 비록 영화 속에서는 뚜렷한 결말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지만, 이 한 대사를 통해 이 문제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기를 관객들에게 완곡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꽃잎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앞에서도 제시했듯이 장선우 감독은 이 영화에서 광주 항쟁에 대한 구체적인 결말을 제시하는 것은 피하고 있다. 다만 ‘그저 지켜보아 주길’바라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에는 꽃잎이 주제를 사회적인 면에서 다룬 사회물인가 의심이 들 수도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러한 감독의 의도는 우리들이 광주 항쟁에 대해 그냥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 번 반추해 보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는 뭐든지 ‘하라.’고 명령받으면 하기 싫어지고 남에게 미루고 싶어진다. 만약, 감독이 마지막의 나레이션을 ‘우리는 광주 항쟁을 되돌아 볼 필요가 분명히 있다.’라고 말하면, 사실 필자의 생각으로는 더더욱 돌아보기가 싫어질 것이다. ‘남들이 돌아보겠지.’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는 사람 모두가 어느 수준 이상의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렇게 방관자적으로 감독이 제시할 경우 우리가 주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러한 태도에 대해 부당하다는 생각을 하며 적극적인 자세로 그러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반추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감독이 이러한 면까지 파악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로 방관자적인 입장을 취하려고 의도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어쨌든 관객의 이러한 태도가 ‘광주항쟁’이라는 역사적인 소재에 대한 사회적인 접근을 쉽게 해 주는 것은 明若觀火한 것이다. 이러한 면은 사회물의 가치를 넘어서서 사회물의 진정한 의의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1차적인 쾌락만을 얻을 수 있는 액션물이나 에로물과는 달리 이러한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은 이 장르의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개성있는 의의가 아닌가 한다.
한 가지 문제를 더 제시한다면 이것도 앞에서 언급한 내용이지만, 작가가 자기 나름대로 생각이 정리된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과정에서 특정한 역사적사회적 사실들은 제외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그 대부분이 작가의 이야기 전개에 장애가 되는 사항들이다.) J.F.K의 경우에서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각종 사실들 중 작가의 주장에 상충되는 것은 제시하지 않았고, 꽃잎의 경우도 오히려 중요한 면은 빠졌으며(정치적 요인이 다분하다.) 타임 투 킬의 경우에도 흑인과 백인의 일반적인 관계는 무시하고(아니, 어쩌면 이 부분은 무시의 범주를 넘어섰다고도 볼 수 있다.) 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각 사항에 대한 별다른 지식이 없는 관객들로 하여금 사실에 대한 부분적인 이해와 그로 인해 빚어지는 현상에 대한 잘못된 판단을 유발하게 된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사회물이 가지고 있는 한계는 무엇일까? 앞의 두 영화가 그렇지만 두 영화는 모두 아직 사회적으로 깨끗이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사실, 역사적으로 완전히 해결이 된 문제라면 사회물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완전한 결말의 추구에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것 같다.
J.F.K의 죽음은 아직까지도 미국에서 밝혀지지 않은 수수께끼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작가 또한 자기 수준에서 그 문제의 해결을 시도하지는 않고 있다. 작가가 시도했던 J.F.K의 죽음의 실마리는 결국 클레이 표의 무죄 판결과 함께 다시 미궁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주인공은 자신의 힘으로 국가의 거대한 힘에 맞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깨달으면서 끝날 뿐이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부분에서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라는 말을 남긴다. 작가는 이 문제에 대해서 완전한 해석과 결론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아니 못한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이러한 면은 우리 영화 ‘꽃잎’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도 장선우 감독은 ‘정의의 원칙’에 관한 결론은 유보하고 있다. 말하자면, 누가 잘못을 했고 어느 쪽이 정의의 편이며 그 속에 나오는 사람들(결국은 우리들이며 우리의 어른들이다.)이 왜 그렇게 항쟁을 벌여야 했는가에 대한 결론은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회물이 다루는 내용은 사실상 정치적인 면과 상당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앞의 J.F.K의 경우나 이 경우 모두 아무리 작가 나름이라고는 해도 확실한 결론을 제시하기에는 외부의 압력이 너무나 크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러한 한계 때문에 사회물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비록 J.F.K나 꽃잎이 완전한 결말을 제시하지는 못한다고 해도 작가는 그 나름대로의 결말을 통해서 우리에게 그러한 과거의 일련의 사실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지게 해 준다. J.F.K에서는 재판에서 패하고 나오는 개리슨 검사가 기자들의 요청에 ‘비록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진실은 밝혀진다.’라는 말을 하게 된다. 작가는 이 말을 통해 비록 영화 속에서는 뚜렷한 결말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지만, 이 한 대사를 통해 이 문제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기를 관객들에게 완곡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꽃잎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앞에서도 제시했듯이 장선우 감독은 이 영화에서 광주 항쟁에 대한 구체적인 결말을 제시하는 것은 피하고 있다. 다만 ‘그저 지켜보아 주길’바라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에는 꽃잎이 주제를 사회적인 면에서 다룬 사회물인가 의심이 들 수도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러한 감독의 의도는 우리들이 광주 항쟁에 대해 그냥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 번 반추해 보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는 뭐든지 ‘하라.’고 명령받으면 하기 싫어지고 남에게 미루고 싶어진다. 만약, 감독이 마지막의 나레이션을 ‘우리는 광주 항쟁을 되돌아 볼 필요가 분명히 있다.’라고 말하면, 사실 필자의 생각으로는 더더욱 돌아보기가 싫어질 것이다. ‘남들이 돌아보겠지.’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는 사람 모두가 어느 수준 이상의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렇게 방관자적으로 감독이 제시할 경우 우리가 주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러한 태도에 대해 부당하다는 생각을 하며 적극적인 자세로 그러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반추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감독이 이러한 면까지 파악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로 방관자적인 입장을 취하려고 의도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어쨌든 관객의 이러한 태도가 ‘광주항쟁’이라는 역사적인 소재에 대한 사회적인 접근을 쉽게 해 주는 것은 明若觀火한 것이다. 이러한 면은 사회물의 가치를 넘어서서 사회물의 진정한 의의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1차적인 쾌락만을 얻을 수 있는 액션물이나 에로물과는 달리 이러한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은 이 장르의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개성있는 의의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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