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 해동제국기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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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학] 해동제국기에 관하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 緖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의 구성(構成)

◇ 본 문(本 文)

◇ 結

본문내용

한다.
○ 좌ㆍ우장사(左右長史)주D-001 두 사람이 있어, 국왕의 명령을 내고 들이며, 또한 오군 통제부(五軍統制府), 의정사(議政司), 육조(六曹)가 있다.
○ 그 땅의 기후는 늘 따뜻하여 서리와 눈이 오지 않으므로, 초목은 잎이 시들어 떨어지지 않는다.
○ 논은 한 해 동안에 두 번 수확하는데, 매양 11월에 씨를 뿌리고 3월에 모내기하여 6월 에 수확하며, 즉시 또 씨를 뿌리고 7월에 모내기하고 10월에 또 수확한다.
○ 남녀의 의복은 일본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여기서 ‘국도(國都)’란 ‘수도(首都)’를 뜻하며 ‘국속(國俗)’이란 나라 특유의 ‘풍속(風俗)’을 의미한다.
◇ 結
본문과 크게 상관은 없지만 ‘임진왜란(壬辰倭亂)‘에 대하여 언급하고 싶다. 학계에서는 과거 임진왜란의 발생원인 중 가장 중요한 사항으로서 조선(朝鮮)의 사회 각 분야에서의 침체를 들고 있다 한다. 이는 임진왜란 직후 ‘유성룡(柳成龍)’이 쓴《징비록(懲毖錄)》을 근거로 한다. 당시 일본은 ‘풍신수길(臣秀吉)’ 이 전국시대를 통일하며 권력을 잡아가고 있는 단계로서 조선과는 상반(相反)된 시기였는데 풍신수길이 조선의 취약점을 간파(看破)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결국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은 셈이고, 조선으로서는 다소 운이 없었던 셈이었다고 본다.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를 읽으며 당시의 위상(位相) 높았던 조선의 흔적을 확인 할 수 있었기에 이러한 과거의 역사가 더욱 아쉽게 느껴지며, ‘신숙주(申叔舟)’와 같은 명신(名臣)이 함께 했던 위엄(威嚴)있는 조선왕실(朝鮮王室)의 모습이 연상되며, 재차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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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5페이지
  • 등록일2008.12.21
  • 저작시기2008.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07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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